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농민으로 산다는 건] 한여름 뙤약볕

  • 입력 2016.07.24 12:41
  • 수정 2016.07.24 12:52
  • 기자명 심문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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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문희 (전남 구례군 마산면)

아침부터 푹푹 찐다. 장마 사이사이 물기 가득 품은 햇볕에 사람들은 서로의 눈치를 살핀다. 불쾌지수가 높은 날 별일도 아닌 것이 꼬이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없이 번지는 것을 알기에 꾸역꾸역 참아낸다.

낮 동안 야외활동을 자제하라는 폭염 문자는 며칠 동안 계속된다. 이제 여름 시작인데 벌써부터 바깥일 자제하라니 걱정이다. 콩 심어 두고 풀 멜 시기 계속되는 비 덕에 콩보다 풀이 훌쩍 자랐으니 폭염문자에도 어쩔 수 없다. 지금 하지 않으면 콩씨도 못 찾을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콩밭 고랑고랑 호미 들고 땀 흘리는 이는 바로 여성농민이다. 평균 나이 75세. 그녀들이 더 나이 들면 누가 콩밭의 풀을 뽑을까 생각해본다. 콩밭 매는 콩 농사가 유지될 수는 있을까? 올해 같은 날씨의 콩 농사는 인건비만큼의 수확량도 뽑아내지 못할 것이 뻔하지만 심어둔 콩 어찌 하지 못하고 온 동네 할머니들 불러 모아 콩밭을 멘다. 신통방통한 풀약 이야기를 하시다, 칠갑산 산마루 콩밭 메는 아낙 노래를 하다, 온몸 세포 마디마디 흘러나오는 땀들이 온통 땀띠 되도록 풀밭을 멘다.

간간히 도시 사는 자식들에게서 안부전화가 온다. “응 나 여기 그늘서 수박 먹고 있당께. 걱정하지 말어. 그래 느그들도 더위 먹지 말고 잘 있어라 잉. 휴가는 언제쯤 올꺼냐? 그래 그래 알았다 잉.”

능청스럽게 전화하시는 폼이 완전 전문가다. 몇 푼 되지 않지만 여름휴가 때 갈치 한 토막, 수박 한 통이라도 사서 자식들 멕이고 싶은 마음이 한여름 뙤약볕에도 콩밭에 나오게 하지 않았을까?

물론 이 할머니들 대부분이 자신의 농사를 짓고 계시는 분들이기도 하다. “옛날엔 다 품앗이었당께. 모심기부터 시작해서 일 년 내내 서로 돌아댕기며 일했지. 지금은 참 살기 편해졌다니까. 기계가 다 해분당께. 이놈의 콩밭 메는 것만 빼구 말이여.”

숨이 턱 멎을 때쯤 새참으로 얼음 동동 미숫가루 한 사발씩이다. 보기보다 훨씬 깊이 뿌리내린 풀 덕에 일의 능률이 떨어지는 게 미안하신가보다. “오메 어째야쓰까. 콩값만치도 못 해불것는디.”

콩밭 주인보다 더 걱정들을 하신다. “사람들이 알랑가 몰라. 약치면 개안해지는디 이러코롬 심들게 일일히 콩밭 지심메는 심정을.” “이 콩으로 두부도 맹글고 메주 띄어 된장 간장 맹글고. 내일은 콩물국수나 해먹세 그려.” “아직은 폭염주의보 내릴 때가 아닌디 어째 이리 더운가 몰르것네, 풀멘 보람이 있어야 할텐데.” 다들 자신들의 일 인양 최선을 다해 줄 맞춰가며 풀을 뽑는다.

지금껏 기계가 대처하지 못했던 이 일, 자식새끼 키우듯. 생명의 농사 지어왔던 여성농민! 그녀들의 삶은 당연히 그녀들의 몫일뿐 누구하나 알아주는 이 없다. 알아준다 해도 대를 이어 여성농민으로 키우고 싶은 맘이 생겨나지 않음은 어떤 이유에서인가? 한여름 뙤약볕 호미 던져버리고 싶은 맘 가득하지만 베적삼 흠뻑 젖도록 콩밭을 멘다. 잘 자라거라. 무럭무럭 자라거라. 병들지 말고 실허게 잘크거라. 다들 마음 모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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