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성한 제도로 사회적 약자들만 상처받아

정부, 농촌 현실 및 이주노동자 인권실태 파악 필요
인력지원 치중보다 갈등 완화할 제도적 정비 급선무

  • 입력 2016.07.24 12:33
  • 수정 2016.07.24 12:34
  • 기자명 배정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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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축산업의 이주노동자 제도는 다른 업종처럼 외국인 산업연수제도에서 시작됐다. 농촌지역의 외국인 근로자 도입은 1995년 11월 결정됐으나 1996년 2월 ‘외국인 산업기술 연수 조정협의회’에서 반대의견으로 무산됐다. 이후 농촌의 고령화 및 농촌 취업 기피현상으로 농축산업의 인력난이 심해지자 농식품부는 2002년 7월 외국인 농업연수생 도입을 결정했다. 2003년 1월 ‘외국인 농업 연수생 제도 운영에 관한 지침’이 농식품부의 고시로 발표되고 그 해 7월부터 농업연수생이 입국했다. 8월에는 「외국인 근로자의 고용 등에 관한 법률(고용허가제)」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이주노동자 고용이 본격화됐다.

농업연수생 도입을 결정하고 1년 안에 제도 운영 지침과 관련 법률이 모두 마련됐다. 급하게 지어진 매듭은 꼬이고 말았다. 국가인권위원회(위원장 이성호, 인권위)는 이주노동자의 인권실태를 조사한 보고서에 이주노동자의 인권침해 사례와 해결방안 등을 소개하면서 ‘농축산업 이주노동자의 인권실태는 정책적으로 소외돼왔고 국제경쟁 심화와 시장개방 압력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회적 약자인 농축산업 종사자들이 어쩔 수 없이 또 다른 사회적 약자인 이주노동자들의 희생을 요구하면서 나타난 현상이기도 하다’고 진단했다.

인권위와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에서는 농촌 이주노동자의 인권실태를 다룬 보고서를 발간하고 여러 제도적 개선방안을 제시했다. 그 가운데 고용주인 농민들도 제도개선을 요구하는 부분은 △농한기 △숙식에 관한 것이었다.

농민들은 일이 적어 약속된 근로시간을 채우지 못하는 농한기에도 이주노동자에게 매월 같은 월급을 줘야하는 것에 부담을 느끼고 있었다. 정부에서는 농한기에 일시적으로 노동자를 다른 사업장으로 보내서 일하게 할 수 있는 ‘농업 분야 근무처 추가제도’를 운영하고 있지만 절차가 까다롭고 복잡해 제도 이용률이 상당히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농민들은 농장을 일시적으로 옮기는 것은 이주노동자 관리의 문제와 퇴직금 등의 문제가 얽혀 있어 현실에 적용하기에는 애로사항이 많다고 지적했다. 농한기에 일을 적게 하는 대신 농번기에 업무량을 늘릴 수 있는 탄력적인 근무제도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또 숙식비 지원이나 기숙사 설치 자금 지원 등 이주노동자 주거환경에 대한 정부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일부 농가들은 임금에서 이주노동자의 숙식비를 공제하고 있긴 하지만 합의가 필요한 부분이기 때문에 농가마다 편차를 보이고 있었다. 그러나 고용노동부는 “숙식비 공제의 문제는 근로계약은 민사적 성격으로 표준근로계약서 작성 시 고용주와 노동자의 자율적 합의에 따라 공제액을 설정할 수 있게 하고 있다”며, 숙식비를 정부에서 지원하는 것은 어렵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이주노동자와 관련한 제도는 농식품부, 농협, 법무부 등에서도 다양한 방향을 고려하고 있지만 ‘영농작업반’ ‘외국인 계절근로자’ 등 그 성격이 인력공급에 치중된 한계가 있다. 고용주인 농민과 이주노동자 모두의 인권을 지키고 건강한 관계를 만들기 위해서는 정부의 제도 개선이 필수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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