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훈의 농사직썰]우리나라 3농은 어디에 있는가

  • 입력 2016.07.03 10:35
  • 수정 2017.01.02 09:25
  • 기자명 김성훈 중앙대 명예교수 경실련 소비자정의센터 대표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성훈 중앙대 명예교수 경실련 소비자정의센터 대표]

대저 농사란 하늘이 낳고(生), 땅이 기르고(育), 사람이 자라게(長) 한다. 이렇듯 천지인 3才가 조화를 이뤄야 농사가 가능하다. 1만5천여 년 전 충북 청원군 소로리에 농경문화(農耕文化)가 싹 틔우기 시작한 이래 한결 같이 지켜져 온 대자연의 섭리이다.

우리 풍토에 알맞는 벼농사와 우리 환경생태계에 적합한 밭농사를 주관하여 함께 더불어 살아 온 삶의 터요 업(業)의 주체가 다름 아닌 농업, 농촌, 농민, 즉 3농(農)이다. 3농이 잘 살아야 나라와 백성의 삶이 풍요롭고 평안하다. 예나 지금이나 이 공동체의 기본 원리는 변함이 없다.

세종대왕의 농사직설(農事直說)

조선 왕조 518년간 동안 27대의 왕이 재위에 있었으나 그중에서 제4대 세종대왕(1397-1450)을 일컬어 임금 중의 임금, 으뜸가는 성군(聖君)으로 꼽는다. 세종대왕의 통치철학은 한마디로 “민유방본 본고방녕 식위민천(民惟邦本 本固邦寧 食爲民天)”이었다. 백성이 오직 나라의 근본이며 그 근본이 튼튼해야 나라가 평안하다. 백성들은 먹는 것을 하늘로 삼고 사느니, 모든 통치는 사람 중심, 食과 농업 중시일 수밖에 없다.

구체적으로 세종대왕 재위기간 중의 중요 업적을 연대순으로 꼽아 보면, 1420년 「집현전」 설치, 1429년 「농사직설」 간행, 1433년 「혼천의」 제작, 「향약집성방」 완성 및 국경안보강화, 1441년 「측우기」 발명, 1443년 「훈민정음」 창제, 1446년 「훈민정음」 반포 등의 순서이다. 집권기간 내내 일관되게 인재를 배양하여 그들과 함께 민생창달과 부국강병을 도모하고 백성들의 삶을 편안하게 하여 향기 높은 문화융성의 나라를 만들어 가는 일에 매진하였다.

세종대왕이 첫 번째 실물정책으로 착수한 과업이 다름 아닌 우리나라 풍토에 맞는 농사방법의 개발 보급이었다. 문신 정초(鄭招)와 변효문(卞孝文)에게 명을 내려 중국에서 개발한 중국농서 말고 우리나라 실정에 맞는 우리 농법을 집대성 한 「농사직설(農事直說)」을 간행케 한 것이다. 농사를 잘 짓는 각지의 농부들에게 물어서 땅의 위치와 성질에 따라 농사를 지어온 경험들을 자세히 편찬하여 각 지방 수령들에게 권농의 지침서가 되게 하였다.

종자의 선택과 보관 저장, 종자 처리, 논·밭갈이, 각종 곡물과 목화의 재배법들을 망라하고, 오늘날의 직파법, 묘종법, 건답법 등이 포함될 만큼 선구적인 이 책에는 그 외에도 날씨, 수리, 지세 등 환경조건에 따른 다양한 재배법과 여러 농기구 사용법, 녹비 퇴비 외양간 거름 만들기, 줄뿌리기, 막뿌리기, 섞어기르기, 단작, 혼작, 간작, 2년3작법, 휴한법, 이앙법과 도열병 처리법 등이 포함돼 있어 가히 한국 최초의 농업 백과사전이며 실용 지침서였다.

세종대왕의 그 섬세하고 자상하신 농업, 농민사랑, 백성 위주의 정신은 무릇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최고 권력자들이 마땅히 본받고 따라 행해야 할 표상이다. 대왕께서는 농사직설에 이어 조세관련 공물법을 제정 실시함으로써 백성(농민)들이 골고루 잘 살 수 있도록 배려하는 일도 잊지 않았다.

참으로 풀뿌리 백성들을 이처럼 어여삐 여기고 실천한 최고 통치자가 우리 정치사에 얼마나 될까. 백성들의 삶을 물질적으로 문화적으로 윤택해지게 함에 있어 세종대왕은 와병 중에도 노심초사, 연구하시었다.

▲ "이명박근혜 정권 아래서 3농(농업 농촌 농민)이 서 있는 좌표와 나아갈 방향은 어디인가 조차 분간하기도 힘들다. 이 같은 우문(愚問)을 던지고 셀프(self) 대답하려는 것이 앞으로 이 칼럼이 지향하는 바이다." 한승호 기자

‘유체이탈’ 최고경지에 이른 현 단계 우리나라 정치·경제·사회 구조

날이 가고 달이 가고 해가 갈수록 핍박해지는 오늘날 대한민국의 풀뿌리 백성(民草)들의 삶, 특히 농촌 농민 노동자들의 삶을 생각해 볼 때 세종대왕 때의 어질고 착한 나라 정치 상황이 아주 먼 나라의 이야기로 들린다.

그러나 현실세계에서는, 열일곱 살 한창 나이에 “가만히 있으라”는 방송만 믿고 선실에 꼼짝하지 않고 기다리다가 바다 속 깊숙이 수장되어 있는 외로운 혼령들이 있다. 안전하다는 청부과학자들의 연구보고서와 그에 근거한 정부당국의 무위 무대책의 안일한 조치만을 그냥 믿고 구매하여 사용한 「옥시싹싹」 가습기 살균제 살인사건, 그로인해 무참히 죽어간 수많은 민초들도 있다.

2012년 대선 때 대통령 후보의 선거공약, 즉, 쌀 한 가마니 값을 당시의 시세 17만원에서 21만원으로 올려주겠다는 약속을 믿고 농사짓다가 정작 가을 추수가격이 15만원으로 곤두박질하자 약속을 지키라고 상경해 데모에 참가한 것이 무슨 죄이던가. 경찰 공권력의 무자비한 물대포에 쓰러진 이후 아직까지 깨어나지 못하고 식물인간이 된 7순의 백남기 옹도 있다. 아! 이들은 누구이며 누구에 의한 희생양이던가.

죽여 놓고 자빠뜨려 놓고도 당국의 공식 사과는 커녕 빈말이라도 따뜻한 위로의 말 한마디 건네지 않고, 소박한 위문행차마저 한사코 꺼리는 권력자들, 무엇이 그리 바쁘고 고픈가, 겨우 한다는 일이 형해화(形骸化)된 관 주도의 새마을운동을 국제화하고 아프리카에 보급하는 일이 뭐가 그리 대단하고 급하단 말인가.

사고현장에는 그 수많은 행정, 농림 해양 관련 부서의 고위 관료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고 장, 차관들 역시 윗분의 심기 관리하기에만 골몰하는 정부행태에 대해 광화문 광장에서 그네들이 오 갈 때마다 지켜보고 있는 세종대왕(상)은 뭐라고 속삭여 줄지, 그 또한 궁금하다. 말 따로 행동 따로, 국민 따로 권력 자본 따로, 어제 한 말 따로 오늘 하는 말 따로, 문자 그대로 유체이탈의 극치에 도달한 우리나라 정치 경제 사회 정부의 현주소이다.

직설로 풀어보는 ‘이명박근혜’ 농정

필자가 한국농정신문 재창간 10주년을 기해 새로이 개설된 이 칼럼을 맡기로 승낙한 이유는 일찍이 공자님께서 말씀 하신 바 “종심소욕 불유구(從心所欲 不踰矩: 자기 마음에 따라 하고 싶은 대로 해도, 법도를 어기지 않는다)”의 7순에 들어선지 오래 됐기 때문이다. 공명심 등 세속적인 욕심을 떠나보낸 지 오래 되었고 올곧은 글을 쓰고 말을 한다 해서 새로이 얻을 것도 잃을 것도 없는 나이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하기사 내 또래의 좀비들이 정, 관계에 요즘 심심찮게 나타나긴 하지만, 욕심이 과하면 탐욕이 될 뿐이다.

오늘은 첫 회이다 보니 몽당붓으로나마 이 시대의 농사와 농정의 기본방향과 좌표, 기본원칙을 개관하는 것으로 시작하고 싶다. 첫 번째, 세종대왕의 기본철학과 애농 애민 경천사상에 입각해 볼 때 오늘날 우리 농업 농촌 농민의 중요성이 온전히 인식되고 평가되고 있는가이다. 그 대답은 필자가 아닌 오늘을 살고 있는 장삼이사 뭇 농부님들이 대답해 줄 것이라 확신 한다.

이른바, 신자유주의시대, 다국적 초거대기업자본이 지배하는 코포라토크라시(Coporatocracy) 시대의 소농·가족농의 존재는 그야말로 귀찮은 존재이거나, 그들의 이윤극대화와 식량지배과정에 오로지 걸림돌일 뿐이다. 거대기업자본과 유착한 권력자들이 지향하는 국정운영에도 크게 반(反)하는 존재가 된다. ‘소농 가족농을 죽여야 대기업 산업농업이 산다’는 논리가 국가 이익의 이름하에 주장되고 있잖은가.

IMF 환란 중에 외환은행을 잡수시고 ‘먹튀’한 론스타의 투자귀재 죠지 소로스가 “농업은 미래성장산업”이라고 한마디 하자, 대한민국의 대통령과 농림부가 앵무새처럼 따라 한다. 소로스 같은 이들에겐 소규모 농민의 인권과 국가의 식량주권은 안중에 없다.

다만 GMO(유전자조작) 식품 대기업과 화학·농약·식품 산업의 이익 보호만이 급선무이다. 유기농업, 토종종자 지킴이 등은 이들 외래자본가 세력의 눈에는 가시와 같은 존재이다. 그들에 자진 매수당한 연구기관, 학자, 언론, 정부 관료들의 눈에 비친 대한민국 소농·가족농들은 이미 사라져야 할 대상이다. 백남기, 전용철, 홍덕표처럼 이미 공권력의 횡포 앞에 쓰러진 소농들의 인권은 애당초 존재하지 않았어야 했는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은 끝없이 이어진다. 그 첫 번째 화두 역시 박근혜 정부가 과연 우리 농업 농촌 농민 그리고 식량자급을 올바로 살리고 싶어 하는가이다. 그러면 3농의 기본인 농지제도는 지금 어떻게 운용되고 있는가? 통일농업정책과 수입농산물 정책은 어디까지 와 있으며, 단골 메뉴인 농업의 세계화와 6차산업화는 지금 어떻게 변형되어 있는가. 도대체 우리나라 농업에 고유한 우리의 것은 무엇이며 얼마나 잘 보전 보호되고 있는가?

한마디로, 이명박근혜 정권 아래서 3농(농업 농촌 농민)이 서 있는 좌표와 나아갈 방향은 어디인가 조차 분간하기도 힘들다. 이 같은 우문(愚問)을 던지고 셀프(self) 대답하려는 것이 앞으로 이 칼럼이 지향하는 바이다.

* 김성훈 전 농림부장관의 우리 농정에 대한 속시원한 돌직구, 농사직‘썰’을 매월 1회 게재합니다.

저작권자 © 한국농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