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도 ‘사람’이다

농업 이주노동자 목소리로 확인한 해법 … 최저임금 수준 급여·사업장 변경 어려움 여전

  • 입력 2016.07.24 12:17
  • 수정 2016.07.24 12:52
  • 기자명 박경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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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등록 이주노동자가 되더라도 더 일하고 싶어요.” 올해로 3년차, 충남 논산의 한 토마토 하우스에서 농장일을 도우며 ‘코리안 드림'을 이뤄가고 있는 캄보디아 출신의 수친(26)씨는 본격적인 토마토 정식을 앞두고 하우스 관리에 여념이 없었다. 30도가 넘는 불볕더위가 지속된 15일에도 미얀마에서 온 두 명의 이주노동자와 함께 하우스에서 상토 관리를 하는 그의 손길은 서두름이 없이 묵직했다. 한승호 기자

지난 15일 찾은 충남 논산의 토마토 하우스 농가. 이곳에서 만난 수친(26)씨는 캄보디아에서 부모님을 도와 쌀농사를 짓다 지난 2013년 5월 한국에 왔다.

수친씨가 한국까지 온 이유는 이른 바 ‘코리안 드림’때문이다. 캄보디아에선 공장에서 한 달을 일해도 200달러 밖에 못 벌지만 한국에선 1,000달러 이상을 벌 수 있다는 것이다.

수친씨는 “허가 기간이 끝나 미등록 이주노동자가 되더라도 한국에서 더 일하고 싶다”는 바람도 전했다. 농장주인 박상규(56)씨는 “수친씨를 성실노동자로 추천할 예정”이라며 “이를 인정받으면 앞으로 5년여 간 근로를 연장할 수 있다”고 했다. 수친씨의 얘기는 좀처럼 보기 드문 사례다. 익히 알려진 농업 이주노동자의 현실과는 많이 달라서다. 여기엔 농장주의 인식이 주요하게 작용했다.

농장주 박씨는 “주변에서 농업 이주노동자들이 도망가는 사례를 숱하게 많이 봐왔다”며 “그 사람들도 같이 살아가는 사람인데 정도 있고 한국에 와서 일하게 됐을 때 열심히 하면 1년에 임금을 10만원씩 올려주기로 했다”고 한다. 다른 농가가 138만원 가량을 지급하는 가운데 박씨의 경우 현재 150만원 가량을 주고 있다. 주목할 대목은 ‘같이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인식이다.

서울경기인천 이주노조의 우다야 라이(46, 네팔) 위원장도 농장주의 인식 개선이 이주노동자 문제를 해결하는 중요한 열쇠 중 하나라고 강조했다. 라이 위원장은 “일한만큼 급여를 줘야 한다는 걸 알아도 모른 척 몰라도 모른 척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노동청에 진정하면 받을 수 있지만 미리 해주면 농장주와 이주노동자간 마찰도 안 생길 수 있다”고 설명했다.

라이 위원장은 여기에 더해 농업분야 노동자가 근로시간과 휴식, 휴일 등에 대해 보호받지 못하도록 예외 노동자로 규정한 「근로기준법 제 63조」와 고용주 승인 없이 사업장을 변경할 수 없도록 한 「외국인근로자의 고용 등에 관한 법률(고용허가제)」도 문제로 지적했다. 또한 겉치레식 근로계약서 체결, 급여에서의 숙박비 공제, 컨테이너와 가건물 등 열악한 숙박 환경도 문제로 짚었다. 라이 위원장이 인식 개선 이외에도 여러 문제점을 꼽은 이유는 국가인권위원회가 지난 2013년 농축산업 이주노동자 161명에 대한 심층 설문조사를 통해 발표한 보고서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 보고서에서 응답자의 90.7%는 근로계약 보다 더 긴 시간 동안 일하고, 71.1%는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월급을 받는 것으로 확인됐다. 60.9%는 원 사업장이 아닌 다른 사업장에서 일을 한 적이 있다고 답해 노동력 불법공급 유형도 드러났다. 또한 44.7%는 욕실과 침실에 잠금장치가 없었고, 52.8%는 숙소에 고용주 등 다른 사람이 마음대로 드나들어 여성 이주노동자의 불안감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산업재해로 인한 보호도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욕설과 폭언, 차별은 일상적인 수준인 것으로 확인된 바 있다.

이듬해인 2014년 국제엠네스티도 보고서를 통해 고용허가제 문제를 되짚었다. 노마 강 무이코(Norma Kang Muico) 국제앰네스티 아시아태평양 이주인권조사관은 “한국의 농축산업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착취는 한국에 오점을 남기고 있다. 한국 정부는 노동력 착취를 위한 인신매매와 강제노동이 만연하도록 하는 부끄러운 제도를 만들었다”며 “만약 한국인이 이러한 인권침해의 악순환의 덫에 빠져 있었다면 큰 분노가 일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라이 위원장의 지적에서도 확인됐듯, 인권위 보고서 발표 이후 3년이 지났지만 농업 이주노동자의 현실에 큰 변화는 없다. 농촌에서 이제 이주노동자가 더 이상 낯설지 않은 가운데 인식의 개선과 더불어 정부 차원의 법제도 개선이 절실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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