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농민으로 산다는 건] 여성농민이 하루 집을 비우면…

  • 입력 2016.07.17 11:28
  • 수정 2016.07.17 11:31
  • 기자명 황정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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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정미 (경북 의성군 봉양면)

자두철이다. 이 자두는 성질이 급해 익는 족족 따내야 한다. 안 그러면 그 싱싱함도 급격히 떨어지고 맛도 큰 차이가 있다. 그래서 자두 따는 철이 되면 모든 것이 정지되고 오로지 자두에만 매달리게 된다. 그래서 미처 손 보지 못한 고추밭과 땅콩밭, 고구마밭은 풀로 우거진다. 그러나 어쩔 수 없다. 그냥 못 본척 지나친다. 자두 다 따내고 보자고 맘 속으로 기약을 할 뿐이다. 이 시절에 난생 첨으로 필자라는 이름으로 글을 내고 있는 한국농정신문이 재창간 10주년이라고 기념식에 꼭 참석해 달란다. 자두 따느라 직접 전화는 받지 못했지만 똑같은 번호가 3번이나 찍혔다. 그 조급함이 느껴진다. 농민회 처장을 맡고 있는 남편 전화도 불이 난다. 전농의 한국농정신문이니…. 자두밭을 둘러보면 도저히 나서지 못 할 것 같고, 남편의 뒷 걱정없이 같이 가자는 말에 두 눈 딱 감고 나설 채비를 했다.

경북도연맹의 차에 찡겨서 가는데 비가 쏟아진다. 다행히 의성은 비가 오지 않는단다. 다른 사람들은 비가 오지 않아서 자두 따는데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서울에 도착해 행사장에 가니 벌써 준비가 완벽하다. 식장을 빼꼼히 들여다 보니 각 도연맹 별로 식장이 꾸며져 있다. 좀 난감한 맘이 든다.

오는 차 속에서 전여농의 각 도 연합도 한국농정신문의 주주인데 기념식에 참석하나 싶어 연락을 해보니 소식이 깜깜하다. 지역에서 전농과 전여농은 거의 부부관계처럼 지내는데 중앙은 또 다른 느낌이다. 나중에 보니 전여농은 외부단체로 자리 배정이 되어 있었다. 하여튼 10주년 기념식은 많은 의미를 담고 알차게 진행됐다. 그 힘든 시기를 넘기고 이렇게 재창간 10주년을 성대하게 할 수 있음에 진심 어린 격려를 드린다.

저녁으로 나온 맛난 뷔페음식이 너무 맛나 짠데도 많이 먹었다며 오는 차 속에서 내내 생맥주를 찾으시던 한 간부님의 소원이 너무 간절해 치맥으로 뒷풀이를 하고 늦은 시간 집으로 귀가했다.

엉망이 된 집과 아침에 던져 두고 갔던 빨래들이 온 거실을 덮고 있다. 일단은 자기로 했다. 낼 아침 아니 새벽에 보자며 무겁게 내려 오는 눈거풀을 덮었다.

새벽에 눈이 뜨인다. 날도 곧 비가 쏟아져 내릴 기세다. 남편을 깨워 일단 자두밭으로 향했다.

자두가 기다림에 지쳐 있다. 정신없이 자두를 딴다. 사다리에 올랐다 내렸다를 반복하면서 우선 급한 자두를 딴다. 맘 속에는 이런 자두를 두고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서울을 다녀왔으니 나도 참 대단하다 싶다. 어떤 나무는 아예 자두색깔이 진하게 익어있다. 남편은 인근 대구에서 민권연대의 청년들을 불렀다. 남녀 4명이 와서 비가 쏟아지는데도 불구하고 자두를 잘도 딴다. 재미있단다. 그네들이 보기에도 일의 급박성이 느껴지나 보다. 나는 자두포장 작업을 계속 하고 청년들은 자두를 따고 남편은 기자회견을 하러 나가고.

이런 일의 경우를 두고 보더라도 남편과 나는 큰 차이가 난다. 같이 1년 내내 지은 농사라 느끼는 맘은 같을 터인데, 남편은 별 내색이 없다. 동동거리는 나와는 다르게. 그렇게 한바탕 난리를 쳐서 간발의 차이로 자두는 수확을 했고, 공판장으로 낼 수 있었다. 공판장 가격은 너무나 턱 없지만 그렇다고 나무에 매달린 채 물러지는 자두는 더 볼 수가 없다.

하여튼 한국농정신문 10주년 행사는 잘 다녀왔고, 자두 농사도 그만하면 잘 대처했다. 그 날 찍어준 사진 3장이 장식장에 세워져 있다. 남편과 나의 독사진과 함께 찍은 사진.

20주년 행사에도 꼭 참석해서 사진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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