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우리는 - 수렵 ④] 늙은 포수 이야기

  • 입력 2016.07.24 12:42
  • 수정 2016.07.24 12:50
  • 기자명 이상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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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락 소설가

지리산은 그 규모가 워낙 방대하다 보니 산자락에 의지해서 살아가는 포수들도 많았다. 또한 운동선수가 그 종목을 달리 하듯 포수들도 나름으로 주 종목이 있었다. 꿩이나 토끼는 기본 종목이었고, 멧돼지를 전문으로 사냥하는 포수가 있는가 하면 노루를 주요 목표로 삼아서 이 능선 저 자락을 누비는 포수도 있었다.

물론 일제강점기 이전에는 호랑이나 표범을 전문으로 사냥하는 사람도 상당수였다. 지금이야 지리산에서 멸종된 곰을 복원하기 위한 사업이 진행되고 있지만, 민동식이 포수로 활동하던 초기에만 해도 지리산에 곰이 많았고, 곰 전문 사냥꾼이 따로 있었다.

“서울에서 가끔 내려오던 전(全) 포수라는 사람이 바로 곰 전문이었지. 그 사람이 곰 사냥 중에 엽총 두 자루를 망가뜨렸다는 일화는 지리산 포수들 사이에서 유명한 이야기야.”

어느 해, 전 포수가 곰 한 마리를 발견하고 엽총을 발사했는데 뒷다리 쪽에 설맞는 바람에 그만 도망을 쳐버렸다. 핏자국을 따라 수색에 나섰다. 드디어 산죽 수풀 속에 웅크리고 있던 녀석을 찾아내어서 다시 한 발을 발사하였다. 그런데 덩치가 황소만한 그 곰이 총알을 맞은 채로 포수에게 달려들어서는 앞다리로 엽총을 빼앗더니 총신을 활처럼 휘어버렸다.

이듬해에도 또 한 자루의 엽총을 망가뜨렸다. 이번에도 숲속에서 곰을 발견하고 살금살금 다가가서 조준을 하고 있었는데 아뿔싸, 전 포수는 나무 위에서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던 또 한 마리의 곰이 있다는 사실을 몰랐던 것이다. 순식간에 그를 덮친 곰이 엽총을 빼앗아서는 아예 부러뜨려 버렸다,

노루 혹은 멧돼지 사냥은 단독으로 할 수 없었다. 대개는 너덧 명의 몰이꾼과 함께 하거나 아니면 사냥개를 대동하였다. 포수가 먼저 산등성이로 올라가서 길목을 지키고 있다가 아래쪽에서 몰이꾼에 의해 쫓겨 온 짐승을 쏘아 잡는 방식이었다.

“노루란 놈의 행동거지가 참말 요상하다니까. 고 녀석은 포수나 사냥개에게 쫓기는 절박한 상황에서도, 일단 고갯마루나 능선 등 높은 지점에 이르면, 갑자기 걸음을 멈추고 우두커니 서서 아래쪽을 내려다보는 습성이 있다니까. 그럼 포수들이 이때다, 하고 조준 사격을 해서 쉽게 명중시키는 것이지.”

노루사냥을 할 때, 실탄이 박힌 부위를 보면 명포수인지 아닌지를 금세 알아볼 수 있다는 것이 민동식 포수의 귀띔이다. 총알이 노루의 앞쪽 심장을 관통하였다면 그는 명포수로 손색이 없다. 만일 하체부위를 맞힌 경우, 설령 노루가 쓰러졌다 하더라도 일부러 심장 쪽을 향하여 한 발을 더 발사한다.

“영양보충을 용이하게 하려고 그러는 거지. 이거 보라고. 여기 요놈이 내 포수시절의 밥그릇이자 약사발이었다니까.”

민동식 포수가 양은 종지 하나를 꺼내 보여주었다. 주머니에 넣고 다니다가 쓰러진 노루에게 달려가서, 심장으로부터 팔딱팔딱 솟구쳐 나오는 노루피를 받아 마시기 위한 그릇이었다. 상상만 해도 으스스 소름이 끼치는 장면이지만 포수들에게는 아주 자연스럽고도 거룩하기까지 한 섭취행위였을 터.

내가 15년 전에 찾아가 만났을 때, 민동식 노인은 이미 엽총을 내려놓은 지 오래라 했다. 대신 부인과 함께 산속에 들어가 약초를 캐며 소일하고 있었다. 물론 사냥을 하고 싶다 해도 허가가 나지 않을뿐더러 이제 나이가 많아서 조금만 걸어도 숨이 찬다.

내가 찾아간 날은 성긴 눈발이 흩날리던 초겨울이었다. 이야기를 마치고 그의 집 토방으로 내려섰을 때 마침 까치 한 마리가 장독대 옆 감나무가지에 앉아 있었다. 나를 배웅하러 나왔던 민동식 노인이 조심스럽게 까치를 향해 총을 겨누었다. 아, 바야흐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지리산 명포수의 사격솜씨를 감상할 기회가 온 것이다. 드디어 그가 “빵!”, 하고 격발하였다. 하지만 까치는 그 왕년의 명포수를 비웃듯이 감나무 가지를 흔들어놓고는 유유히 날아가 버렸다. 노인이 껄껄껄 웃었다. 그가 까치에게 겨눈 것은 ‘손가락 총’이었으며 “빵!” 소리도 엽총의 총구에서가 아니라 그의 입에서 나온 소리였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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