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새울의 눈물’, 10년 만에 성주서 비극 되풀이되나

평택에 세계 최대 단일 미군기지 ... 포천엔 아시아 최대 미군 사격장도 모자라
성주엔 ‘전자파 유해 논란’ 사드 배치까지

  • 입력 2016.07.17 07:22
  • 수정 2016.07.22 12:11
  • 기자명 홍기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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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농민이 미군에 쫓겨나는 비극이 10년 만에 반복될 것인가. 미군 사격장에 고통받는 포천지역 농민들의 아픔이 계속되는 가운데 미군의 사드(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THAAD) 배치로 성주지역 농민들도 생존의 불안에 시달리게 됐다.

지난 13일 국방부는 성주군 성주읍 성산리에 사드를 배치하겠다고 공식 발표했다. 앞서 8일 한미 공동으로 사드배치 결정을 공식화한지 불과 5일 만에 이뤄진 조치다. 국민적 동의는커녕 배치지역 주민 설득과정도 없었다.

이 날 국방부는 “한미 공동실무단은 사드 체계의 군사적 효용성을 극대화하고 지역주민의 안전을 보장하면서 건강과 환경에 영향이 없는 최적의 배치부지로 경북 성주지역을 건의했고, 이에 양국 국방부 장관이 승인했다”고 밝혔다.

같은날 성주군 성주읍 성밖숲에서 열린 사드배치 반대 군민궐기대회엔 3,000여명이 참석해 사드배치 결정에 반발했다. 대회에 참석한 김항곤 성주군수와 배재만 성주군의회 의장은 사드 배치 반대 혈서를 쓰기도 했다. 궐기대회 이후 군민 200여명은 국방부를 찾아 혈서와 반대서명서를 전달했다. 심지어 여당인 새누리당에서도 소속 국회의원 21명이 이 날 성명을 통해 “사드 설치에 따른 레이더 전자파의 진실을 제대로 알려야 한다”고 사드 배치에 반발했다. 사드 레이더 전자파의 인체 유해성 논란이 끝나지 않았다는 반증이다.

이재동 성주군농민회장은 “2만여명이 사드 배치 지역 앞에서 사는데 인구밀도가 높지 않다는 게 장점이라는 설명이 이해가 안 간다”라며 “설득이 필요한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사드가 배치될 포대는 성주읍과 불과 1.5㎞ 떨어져 있다. 이 회장은 “국회 (비준)동의도, 환경영향평가도 없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세상천지 이런 법은 없다”고 규탄했다.

정부의 미군을 위한 불도저식 일방통행은 10년 전 평택시 대추리가 겪은 상황을 떠올리게 한다. 한미 양국은 2004년 용산기지와 미2사단의 평택 이전에 합의하고 2006년 5월 4일 행정대집행을 실시해 대추리 마을의 상징인 대추분교를 강제 철거했다. 당시 1만3,000여명의 경찰과 3,000여명의 군인을 동원한 행정대집행, ‘여명의 황새울 작전’으로 524명이 경찰과 군의 무절제한 폭력 속에 연행됐고 이튿날인 5일엔 100명이 추가로 연행되기도 했다. 이어 2007년 4월 주민들이 모두 임시 거주지로 이주하면서 강제 퇴거가 완료됐다. 
 

신종원 대추리 마을이장이 지난 9일 평택 미군기지가 내려다보이는 내리의 한 야트막한 언덕에서 논과 밭 등 옛 흔적이 모두 사라져버린 황새울 들녘을 내려다본 뒤 씁쓸한 표정으로 뒤돌아서고 있다. 한승호 기자

현재 공사 중인 평택 주한미군 K-6기지는 기존 기지를 포함해 총면적 1,467만7,000㎡로 단일 미군기지로는 세계 최대 규모다. 지난해 한국국방연구원은 평택 미군기지 이전 사업의 경제적 효과로 경제유발 효과 18조원, 고용유발 11만여명, 평택지역 소비(2020년 기준) 연간 5,000억원으로 전망한 바 있다.

하지만 기지 완공 1년을 앞둔 평택의 오늘은 밝아보이지 않는다. 대추리 주민들이 쫓겨난지 10년이 지난 평택지역은 미군기지 주변 소음과 오염 문제가 잇따르고 있다.

임윤경 평택평화센터 사무국장은 “미군기지 내 낙후된 송유관에서 기름이 유출돼 주변 농지로 흘러드는 사건이 많다”며 “비행기, 헬리콥터 이착륙 소음피해도 이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미군기지 주변을 함께 둘러본 신종원 대추리 평화마을 이장은 “부동산만 춤추고 있다. 외지 ‘떳다방’만 들어서고 있고 정작 지역상권은 시들어가는 상태다”라고 안타까워했다.

경기도 포천시 영중면에 위치한 미군 로드리게스 사격장은 13.52㎢ 규모로 아시아에서 가장 큰 미군 사격장이다. 인근 농민들은 사격장이 들어서고 63년 동안 야간에도 계속되는 포성과 도비탄 사고 등을 겪고 있다.

올 들어 미군과 국방부와 지역주민들이 사격장 문제 해결을 협의했지만 큰 진전은 없는 모습이다. 이에 포천시 군관련시설범시민대책위원회는 지난달 21일부터 24일까지 청와대 앞 릴레이 1인 시위를 전개하기도 했다. 지역 주민들은 “최선의 해결책은 사격장 폐쇄다”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세계최대 단일 미군기지와 아시아 최대 미군 사격장에 이어 사드 배치까지. 정부는 언제까지 미군을 위해 농민들의 ‘계속 이 땅에서 농사짓고 싶다’는 소박한 바람을 짓밟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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