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명의 황새울 작전, 그 후 10년

‘농사짓고 싶다’ 외쳤던 주민들, 공공근로로 힘겨운 삶 … “논밭만 봐도 고통”

  • 입력 2016.07.15 10:58
  • 수정 2016.08.13 11:04
  • 기자명 김은경 기자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국농정신문 김은경 기자] ‘바람이 머물다간 들판에 모락모락 피어나는 저녁연기’로 시작하는 동요 ‘노을’의 무대가 됐던 경기도 평택시 팽성읍 황새울 들판. 지난 9일 찾아간 그곳은 미군기지 부대시설들이 빽빽하게 들어섰다. 미군기지 이전에 반대하며 935일간 촛불을 들었던 대추리 주민들의 삶은 2006년 5월 4일 이후 송두리째 바뀌었다. 최대 규모의 군과 경찰이 투입돼 논밭을 짓밟으며 살아있는 지옥을 방불케 했던 여명의 황새울 작전, 그날 이 후 10년이 흘렀다. “그 비옥했던 논을 다 빼앗기고….” 국가 안보를 이유로 삶의 터전을 송두리째 미군기지에 내어주고 10년간을 주변인으로써 살아온 대추리 주민들에게 남은 건 부자동네라는 오해와 시샘, 오랜 싸움 끝에 생채기처럼 남은 화병, 겨우 지어먹을 만한 텃밭 100평이 전부였다. 비옥한 논에서 생산된 쌀도, 이웃과 살갑게 나눈 정도 ‘여명의 황새울’ 작전 그날 이후, 주민의 것이 아니었다. ‘대추리 평화마을’ 황새울 기념관 옥상에서 내려다 본 텃밭이 주민들에게 남은 유일한 농사짓는 땅이었다. 한승호 기자

‘올해도 농사짓자!’가 투쟁구호였던 마을공동체는 산산이 붕괴됐고 이웃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삶의 근간이 뿌리째 뽑혀나갔다. 팽성읍 노와리에 있는 ‘대추리 평화마을’에서 만난 송재국(79) 씨의 지난 10년은 땅을 빼앗긴 농민들의 고통을 줄곧 말하고 있었다. 그와 그의 눈에 비친 이웃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땅은 농민에겐 떼려야 뗄 수 없는 피붙이 같은 것임을 실감했다.

송 씨는 대추리에서 30년을 살았다. 손발이 부르트도록 노력해 땅을 장만해 벼농사만 7,500평을 지었다. 그는 “대추리는 상당히 따뜻하고 좋은 부락이었다”며 “일개 마을로는 제일 컸는데, 모심을 때도 작업반을 4개로 나눠 서로 잘하려고 경쟁하듯 도와가며 살았다. 호박이나 김치를 썰어놓고 부침개를 해도 꼭 이웃끼리 나눠먹었다”라고 회상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모습을 찾아볼 수가 없다고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평화마을로 이주해온 44가구는 끝까지 싸움을 했던 주민들 100여명이다. 송 씨는 “대추리 사람들이 상당히 온순한 성격이었는데, 4년간 미군과 정부를 대상으로 싸우면서 성격들을 다 버리게 됐다”며 “예전처럼 온화한 맛이 없고 농담도 잘못하면 싸움으로 번지는, 그런 환자들이 됐다”고 안타까워했다. 지나가다 논밭만 봐도 화병에 시달렸다. 못자리할 때는 더욱 심했다. 송 씨는 “모심는 거 보고 있으면 속에서 막 불이 났죠. 수확할 때도 불나고. 지금은 그런 마음이 조금 가시는 시기이기도 한데…. 벼가 누렇게 익으면 또 그냥 다 내 것처럼 속이 뒤집힌다”고 했다.

다른 주민들도 마찬가지였다. 주민들은 2010년 10월 평화마을에 정착하기 전 팽성읍 송화리 임시거주지로 마련된 빌라에서 3여 년간 살았다. 매일 새벽 4시 즈음 깨어난 주민들은 아무 것도 할 일이 없었다. 보상을 많이 받아 부자동네라는 소리도 들려왔다. 남의 속도 모르는 터무니없는 소문들이었다. 송 씨의 경우 보상금으로 집터 200평과 밭 100평을 사고, 살 집까지 짓고 나니 대부분의 보상금이 사라지더라는 것.

현재 대부분의 주민들은 공공근로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다른 마을에 가서 도로의 쓰레기를 줍거나 풀을 깎는 일이었다. 한 달에 100여 만 원을 벌었던 송 씨는 “피를 토하는 일이었다”고 고개를 저었다. 그마저 이달 종료될 예정이라 주민들은 이후 생계 또한 막막하다. 주민들 60%정도가 70~80대 고령이며 7분의 1정도는 독거노인이다. 모가 자라는 것만 봐도 고통일 수 있는 삶을 어떻게 짐작이나 할 수 있을까?  

저작권자 © 한국농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