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원의 농사일기 6] 시간을 내야 시간이 난다

  • 입력 2016.07.25 20:09
  • 수정 2017.05.26 10:23
  • 기자명 윤석원 중앙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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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일은 대체로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을 것 같다. 하나는 때를 맞춰야 하는 농작업이다. 파종해야할 때에 파종해야 하고 방제해야할 때에 제때 방제해야 하며 수확할 시기에 수확해야 한다. 때를 놓치면 안 된다.

반면 반드시 시기를 맞춰야 할 필요는 없지만 적당한 시기에 해줘야 하는 농작업이 있는 것 같다. 예컨대 풀을 베는 작업, 거름 주는 작업, 퇴비 만드는 작업 등이 있는데 이런 일들은 때를 꼭 맞춰야 하기 보다는 약간의 시간적 융통성을 가지고 작업하면 되는 것 같다.

귀농 귀촌한지 얼마 되지 않았고 농사일 자체가 익숙하지 않은지라 일에 여유가 없는 것 같다. 숙달된 일은 빠른 시간 안에 할 수 있지만 익숙치않은 일은 시간이 많이 걸리고 능률도 떨어짐은 당연하다. 적기를 놓치지 말아야 하니 항상 긴장 상태이고 밭에 가면 늘 이런 일 저런 일 할 일이 많이 있고 하루가 어떻게 가는지 모르게 간다.

양양으로 올 때 바다가 있고 설악산이 있고 마을마다 시시때때로 축제가 있어 여유롭게 참석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해안을 따라 자전거길도 잘 만들어 놨으니 라이딩도 좀 하고 그러나 현실은 눈 돌릴 틈 없이 4개월여가 지나갔다.

그러던 어느 날 농민모임에서, 는 “어찌 된 건지 도무지 여유가 없고 시간이 나지 않아 코앞에 있는 바다나 설악산을 제대로 즐길 겨를 없이 지내고 있다” 라고 볼멘소리를 했다. 그 때 한 농부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

“농촌생활이라는 것은 시간을 본인 스스로 내야 나지, 내가 내지 않으면 절대 나지 않습니다.”

그렇구나! 내가 내 시간을 내지 않으면 아무도 내 시간을 내 주지 않는다는 말이었다. 출퇴근이 있는 것도 아니고 사장님이 있는 것도 아니니 내 스스로 시간을 내고 여유를 갖지 않으면 늘 일에 휘둘려 농촌에서 삶의 여유를 찾지 못한다는 것과, 그렇게 되면 결국 농사일과 농촌생활이 오래도록 지속가능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의미이리라. 가끔은 쉼이 있어야 하며 그 쉼은 내가 내야 한다는 것이다. 일과 쉼의 조화가 무엇보다 중요함을 일깨워 주었다. 그것이 꼭 육체적 노동에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농촌에서의 삶과 사고의 방식에까지 적용되는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한 수 위의 삶의 방식과 철학을 농부 선배님은 터득하고 있었지만 초보 농부는 미처 알지도 못했고 생각하지도 못했다.

오늘도 난 농부 선배님들로부터 농부로서의 삶의 자세를 배우며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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