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농민으로 산다는 건] 여성농민도 여성이다

  • 입력 2016.08.05 11:34
  • 수정 2016.08.05 11:36
  • 기자명 황정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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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정미 (경북 의성군 봉양면)

마늘로 6월을 보내고 돌아서니 7월이 오기도 전에 자두는 익기 시작한다. 한 달여를 땡볕에서 정신없이 보냈으면 심신과 마음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하다. 부엌의 온갖 그릇은 다 나와서 아무렇게나 쌓여져 있고, 거실의 구석엔 정리 되지 못한 일복이 가득이다. 집밖은 더하다. 나와 거의 같은 일을 하는 동네 아지매들의 집은 일이 끝남과 동시에 정리된다. 아직 나는 그 선까지는 못 따라가겠다. 우선 몸을 쉬어야 다른 일이 생각날 여지가 있다. 지나고 보면 ‘짬이 있을 때 할 걸’ 이라는 후회는 항상 한다.

그렇게 작열하는 7월의 태양 아래서 자두를 수확한다. 처음에는 붉게 익은 자두에 감탄하면서 신나게 딴다. 새벽에 일어나 따고 아침을 먹고는 상자에 넣는 포장작업을 하고, 이후에는 택배작업을 한다. 올해는 대학 간 딸이 집안일로 알바를 하면서 택배의 송장 적는 일을 맡아 훨씬 수월했다.

나는 걸려오는 모든 전화에 자두 핑계(?)를 댄다. 솔직히 말해 핑계라고 할 수는 없다. 어찌 빠져 나갈 구멍이 없다. 모든 정해진 약속 날짜에 못 나가게 되고, 마음속은 미안함으로 아린다.

더군다나 올해는 경북여성농민 한마당이 여기 의성에서 열린다. 어쩌다 보니 준비 회의 때도 빠지게 되고, 준비 막바지 단계에 와서도 자두로 이렇게 온 몸이 묶이다 보니 더 맘이 되다. 그러다 전여농에서 8월 25일 전국여성농민 결의대회 준비로 순회 교육을 왔다. 교육시간도 늦어서 다 끝날 쯤에야 자두 한 박스 들고 도착했다. 회장님이 왜 그렇게 얼굴을 안 보이냐는 말씀을 하신다. 또 자두다. 그렇게 집으로 돌아오니 마음이 복잡해진다. 다들 농사지으면서 저렇게 열심히 활동도 하시는데….

올해 더 마음을 못 내는 이유는 남편의 몫도 크다. 도의 간부직을 맡으면서 낮에는 농사일을 하고 밤으로 시군의 일정을 채워 나간다. 옆에서 보는 나도 위태위태하다.

그러다가 사람이 무감각해지기 시작한다. 거의 의욕 없이 움직인다. 기계처럼 일어나 자두 밭으로 가고 밥맛도 모르고 밥을 차린다. 그러니 당연히 식탁에 올라오는 반찬이 없다. 짜증도 나고, 욱하는 성질도 막 올라온다. 죄 없는 막내는 나의 성질에 놀라 울먹울먹 한다. 그러다가 ‘아~ 그 날이구나’를 안다. 이렇게 힘든 농사일과 생리전 증후군이 겹치면 감당이 안 된다.

이래서 생리휴가라는 것이 있지 싶다. 얼마의 여성들이 생리휴가를 제대로 받는지 알 수 없지만, 우리 여성농민들에게도 꼭 필요한 휴가다. 내 농사를 짓고 있으니 따로 휴가를 낼 수 없다면 도우미제도도 생각해볼 수 있다. 영농도우미, 산후도우미처럼 여성농민들을 위해 생리도우미제도라도 만들어 달라. 여성농민들도 한 달에 하루 정도는 온전히 자기를 위해 쓸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래야 집안이 평온하고 나라가 평화롭다.

이제는 언제 그랬냐 싶게 아무렇지도 않다. 시간이 이렇게 흐르니 사람이 살지 그 상태가 지속 되면 미쳐버리지 싶다. 그런 하루를 보장 받으면서 보낼 수 있다면 여성농민들의 삶의 행복지수도 많이 올라 갈 것이다. 그렇다. 농사를 짓는 것이 고생구덩이만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보장을 받는 정당한 직업이고 싶다. 여성농민들도 당당한 직업인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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