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우리는 - 수렵 ③] 명포수가 되는 길

  • 입력 2016.07.17 11:31
  • 수정 2016.07.17 11:34
  • 기자명 이상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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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락 소설가

“저 풀숲에 돌을 던져 보아라.”

노 포수가 말했다. 시키는 대로 민동식이 돌멩이 하나를 집어 던졌다. 아니나 다를까 꿩 한 마리가 푸드득, 날아올랐고 노 포수의 엽총이 불을 뿜었다. 명중이었다.

“뭣하고 있어? 빨리 가서 주워와!”

달려가서 꿩을 수습해왔다. 그 사이에 또 총소리가 났고 민동식은 반대편으로 내달려야 했다. 민동식은 은근히 화가 났다. 군대시절 영점사격을 할 때면 표적지의 한 구멍에다 여섯 발의 총알을 조르륵 꿰맞춰서 교관의 입을 딱 벌어지게 만든 바 있는 왕년의 특등사수가 보기에 꿩 그거 맞춰 잡는 것, 식은 죽 먹기였다.

“나, 이제 조수 그만 할 거요. 내가 이래배도 군대시절에…”

“그래? 그럼 어디 왕년의 특등사수 실력 좀 보자. 자, 총 잡아라.”

노 포수가 한참을 앞장서 걸어가다가 풀숲에 돌멩이를 집어던졌다. 꿩이 두 마리나 날아올랐다. 민동식은 얼떨결에 쏜다고 쏘았으나 총알이 앞으로 나갔는지 뒤로 나갔는지 종적이 없었다. 몇 차례 더 시도를 해봤으나 꿩들이 방귀만 뀌고 도망쳤다. 고정된 표적을 향하여 ‘엎드려 쏴’로 얻은 군대시절의 특등사수 그거, 지리산 사냥터에서는 별 볼일이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조수 노릇을 더 하기로 했다.

민동수가 조수로 따라나선 첫날에 잡은 꿩이 무려 열일곱 마리였다. 잡은 꿩들을 배낭에 집어넣으려 했더니 노 포수가 질색을 했다.

“그냥 이대로 넣었다간 하루 지나면 다 썩어서 못 쓰게 돼.”

노 포수가 배낭 모서리에 달린 쇠갈고리를 꺼내서는 꿩의 항문에다 밀어 넣는가 했는데, 순식간에 내장이 모두 딸려 나왔다. 지리산 도처에서 잡힌 꿩들은 자루에 담겨서 정기화물 편으로 서울의 고급식당으로 보내지는데 내장을 제거해야 상하지 않고 도착할 수 있었다. 그 무렵 쌀 한 가마의 값이 8천원이었는데 하루 사냥을 나가면 3만원 벌이가 거뜬했으니 총 한 자루가 논 열 마지기보다 낫다는 말이 빈말이 아니었다.

조수 생활 몇 달 만에 민동식도 어엿한 사수(射手)가 되었다. 움직이는 표적을 어떻게 쏘아야 맞힐 수 있는지 그 감을 익힌 것이다. 왕년의 특등사수의 실력이 지리산 자락에서 되살아났다. 그 표적이 꿩일 때와 토끼일 때와 노루 일 때, 조준과 발사의 요령과 타이밍을 각각 달리 해야 한다는 점도 터득하였다. 어느 날 사냥에서 돌아오던 길에 지리산의 한 산간마을 주막에서 마주앉았을 때 노 포수가 집안 내력을 털어놓았다.

“조부 때부터 사냥으로 먹고 살았으니 포수는 우리 집의 가업인 셈이지. 자넨 짐승만 잘 맞혀 잡으면 명포수인 줄 아나? 그게 아니야. 내 조부님은 이 지리산에서 엽총으로 짐승만 잡았던 것이 아니었어. 일제 놈들에게 맞서서 독립투쟁을 했다니까. 그야말로 명포수였어.”

1900년대 초, 일제가 조선에 대한 식민지 경략 의도를 보이자 전국에서 대대적인 의병활동이 일어났는데 물론 의병운동의 지휘자들이야 먹물 먹은 선비들이었지만, 일선에 나가 총 들고 싸운 전사들은 포수들이었다. 이에 자극받은 일본 군경은 을사늑약을 1년 앞둔 1904년에 ‘군사경찰훈령’이라는 것을 반포하여 총포, 화약, 기타 무기류 등에 대한 일제 검사를 실시하여 그 소유자를 엄벌하겠다고 나섰다. 이에 따라서 우리나라 직업포수들은 국권상실을 전후한 이 시기에 결정적인 쇠퇴기를 맞았던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포수들의 맥이 끊어진 것이 아니었다. 1902년에 홍범도를 비롯한 전국의 포수 대표들이 항일단체인 ‘포수단’을 조직하겠다고 선언하자 숨어있던 포수들이 줄줄이 몰려나와 가담하였다. 이때 노 포수의 조부 역시 그 일원으로 활약했다는 것이다.

노 포수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신참 포수 민동식은 갑자기 꿩이나 잡고 있는 자신이 영 쩨쩨하게 느껴지더라고 했다. 당장이라도 저 만주의 봉오동 쯤으로 달려가서 홍범도의 군사가 되어서 싸우는 상상을 했노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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