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우리는 - 수렵 ①] 노루는 왜 뒤를 돌아보나

  • 입력 2016.07.01 17:28
  • 기자명 이상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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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락 소설가

나무꾼이 산에 갔다가 꿩 한 마리를 사로잡았다. 시장하던 터에 잘 됐다 싶었다. 목을 비튼 다음, 정성껏 털을 뽑았다. 구워 먹자면 불을 피워야 했다. 나뭇가지를 모아 모닥불을 피웠다. 아, 그런데 돌아보니 꿩이 안 보인다. 숨이 끊어진 줄 알았는데…. 허탈해진 나무꾼이 쩝쩝, 입맛을 다시고 나서 자위 삼아 이렇게 투덜거렸다.

“달아나 봤자 꿩 저만 춥지.”

어디서 들은 얘기냐고? 내가 만든 얘기다.

원시 경제를 간단하게 ‘수렵·어로·채취’ 경제라 일컫는다. 소싯적 나의 ‘원시생활’도 환경이 썩 괜찮았다. 바다가 가까이 있었으니 일곱 살 때부터 낚시질을 했다. 큰 산이 마을 뒤에 있었으므로 철따라 이런저런 열매를 따서 배를 채운 날이 많았다. 문제는 수렵이다. 나는 한 번도 사냥을 해서 먹을거리를 구해보지 못 했다.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새총을 열 개도 넘게 만들어봤으나 나의 돌멩이 탄환은 번번이 목표물을 빗나갔으므로, 결국 참새 한 마리 잡지 못 한 채 나의 석기시대가 지나가 버렸다.

육촌인 상철이 형은 나의 우상이었다. 그는 무엇이든 잘 했다. 싸움도 잘 하고 고기도 잘 낚고 나무도 잘 탔다. 어느 날 함께 갯가에 나갔다가 보리밭 사잇길을 따라 귀가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여남은 마리의 산비둘기가 날아오더니 건너편 돌무더기에 내려앉았다. 상철이 형이 손가락을 입술에 갖다 대면서 내 어깨를 눌러 앉혔다. 십오 미터쯤 떨어진 거리였다. 형은 비둘기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로 나를 향해 왼손을 내밀었다. 그는 왼손잡이였다. 나는 잘 훈련된 수술실의 간호사처럼 길바닥에서 계란만한 돌멩이 하나를 집어 형에게 쥐어주었다. 형이 돌멩이 쥔 손을 뒤로 빼서 목표물을 겨누나 했더니 드디어 돌이 날았다. “퍽!” 소리와 함께 비둘기 무리가 “후다닥!” 날아올랐다. 그런데 비둘기들이 날아오른 자리에 새털이 자욱하게 날렸다.

“잡았다!”

상철이 형이 소리쳤다. 돌무더기 쪽으로 달려간 형이 꽤 큼지막한 비둘기의 날갯죽지를 잡고서 득의양양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날 저녁 고놈을 구워 먹으면서, 세상에는 닭고기보다 훨씬 더 고소한 날짐승 고기가 따로 있다는 사실을 맛나게 경험했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재미난 구경은 노루사냥이었다. 뒷산에 서식하는 노루가 인가 근처까지 내려오는 일은 드물었다. 그런데 어느 날, 바로 우리 집 아래 밭두렁 쪽에 노루 한 마리가 나타났다. 나는 뉘 집 송아지가 뛰쳐나왔나, 했는데 마침 우리 집에 와 있던 만우 삼촌이 나한테 꼼짝 말고 있으라 했다.

얼마 뒤, 만우 삼촌이 자기 집 개를 데리고 나타났다. 우리 꼬마들 사이에서 용감하기로 소문난 진돗개였다. 그 뒤로 손에 몽둥이를 든 청년 대여섯 명이 줄지어 나타났다. 나는 금세 흥미진진한 일이 일어날 것 같아 침을 꼴깍 삼켰다.

이윽고 노루몰이가 시작되었다. 청년들이 고함을 지르며 내닫자 깜짝 놀란 노루가 우왕좌왕 날뛰었다. 진돗개가 간발의 차로 노루에게 접근했다. 그러나 노루가 곧 방향을 바꾸어 언덕 위쪽으로 향했다. 진돗개가 점점 뒤처졌다. 어른들이 한 말이 생각났다. 노루는 앞다리가 짧고 뒷다리가 워낙 길어서 올라갈 때에는 “내 X 뽈아라!”, 그러고 내려갈 때는 “살려주시오, 조부님!” 그런다 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한참 앞서 달아나던 노루가 갑자기 걸음을 멈추더니, 뒤쫓던 진돗개와 청년들을 멀뚱하게 바라보고 서있던 것이다. 그 틈을 놓칠세라 진돗개가 노루의 장딴지를 물었고 청년들이 몽둥이로 제압했다. 만우 삼촌이 말했다.

“노루는 원래 애가 빠진 짐승이어서 그란 것이여. 그랑께 아그들은 노루고기를 묵으면 큰일 나. 그것 묵으면 정신이 나가부러서 느그 아부지도 몰라본당께.”

그러나 나는 기어코 삶은 노루고기 한 점을 훔쳐 먹고야 말았다. 몰라보기는커녕, 아부지의 술 취한 얼굴이 너무 잘 보여서 탈이었다. 그런데 노루는 왜 쫓기는 그 순간에 멈춰 서서 뒤를 돌아보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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