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우리는 - 전기 ②]도깨비가 가고 두꺼비가 왔다

  • 입력 2016.06.24 15:52
  • 수정 2016.06.24 17:08
  • 기자명 이상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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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락 소설가

우리들의 생활 속으로 비집고 들어온 전깃불이라는 놈은 우선 농촌마을의 밤 풍경부터 바꿔놓았다. 동구 밖에서부터 길섶을 따라 골목 곳곳에 가로등이 들어섰고 어둡던 밤길이 대낮처럼 밝아졌다. 광명 세상이 도래하면서 억울하게 쫓겨난 피해자들이 있었다. 고샅길 모퉁이며 성황당이며 잔등 너머 공동묘지로 가는 길목 등 요소요소에서 긴 세월 동안 밤을 지배하며 터주 노릇을 해오던 도깨비들과 귀신들이 그들이었다.

내 둘째 동생이 태어나던 그 해 가을밤, 엄니는 초저녁부터 진통을 했다. 동네 도갓집에서 술을 마시고 있을 것이 틀림없는 아부지를 당장 데려오라 했다. 누나와 나는 하는 수 없이 등불을 켜들고 사립을 나섰으나 우리는 거의 공포에 질려 있었다. 달도 없는 깜깜한 밤에 밤길을 나서보기는 처음이었다. 더구나 도갓집은 마을 반대편 끄트머리에 있었으므로 소복한 처녀귀신이 앉아 있기로 소문난 징검다리도 건너야 했다.

병남이 형네 돌담 모퉁이를 지날 때 우리는, 이태 전에 농약 먹고 죽은 병심이 누나가 당장이라도 뒷덜미를 잡아챌 것 같아서 오금이 저렸다. 간신히 그곳을 벗어났으나, 이번엔 머리 없는 귀신이 지나가는 사람의 다리를 걸어 넘어뜨리기로 소문난 외팽나무 모퉁이가 다가오고 있었다. 어찌어찌 그곳도 통과했으나, 결국 안철이네 깨밭 들머리에 이르러서 우리는 더 이상 나아가지 못 하고 제자리에 얼어붙은 채 자박거렸다. 평소 귀신이나 도깨비가 출몰한다는 어떤 소문도 들은 바 없는 곳이었는데, 깨밭 가녘으로 검은 도깨비들이 아예 떼를 지어서 서 있는 모습을 목격한 것이다. 등불마저 바람에 흔들렸다. 누나와 나는 한참을 떨며 서 있다가 결국 가던 길을 포기하고 걸음을 물렸다. 집에 돌아와 보니, 엉뚱하게도 윗집에서 화투를 치다 돌아온 아부지가, 막 태어난 내 둘째 동생의 탯줄을 잘라 묶고 있었다. 이튿날 아침에 확인차 가보았더니 안철이네 깨밭엔, 참깨를 베어서 묶어 세워놓은 다발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었다.

이제 그 언저리에 가로등이 환하게 내걸렸으니, 더 이상 등불을 들고 겁에 질려 자박거릴 일은 없어졌다. 결국 전깃불이란 놈이 시골길에서 어둠을 밀어내면서, 도처에 서식하던 수많은 귀신과 도깨비들을 내쫓은 것이다. 여름밤이면 납량특집으로 이어지던 어른들의 이야깃거리도 자연 궁해졌고, 그 무서운 이야기를 들으면서 아이들이 다양한 형상으로 그려보던 귀신이며 도깨비들도, 이제는 아이들의 상상의 공간에서마저 보따리를 싸야 했다.

중학생이 되어서 고향 동무 둘과 함께 내 작은 부모 집에서 하숙을 했는데 1960년대 그 무렵만 해도 전기의 품질이 매우 불량하여서 걸핏하면 정전이 되거나, 혹은 누전으로 불이 나가기 일쑤였다. 고장이나 합선으로 과전류가 흐르면 화재 발생의 위험이 있으므로 그것을 예방하기 위하여 설치한 장치가 바로 ‘전기안전개폐기’였다. 요즘의 누전 차단 장치는 누전이 되면 자동으로 스위치가 내려오지만, 그때는 낮은 열에도 쉽게 끊어지는 퓨즈를 장치해 놓았다. 그 차단 장치를 해놓은 사기 재질의 외형이 두꺼비 모양을 닮았다 해서 사람들은 그것을 ‘두꺼비집’이라 불렀다.

내 아버지의 의붓어머니였던 작은집의 할머니는 전기세를 아끼는 일에 지독히도 열심이었다. 연속극 <여로>가 끝났다 하면 모든 방에 소등할 것을 명하였다. 우리는 늦게까지 숙제도 하고 시험공부도 해야 했으므로, 미닫이문의 틈으로 빛이 새나가지 않도록 담요로 가려서 등화관제를 한 다음 도둑공부를 해야 했다. 그런데 자꾸만 전기가 끊어졌다. 우리는 두꺼비집의 뚜껑을 열고 예비해둔 퓨즈를 다시 끼울까 말까 하다가 에라, 모르겠다, 꽤 굵은 철사줄 한 토막을 잘라서 퓨즈 대신 끼워놓았다. 그런데 20여 분 뒤, 갑자기 천장 쪽으로 뻗어있던 전선에서 연기가 나는가 했더니 타다닥, 불꽃이 일었다. 우리는 놀라서 전깃줄을 잡아챘다. 방안으로 연기가 자욱했다. 자칫했으면 작은 집을 화재로 날릴 뻔했다. 물론 다음 날 아침에 우리는 재빨리 두꺼비집을 열고서, 철사를 잘라 끼운 ‘불량 퓨즈’를 제거하고는 “간밤에 퓨즈가 또 나갔네!” 하며 시치밀 뗐다. 새로 등장한 두꺼비도 옛 시절의 도깨비만큼이나 무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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