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우리는 - 초가집 짓기 ①] 나는 「초가삼간」에서 살았다

  • 입력 2016.08.05 11:36
  • 수정 2016.08.05 11:39
  • 기자명 이상락 소설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상락 소설가

그야말로 딱 삼간이었다. 왼편에 정짓간(부엌)이 있었고 가운데에 방, 그리고 오른쪽 끝에 광이 있었다. 마당이 꽤 넓었으므로 그 한 쪽에다 남새와 싸리나무를 심었다. 마당 끝에 변소가 있었기 때문에 어쩌다 밤에 용변을 봐야 하는 경우, 등불을 든 엄니가 뒤따라와서 파수를 보아야 했다. 내가 여섯 살 늦가을까지 살았던 고향집에 대한 기억이 이러하다.

그 시절 ‘초가삼간’의 구조가 대개 그러하였다. 남향집을 기준으로 할 때 세 칸 중 서쪽 한 칸은 부엌이고 가운데가 방, 그리고 나머지 한 칸은 곡식 항아리 따위를 보관하는 광으로 썼다. 물론 부엌이나 광의 한 쪽을 따로 막거나 혹은 바깥에 덧붙여서 쪽방 하나를 더 들이기도 했지만, 우리가 옛 시절의 농촌풍경을 추억할 때 입에 올리는 ‘초가삼간 살이’는, 달랑 한 칸의 방에서 대여섯(심하면 예닐곱) 명의 식구들이 해바라기 이파리처럼 둘러 누워서 이불 한 채를 끌고 당기며 부대끼던, 그런 생활이었다. 말하자면 그 시절의 초가삼간은 농촌의 서민들이 거주할 수 있는 최소공간이었던 것이다.

내가 태어나서 여섯 살 때까지 살았던 그 마당 넓은 집에 대한 기억들은 매우 무질서하고 파편적이어서, 가령 ‘사라호 태풍’을 그 집에서 겪었는지 다른 집에서 겪었는지, 혹은 내가 기억하고 있는 그 재변이 다른 이름의 태풍이었는지…조차 가물가물하다. 그러나 또렷이 떠올릴 수 있는 기억이 있다. 그 마당 넓은 집 바로 아래쪽 마늘밭 자리에다 새 집을 지었다는 사실이다.

“느그 아부지가 돈을 징하게 많이 벌어서 집을 새로 짓는 것이여.”

그 때 엄니가 그렇게 말했다. 그런데 나중에 내가 어지간히 철이 들었을 무렵에 엄니는 말을 바꿨다. “딴 사람들은 이장을 하면 돈을 벌어서 밭도 사고 논도 사고 한다는디, 느그 아부지는 빚만 몽창 벌었드란다” 라고. 말하자면 아부지가 이장을 하면서 그 마당 넓은 초가집을 빚잔치로 날려먹고, 하는 수 없이 아래 쪽 남새밭을 밀어서 새 집터로 다듬은 것이었다.

어찌 되었든 그 어린 나이에, 집터를 다지고 기둥을 세우고 서까래를 올리고 흙을 바르고…하는, 초가집 한 채를 짓는 전 과정을 고스란히 지켜볼 기회를 가졌던 것은 행운이었다.

집을 짓는 공정은 출발부터 순조롭지 못 했다. 아부지가 풍수지리에 밝은 누구네 조부님과 집짓는 일을 지휘할 목수와 함께 사위를 살펴서 일단 집이 들앉을 자리, 즉 좌형(坐形)을 결정했다. 본격적으로 터 다듬는 공사가 시작되었다. 목수를 비롯하여 집짓는 일에 동원된 사람들은 모두 동네 주민들이었다.

그런데, 터파기 작업을 하는 중에 문제가 생겼다. 집의 왼편, 부엌이 들어설 자리 어름에 돌덩이 하나가 솟아 있었다. 까짓것, 파내면 될 것이었으므로 사람들은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런데 파면 팔수록 그 뿌리가 자꾸만 넓어졌다. 그 바윗돌은 사람의 힘으로는 어찌 해볼 수 없을 만큼 거대하였다. 겉에 드러난 돌덩이는 그야말로 ‘암산의 일각’이었던 것이다. 비상이 걸렸다. ‘좌형’을 다시 정해야 했다. 하는 수 없이 초가집이 앉을 자리를 앞쪽으로 끌어냈다. 그 바람에 앞마당이 좁아지고 기형적으로 뒷마당이 넓어져 버렸다. 뒷날 그 바윗돌은, 내가 혼자 집을 보다가 무료할 때면 올라앉아서 사립 앞을 지나는 동네사람도 구경하고, 학교에서 훔쳐온 분필로 그림도 그리고, 턱을 괴고 앉아서 들에 나간 엄니도 기다리는… 초가삼간집의 ‘제4칸’ 같은 곳이 되었다.

단짝 동무 종석이가 집짓는 것을 구경하러 왔다. 그런데 마침 해가 기울었으므로 목수를 비롯한 인부들은 연장을 놓아두고 저녁을 먹으러 가고 없었다. 나는 종석이에게 은밀한 제안을 했다.

“요것은 먹통이라고 하는 것이고, 먹통 속에 있는 이 실은 나무에다 금을 긋을 때 쓰는 먹줄이라고 하는 것이그등. 우리도 저 나무에다 먹줄 조깐 퉁겨보자.”

우리는 목수가 다듬어놓은 나무 여기저기에다 먹줄을 퉁겨서 마구 금을 그었다. 재밌었다.

저작권자 © 한국농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