[김성훈의 농사직썰]"제2의 농지개혁을 단행하라!"

농지제도의 문란과 국가의 몰락

  • 입력 2016.08.07 17:30
  • 수정 2017.01.02 09:25
  • 기자명 김성훈 중앙대 명예교수 경실련 소비자정의센터 대표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국가는 농지에 관하여 경자유전(耕者有田)의 원칙이 달성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며, 농지의 소작제도(小作制度)는 금지된다.” 대한민국 헌법 제121조 ①항에 나와 있는 명문이다. 그리고 제②항은 “농업생산성의 제고(提高)와 농지의 합리적인 이용을 위하거나 ‘불가피한 사정’으로 발생하는 농지의 임대차와 위탁경영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인정된다”라고 부연하고 있다. 경자유전 원칙에 의한 소작제 금지는 1948년 「제헌헌법」이후, 아니 고려, 조선, 일제 침탈기 그리고 동서고금의 역사에 면면히 이어져온 국가정신이었다.

되살아 난 권력 부유층에 의한 농지 투기와 소작제의 망령

그렇다면 현재 위 헌법조항은 어떻게 지켜지고 있는가? 광복 후 1949년 6월 농지개혁법이 제정 공포됐을 때의 소작농지 면적은 전체 농지면적의 32.4%이었다. 1947년 말의 소작농지 면적은 전국 농지의 60.4%에 달하였으나 2년 사이 지주들의 농간 등 인위적인 공작 끝에 급격히 줄어든 것이다.

그로부터 66년이 지난 2015년 현재의 임차농지(실질적으로 소작농지) 비율은 전체 농지의 50.9%이다. 전체 농가 중 임차농가(=소작농?)의 비중도 2015년 현재 59.6%에 달한다. 1949년 농지개혁법 제정 당시의 32.4%와 비교할 때 지금의 소작농지 비율은 그때보다 훨씬 능가하고 있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직후 전국적인 농지개혁 논의를 불러 일으켰던 1947년 말 수준에 가까이 다가서고 있다. 대도시 근교 지역의 농지소유 상태는 수년전에 이미 서울 등 대도시 근교의 농지 80~90% 가량이 도시거주 비농민 지주에 의하여 토지투기 목적으로 점유되었으며 지금은 90%를 상회할지 모른다.

경자유전 원칙에 관한 한 대한민국 헌법은 ‘껍데기만 남은 쭉정이'고 농지법은 있으나마나 한 ‘속빈 강정'이 된지 오래다. 투기 대상이 돼버린 농지, 보호받지 못하는 임차농, 제2의 농지개혁이 시급한 이유다. 한승호 기자

소작문제는 현재까지 허울뿐인 임차농이라는 이름하에 사회적으로 크게 대두되고 있지 않지만 실제 농사현장에서는 크고 작은 시비가 끊이지 않고 있다. 이들 임차농(소작농)들은 실질적으로는 치외법권 지역에 내팽겨져 있다. 1986년에 「농지임대차 관리법」을 제정했으나 현실성 없는 내용과 집행의지의 부족으로 소작금지 원칙은 흐지부지 되다가, 1994년에 새로 제정된 「농지법」에 흡수되었다.

농지법은 엄연히 “농지는 자기의 농업경영에 이용하거나 이용할 자가 아니면 소유하지 못한다” 라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2016년 7월 영농의지가 전혀 없는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의 불법적인 농지소유 사건이 불거진 것처럼 현재 우리나라 고위관료 및 부유층 사회에는 비일비재하다. 세월이 지남에 따라 내용은 투기자 이익보호 쪽으로 자꾸 개정, 재개정, 또 재재개정이 되어 고위관료 및 부유층의 탐욕을 마음껏 허용하는 방향으로 완화돼 있다. 합리적인 임차농업인(소작인)의 권익보호와 최소한의 중장기 영농계획을 보장하는 근현대적 임대차보호는 요원하기만 하다.

경자유전 원칙에 관한 한 대한민국 헌법은 ‘껍데기만 남은 쭉정이’이고 농지법은 있으나마나한 ‘속빈 강정’이 된지 오래이다. 최근의 친환경농업에 대한 범국민적인 관심과 열기로 도시의 젊은 세대층의 귀농 귀촌 행렬이 크게 늘어나고 있지만, 임대차이건 소작이건 불안정하고 하등의 법적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다. 그 사이 농지가격만 뛰어오르고 부도덕한 부재지주들의 배만 불리고 있다. 지금 전국 어느 소작농민들에게 물어보라. 서면으로 3년 이상 임차농업을 보장받고 있는 임차농민이 몇이나 되냐고.

“재벌기업은 땅을 사랑해! 아주 좋아해요”

동서고금의 국가(정권) 흥망사를 보면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토지제도의 문란(紊亂)이다. 권력과 부(富)를 가진 1%의 사회지배 세력층에 의한 토지침탈과 농지겸병으로 99%의 빈곤층을 양산하는 사회양극화를 초래하였다. 마침내 많이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간의 갈등과 대립으로 사회혼란과 민란이 일어나 그 정권 그 나라는 패망의 길로 치달았다. 중국의 5천년 왕조들의 역사가 그러했고, 가까이 우리나라 역대 왕조들, 고려와 조선 왕조도 그래서 몰락했다. 일제의 토지수탈 지주 과보호도 패망했다.

조선시대 실학자들은 “삼정(三政)이 문란하면 그 나라(정권)는 망한다”고 했다. 농지제도(농정), 군사제도(군정), 환곡(還穀)제도, 그중에서 만고에 불변한 재산으로서의 땅을 무한정 많이 소유하려는 탐욕으로 멸망을 자초하였다.

필자가 한 때 정부의 정무직에 있어 봐서 아는데, 재계와 정부 관료, 정치권, 언론계, 종교계, 학계, 일반사회에 걸쳐 웬 놈의 땅 욕심이 그렇게나 공고하게 뿌리박혀 있는지 농림직은 그들의 유혹과 위협으로부터 편할 날이 없다. 그중 단골요구는 용도변경을 허하라, 소유규모 상한제를 폐하고 임대차(소작)를 자유화 하라, 등등 공적 사적 유혹과 압력이 끊이지 않는다.

설상가상으로 우리나라에서는 규제개혁위원회라는 초법적인 정부조직이 있어 해당부서의 의견에 구애받지 않고 규제를 완화한답시고 토지, 환경, 식품 정책을 마구 휘저어 놓는다. 그들의 뒤에는 “규제는 쳐부숴야 할 암 덩어리”라고 생뚱한 주장을 덮어 넣고 아무데나 들이대는 대통령님도 계신다. 그리고 언제나 언론을 등에 업은 자본 권력이 도사리고 있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특히 재벌그룹의 탄생기인 박정희 시대부터 재벌들이 땅투기로 망외의 돈을 크게 벌어들여 성장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예컨대, 공장용지를 필요 이상의 몇 십 배로 구입하고 주변 농지마저 부하직원들과 나눠 사들인 다음, 정부가 인프라를 갖춰주면 몇 백 배로 되파는 수법이 성행하였다. 그래서 시중에는 “재벌기업은 땅을 좋아한다. 농지를 사랑한다. 특히 값싼 절대농지를 아주 좋아한다”라는 농담반 진담반의 우스갯소리가 회자되고 있다. 현대가 그러했고 삼성, LG, SK도 예외가 아니었다. 지금도 그러하다.

박정희 대통령의 못 다한 꿈, ‘토지 공개념(公槪念)’

재벌 육성에 적극적이었던 박정희 대통령도 이들 재벌기업들의 땅투기 행위가 도를 넘고 일부 권력층과 사회 엘리트계층, 나아가서는 일반 부유층과 복부인 등 어중이떠중이마저 땅 사재기와 땅투기에 지나치게 놀아나는 사회적 병리현상에 적지 아니 당황했던 것 같다. 특히 민정시찰을 자주하던 박통은 농촌현장에서 농지를 빼앗기다시피 몰락한 소작농들이 급격히 늘어나는 참상을 목격하고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고 결심한 것 같다.

갑자기 청와대 경제수석실(수석 정소영 박사, 농림건설비서관 윤근환 박사)에서 연락이 왔다. 미국서 농업자원경제학 박사학위를 받고 귀국해 지방 국립대 교수직에 재직하던 필자를 비롯, 건설부 국토계획국장, 농촌경제연구원의 토지문제 전문가 김모 박사, 세 사람이 긴급 소환조치 되었다. 비서관은 대통령의 친필 메모를 보여주며 우리나라 토지제도와 정책을 전면적으로 개혁할 청사진을 만들라고 주문했다. 사회주의 국가이론을 포함, 세계적인 토지제도를 모두 섭렵하고 정부 관련부서와 한국은행의 기존자료들을 죄다 뒤져서라도 획기적인 토지정책을 만들어 내라는 명령이었다. 청와대 사정담당관실 옆방에 작업공간을 마련하여 주야장창 비밀리에 토지개혁방안을 강구 하였다.

그렇게 하여 탄생한 것인 서구사회, 특히 유럽식 사회민주주의 국가들에 오래전부터 보편화된 ‘토지 공개념(公槪念, Public Concept of Land Property)’과 조준, 정도전, 정약용 등 조선왕조 시대 실학파 학자들이 주창한 토지의 공적 사상에 기반한 경자유전 원칙과 용자유전(用者有田) 원칙의 토지정책 개혁안이었다. 토지의 소유자격과 규모, 사용목적과 의무사항을 명문화하여 토지투기와 그로인한 불로소득은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제도이다.

아무튼 토지 공개념 도입에 따른 구체적인 정책은 그 다음해에 시행하기로 하고, 우선 토지 공개념에 입각한 토지제도 개혁 조치를 단행하겠다는 정부의지부터 건설부장관 명의로 먼저 밝혔다. 그러나 나라의 운명이 그러했는지 그해(1979년) 말 박정희 대통령의 갑작스런 서거로 획기적인 토지제도 개혁과 제2의 농지개혁 조치는 한 여름 밤의 꿈으로 끝났다.

이제 농지개혁은 그의 딸 박근혜 대통령의 몫이런가?

지금 박근혜 정부의 농림축산식품부는 전국의 농지소유 운용실태와 위장 임대차 농업, 즉 소작농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지 조차 의심스럽다. 대도시 근교의 농경지와 산림은 거의 대부분 이미 농민의 손을 떠나 투기 목적으로 소유 운용되고 있는 상황에 대한 인식여부도 의심스럽다.

그러니까 농림부는 재벌기업들에게 더 많은 땅을 퍼주려고 안달복달하지 않는가. 시화호 간척지를 D그룹에 특혜 분양하여 대단위 토마토 온실농사를 짓게 하려다가 농민들의 반대로 주저앉더니, 다시 LG그룹에게 새만금 땅 수십만 평을 특혜로 내주려 한다. 아니나 다를까, 삼성도 카카오그룹도 그리고 몬산토사 등 다국적 GMO 기업들도 너도 나도 새만금 간척지 확보에 혈안이다.

이제 우리나라 곡창지대인 전라북도는 농촌진흥청의 GMO 쌀 시험재배에 이어 GMO 토마토, GMO 파프리카 등 다국적 기업과 재벌기업들의 주 활동무대로 탈바꿈 할 전망인가. 간척개발 농지를 일단 화려한 계획으로 농림당국을 현혹시켜 사들이기만 하면은 나중에 정부가 수도, 전기, 도로 등 인프라를 갖추어주면 재벌기업들은 야금야금 땅 장사 할 날을 손꼽아 기다리면 된다. 아버지 박통 때도 그러했었지 않나.

진정 박근혜 대통령이 박정희 대통령의 정신을 이어 받으려면 그의 치적의 하나인 농업, 농촌, 농민 살리기와 못다 이룬 그의 꿈, 토지 공개념의 실현에 전력투구해야 할 것이다. 토지투기를 발본색원하여 그로인한 불로소득을 사회에 환원시켜야 함은 물론이다. 아,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은 그의 모든 사고 개념이 1979년 이전에만 갇혀 있는지 농지 및 토지제도 개혁 따위는 꿈조차 꾸지 않는 듯하다. 임기는 이제 1년 반밖에 남지 않았는데 해놓은 일이라곤 뭐하나 내세울 것 없는데도 말이다.

이제 남은 임기동안이라도 그 아버지가 못다 이룬 꿈, ‘제2의 농지개혁’에 매진하시길 간곡히 바라마지 않는다. 부디 ‘토지 공개념’이라도 이 땅 위에 우뚝 세운 대통령이 되시어라.

저작권자 © 한국농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