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대신 할 수 없다니께”

도시에서 온 편지

  • 입력 2008.03.16 09:05
  • 기자명 관리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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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현숙 <인천시 부평구 십정동>
아침밥상에서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쌀밥을 보면 어떤 느낌이 솟을까. ‘침이 고이고, 꿀꺽 입맛을 다시며 맛있다’는 느낌을 갖고, 숟갈로 뚝 떠서 입에 넣는 행동까지 순식간이지만 뇌의 명령을 통한 결과이다.

이것이 바로 기운=감성이다. 쌀의 따끈함과 푸성귀를 통한 안정감은 먹거리를 키우고, 차리고, 먹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질 수 있는 행복한 기운이다. 어디 밥뿐이랴. 4월이면 온갖 과실의 꽃이 피어서 새하얗고 불그레한 빛과 향기를 뿜어내, 가슴께까지 쌓인 눈을 보는 듯한 황홀함까지 겪을 수 있게 하지 않는가? 이런 짜릿한 행복을 경험케하는 농민들의 삶도 이처럼 행복한가?

끊임없이 농민으로 돌아갈 계획을 품은 도시민인 나는, 지난달 만난 두 농민의 삶을 되새겨본다. 비단 개개인의 처지가 아닌, 농민 전체의 현실이었다.

경기도 안성에서 배와 포도를 경작하는 오십줄의 안성언니는 만난 첫날부터 제대로 걷지를 못했다. 30여 년의 고된 과수농사를 짓다보니 관절염에 당뇨까지 앓고 있다.

“과수농사도 농사지만, 시할머니 병구완을 15년 하니까, 깜빡 넘어가겠드라구.”

“아이구, 언니 이젠 할만큼 했으니, 몸부터 돌보시는게 어때요?”

“누가 몰러? 농사일에 집안 살림은 누가 하고, 잡다한 일이 얼매나 많은디. 내가 하도 아프니께 작년엔 우리 신랑이 주로 일을 했어. 글구 신랑이 디스크에 걸린겨.” 구구한 사연에 서로 웃게 된다. 농민, 농촌, 농업의 실상을 허나마나한 물음과 답변으로 주고받았기 때문이다.

며칠 후에 만난 경북 영덕에서 오신 언니의 형편은 이렇다.

“우리집엔 친척도 올 수가 없어. 사과팔러 새벽부터 밤까지 나가서 만날 수가 없으니까.”

“그럼, 아저씨랑 같이 다니세요?”

“아이다. 남편은 밭일 하고, 채소도 가꿔야하지 않겄나.”

“다른 사람에게 맡기면 안되나요?”

“누가 있나? 제 땅도 일손 부족해 놀리는 판에. 젊은 사람들 돈벌이 안된다꼬 다 떠나는데.”

사과포장에서 차에 싣고 장에 나가 팔고 나면 늦은 밤, 새벽부터 시작되는 일의 연속이다. 영덕언니는 3분 이상 걸으면 지팡이를 짚어야 했다.

두 농민의 일상은 농작물을 먹고 살아가는 우리의 또다른 자화상이다. ‘아파도 치료 할 틈을 내기 어렵다’는 것은 물론 안타깝고 속상한 일이다. ‘농산물=식량을 외국에서 사먹자’는 정부관료들의 모자란 언행이 농민들을 고통으로 내몰고 있음이 더 속상한 것이다.

일자리에서 언제 내몰릴지 모를 도시 노동자의 삶, 이윤을 위해 정리해고를 언제든 취할 수 있게 만든 법제도는 온 국민의 안온한 삶과 희망의 미래를 그리기엔 선명한 물감이 아니라, 아무리 짜도 나오지 않아 채색조차 힘든 상황이다.

농업과 농촌이 더욱 존중받고 제값을 치룰 수 있게 국가와 정부관료의 적극적이고 생생한 정책과 함께, 제 땅에서 난 먹거리는 제나라 사람들이 안전하고 먹도록 하는 명확한 법을 생활에서 경험토록 해야 한다.

들판에서 느끼는 안온함을 맛본 사람, 농촌의 맑은 공기로 머리를 식힌 사람, 싱싱한 농산물을 먹는 사람, 숟갈로 쌀밥을 떠먹는 사람, 이런 행복을 누리는 모두가 이제는 농민들에게 돌려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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