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책 바깥의 ‘경자유전’

  • 입력 2016.07.10 00:35
  • 수정 2016.08.12 12:49
  • 기자명 권순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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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권순창 기자]

경자유전은 헌법에서 특별히 명시하고 있는 농업경제의 원칙이다.
그러나 헌법책 밖 농촌현장엔 아직도 임차농들의 한숨이 가득하다.
정부가 뒤늦게 임차농 보호책을 구상 중이지만, 앞길이 밝지만은 않다.



우리나라 헌법은 경작자가 직접 농지를 소유하는 ‘경자유전’을 지향한다. 그러나 한편으로 농지의 효율적인 이용을 위해 임대차의 여지도 두고 있다. 경자유전의 원칙을 100% 달성할 수 있다면야 문제될 것도 없겠지만, 토지 소유관계가 복잡한 농촌현실에서 농지 임대차는 불가피한 단면이다.

불가피하다면 적어도 설움받지 않도록 보호해야 한다. 지주와의 관계에서 철저히 ‘을’의 위치에 처한 임차농들의 볼멘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금과옥조같은 헌법 조항을 버젓이 두고서 법률은 대체 뭘 하고 있을까. 주택이나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은 있는데 농지 임대차보호법은 왜 없는걸까.


법률상 임차농 보호, 유명무실

사실 「농지임대차관리법」이라는 이름의 법률이 존재했던 적이 있다. 1986년에 제정한 이 법은 그러나 현실성 없는 내용과 집행의지의 부족으로 시행에 큰 차질을 빚었다. 1990년에야 겨우 시행령이 제정됐지만 채 자리잡기도 전에 1994년 제정한 「농지법」에 흡수돼 사라져버렸다.

현행 「농지법」은 그래서 이 「농지임대차관리법」을 준용한 임차농 보호조항을 담고 있다. 농지임대 자격조건과 최소계약기간(3년), 서면계약 원칙 등이 주요 내용이다. 그러나 이들 조항은 여전히 현실구속력이 약하다. 애당초 농지의 부정취득이 용이한 탓에 도시지주 등의 편법적 임대차가 만연하며, 3년이란 최소계약기간에도 불구하고 1년단위 계약 성행으로 ‘메뚜기 신세’ 임차농이 늘어나는가 하면, 서면계약 또한 강제조항이 아닌 탓에 구두계약이 일반적인 실정이다.

그나마도 최소계약기간과 임차료상한선 등 핵심조항들은 1999년 삭제된 이후 2012년 복원되기까지 13년동안 공백 상태에 있었다. 가장 중요한 임차료상한선은 끝내 복원되지 않았다. 당초엔 임차료상한선에 대해 ‘지역별 농지관리위원회를 통해 조례로 설정한다’는 사문화된 조항이라도 있었지만(당시 농지관리위원들은 농지관리위원회가 뭔지도 몰랐다고 한다) 지금은 법률의 보호가 전무해 지역에 따라서는 임차료가 생산량의 50%까지도 유지되고 있다. 임차농은 그 동안 제도의 울타리 밖에서 사실상 방치되고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법률상 임차농 보호조항은 유명무실하고 제도개선 논의는 이제 걸음마를 떼고 있다. 사진은 전국에서도 임차료가 가장 높은 지역에 속하는 전북 김제의 농지.

 정부의 방치  뒤늦게 팔 걷어

그럼 정부는 왜 임차농을 방치하고 있었을까. 말하자면 참 애매한 얘기가 된다. 우선 농지 임대차라는 것은 표면적으론 헌법상 경자유전의 원칙과 배치되는 개념이다. 임대차 문제는 아무래도 정책순위가 뒤쪽으로 밀릴 수밖에 없다.

더 큰 문제는 현장 농민 간의 이해관계가 상충한다는 점이다. 가령 젊고 농지가 많이 필요한 농민에겐 임차농 보호가 절실하지만 고령의 재촌지주들에게 이는 달갑지 않은 정책이다. 소수의 대지주들이 아니라 다수의 소지주들이 농지를 분할하고 있다면 임차농 보호정책은 지주의 자경 비율을 높여 오히려 임차농들에게 농지 품귀라는 역효과를 안길 수도 있다.

하지만 언제까지고 방치할 수 없는 문제임은 분명하다. 농식품부는 올해 농지 임대차 문제 해결에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현장 실태조사마저 전무한 상태에서 우선 지난달부터 한국농촌경제연구원과 함께 광범위한 실태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임대차 현황을 포괄적으로 조사해 이를 바탕으로 농지법 개정 등 개선방안을 강구해볼 계획이다. 현장의 조사 협조가 원활하지 않고 민감한 사안인 만큼 농식품부도 매우 조심스런 태도를 보이고 있지만 일단 올해 말까지는 정책의 윤곽이 나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제도개선 어떻게 해야 하나

전문가들은 정책 개선에서 참고할 만한 모델로 공통적으로 일본이나 프랑스를 꼽는다. 지역별로 환경이 다르고 중앙에서 모든 것을 파악하는 데 무리가 있으므로, 지역별 기구를 통해 농지 임대차 행위를 관리하는 방법이다. 지역별 기구는 일본처럼 농민단체를 중심으로 구성하거나 농어촌공사 지역조직을 활용할 수 있다.

장상환 경상대 명예교수는 “농지전용이 무분별하게 이뤄져 농지값이 비싸지고 임차료가 오르는 면이 있다. 농지전용을 어렵게 하고 개발이익을 최대한 환수토록 해야 한다”고 덧붙였으며 김홍상 농경연 선임연구위원은 “농지법이 효과를 거두려면 각종 패널티나 인센티브를 통해 강제력을 담보할 수 있어야 한다. 특히 농지는 임차권뿐 아니라 투자안정성에 대한 보호까지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석두 GS&J 연구위원은 “경자유전 내용을 담은 농지법에서 임대차 보호 얘기를 하는 건 역설이다. 예외적 내용인 임대차를 다루기 위해선 농지법 개정보다 별도의 법을 만드는 게 맞다”고 제안하기도 했다.

취재를 하면서 가장 먼저 만난 사람은 농지 임대차 문제에 각별한 관심을 갖고 있는 김제 농민 조경희씨다. 그는 임차농 보호정책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장기적으론 경자유전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하고 일차적으론 임차농을 보호하겠다는 목적을 확실히 해야 한다. 임차료는 반드시 상한선을 둬야 하는데 여기엔 아무래도 지역별 기구의 역할이 필요하다. 위법에 대해선 엄격한 처벌조항을 둬야 효력을 담보할 수 있다.” 신통하리만치 전문가들의 의견과 겹치고 있다. 상투적인 대사지만, 정답은 언제나 현장에 있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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