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프리카 전량 수출? 덤핑한다고 욕만 먹는다”

토마토·파프리카, 사실상 수출 판로 막힌 상황 … 대기업의 신선농산물 생산 참여로 가격 기복 심화될지도

  • 입력 2016.08.05 11:37
  • 수정 2016.08.05 11:55
  • 기자명 강선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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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고양시에 위치한 한국농원에서 파프리카 농사를 짓는 이영규씨가 지난 1일 수확을 마무리하며 1년을 주기로 키워 온 파프리카의 밑둥을 잘라내고 있다. 이씨는 “작물을 키우려면 물을 주고 죽이려면 물을 끊는 것과 같이 대기업의 농업 진출은 힘겹게 버티고 있는 중소농의 목줄을 조르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비판했다. 한승호 기자

요즘 토마토와 파프리카 농가들은 밤잠을 못 이룬다. LG CNS가 여의도 면적 4분의 1 수준인 76ha 면적에 스마트팜 단지를 건설한 뒤, 약 50ha 면적을 토마토와 파프리카 등을 재배하는 데 사용하려 한다는 의혹을 받기 때문이다.

경기도 고양시에 위치한 영농조합법인 한국농원에서 파프리카 농사를 짓는 이영규(46) 씨. 농학박사 출신인 그는 농사짓는 게 재밌어서 4년째 그곳에 몸담고 있다. 이씨는 2ha(약 6천 평) 면적의 파프리카 농장에서 그를 포함해 총 20명의 직원들과 같이 일한다. 그는 대기업의 농업 진출로 국내 파프리카·토마토 농가에 닥칠 어려움에 대해 우려했다.

“지금 LG가 뛰어들려 하는 파프리카와 토마토 분야는 이미 시장이 포화상태이다. 그런 상황에서 생산량을 증가시키면 가격 폭락 위험성이 크다.”

그런 우려를 LG 측도 모르는 건 아닌지, LG CNS 측은 지난달 12일 서울에서 있었던 ‘새만금 스마트 바이오파크 설명회’에서 “생산된 농산물을 전량 수출해 국내 시장과 유통망이 겹치지 않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이씨는 이에 대해 믿을 수 없다고 했다.

“농산물은 공장에서 찍어내는 물품이 아니라는 걸 대기업은 알아야 한다. 벌레 먹거나 농약을 기준치 이상으로 친 것은 수출 불가능하다. 그래도 전량 수출한다는 건 품질 하락한 것까지 감수하며 보낸다는 건데, 그건 당연히 몇 천 원 더 가격이 떨어진다. 그런 B급 물품을 수출하면 (국산 농산물의) 이미지도 나빠지고, 욕은 욕대로 농민들이 다 먹는다. 수출 시 판매가격으로 3,000만 원을 받기로 계약해도 클레임 배상비, B급 이하 농산물 폐기에 들어가는 인건비 비용 등이 다 빠지고 2,000만 원 선까지 깎인다. 공산품과 달리 농산물은 그때그때 B급의 발견 비율이 달라진다. 그걸 전량 수출할 수 있는지 의심스럽다. 그래도 전량 수출하겠다는 건 덤핑으로 팔겠다는 건데, 그러면 더 이미지만 나빠질 뿐이다.”

이는 이씨만의 의견이 아니었다. 주현철 전국토마토생산자협의회장은 “사실상 토마토, 파프리카 등의 신선농산물은 (수출 판로상) 넣을 데가 없다. 대만, 홍콩, 싱가포르, 일본 등을 다 돌아다녀봤지만 팔 데가 없다. 요즘은 일본과 우리의 토마토가 거의 같은 가격으로 흐르기 때문에, 팔려고 해도 온갖 트집을 잡으며 안 받는다”고 말했다. 이미 2008~2013년에 걸쳐 농림축산식품부에서 토마토연구사업단을 꾸려 수출 확대를 위해 총 65억 원의 예산을 투입했지만 이렇다 할 성과를 거두지 못한 바 있다. 오히려 토마토 수출금액은 2013년 약 989억 달러에서 2015년 약 970억 달러로 1.1% 감소했다.

이씨는 정부의 형평성 없는 농업 지원 정책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했다.

“정부의 농업 보조금은 영세농들을 육성하기 위해 존재한다. 그런데 지금은 사실상 대규모 농가나 업체에만 보조금을 준다. 상대적인 기준 없이 절대적 수출량만 따지기 때문이다. 우리가 아무리 열심히 농사지어 파프리카 170톤을 수출해도 200톤 수출 못하고 경지면적도 7ha가 안 되니까 지원 못 받고, 이미 규모가 큰 곳은 200톤 수출했다고 보조금 지원을 받는 상황이다. 농장 규모가 (대규모 농장이나 업체의) 10분의 1인데 수출량도 10분의 1이면 점수가 같아야 되는 게 원칙인데….”

정작 이씨와 같은 중소농들은 복잡한 절차 때문에 보조금을 신청할 엄두도 못 낸다. 준비해야 할 서류도 많다 보니, 아예 보조금을 받으려면 전담자가 한 명 있어야 한다고 이씨는 설명했다.

이씨는 “대기업이 농업 분야에 진출하는 자체를 반대하진 않는다. 정 파프리카 생산에 뛰어들 거면 물가 조절을 위한 노력이라도 해야 한다. 하지만 대기업은 돈 안 되면 덤핑으로 다 팔아넘기려 할 가능성이 높다. 안 그래도 파프리카는 지난 겨울에 한 상자 당 6만 원이었다가 현재 6천 원까지 가격이 떨어질 정도로 가격 변동이 심한데, 여기에 대기업까지 뛰어들면 그 기복은 더욱 심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예전에 파프리카 한 상자 당 겨울에 3만 원, 여름에 2만 5천 원 하던 것에 비하면 가격 변동이 매우 심해진 상황이다.

김병원 한국파프리카생산자자조회 사무국장 또한 “대기업은 농자재를 개발하고 농민들에게 팔아서 수익을 내야지, 자재 팔다가 농산물 생산에 직접 뛰어드는 건 결사반대한다. LG가 뛰어들면 삼성이나 SK 등 다른 대기업들은 가만히 있겠나. 농민들은 뭘 먹고 살라는 건가. 이에 가만히 있을 수 없어 파프리카자조회를 비롯한 각종 농축산물 자조회들이 힘을 합쳐 대응을 준비 중이다”라며, 현 상황을 묵과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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