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우리는 - 전기①] 우리 동네 전기 들어오던 날

  • 입력 2016.06.19 10:46
  • 기자명 이상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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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락 소설가
197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전기가 들어오지 않은 시골마을이 많았다. 나는 우리 고향마을에 전기가 처음 들어오던 그 ‘역사적인 순간’을 경험하지 못 했다.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내 소년시절의 숱한 밤에 빛이 돼준 것은, 언제나 감꽃 이파리만한 초꽂이불(등잔불)이었으니까.

그러다 60년대 말에 중학을 다니기 위해 윗녘으로 갔을 때 이미 하숙방 천장에는, 대중가요 <목로주점>에 나오는 그 ‘30촉 백열등’이 달려있었다. 밝고 좋았지만 그저 눈이 부시다는 느낌이었을 뿐, 무슨 신천지를 만난 것처럼 감격스럽지는 않았다. 그 전에 이미 외갓집에 갔다가 발전기를 돌려서 저녁 시간에만 공급하는 전깃불을 구경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 그 사람한테 시집 안 갈래. 그 동네는 전깃불도 안 들어온다니까.”

농촌 처녀들에게서 흔히 들을 수 있는 말이었다. 어지간한 시골마을이면 전기가 보급되었던 시절, ‘전기도 안 들어오는 동네’는 곧 사람 살만한 곳이 못 되는 곳으로 간주되었다. 초꽂이불과 전깃불이 원시사회와 문명사회를 가르는 무슨 상징인 것처럼 돼버린 것이다.

강화도에서도 오지 축에 들었던 강화군 송해면 양오리 마을은 그 유명한 강화 화문석의 재료인 왕골의 주산지이다. 수확 철이 되면 주민들은 한밤중에 호롱불 하나씩을 들고서 왕골 밭으로 나갔다. 하루 볕을 온전히 쫴서 건조해야 하기 때문에, 아침에 내다 말리려면 한밤중에 나가서 왕골을 베어야 했다. 주민들은 가져간 호롱불을 장대 끝에 높이 매달아 놓고서 그 어슴푸레한 불빛에 의지하여 작업을 했다. 불편하기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바로 그 오지마을 양오리에 드디어 전기가 들어온다 했다. 사람들은 너나없이 들떠 있었다. 1968년 여름, 마을 진입로 군데군데에 전봇대가 세워지고 기술자들이 전선뭉치를 들고 달려 다니는 등 가설공사가 한창이었다.

전기 개통 예정일을 닷새가량 앞둔 어느 날, 마을에 초상이 났다. 이장이 공사를 지휘하고 있던 전기 회사(한전) 책임자를 찾아가 만났다.

“어려운 부탁을 하나 하려고 그러는데요.”

“말씀 하십시오.”

“오늘 우리 마을에 초상이 났어요. 동네 토박이 어르신이 졸지에 운명하셨습니다. 그래서 밤에 음식도 준비하고 문상객도 받고 해야 하는데 그 뭣이냐, 전등불 한 개만 상갓집 마당에다 미리 끌어다 켤 수는 없을까요?”

“그건 좀 곤란하겠는데요.”

하기야 공사가 아직 끝나지도 않았는데 전등 하나만 미리 켜게 해달라는 부탁이 무리이다 싶었다. 그런데 현장 소장이 이렇게 말했다.

“전등 하나를 미리 켜게 해드리는 것이 기술적으로 어려운 일은 아닙니다만 그래도…”

뭔가 다른 이유가 있는 모양이었다. 듣고 보니 나름의 사정이 있었다. 닷새 뒤로 예정된 개통식 날에 군수며 경찰서장이며 소방서장이며…지역 행정관청의 기관장들이 모두 나와서 테이프도 자르고 기념촬영도 하면서 벽지 농촌에 처음 전기가 들어오는 역사적인 순간을 성대하게 기념하려고 했는데, 초상집에 미리 전등 하나를 켜버리면 김이 빠진다는 것이었다.

“아이고, 그런 건 걱정 마세요. 그 점등식 행사하는 날 우리 동네 사람들 전부 나와서 춤도 추고 소리도 지르고 꽹과리도 치면서 세상에 태어나서 전깃불 첨 본 사람처럼 막 기뻐할 테니까, 제발 상갓집에 전등 하나만…”

결국 현장소장이 그러마고 했다. 전선을 끌어다가 초상집에 전등 하나를 가설하였다. 그날 저녁, 동네 사람들이 모두 초상집으로 몰려갔다. 양오리 마을의 실질적인 전기개통식이 도둑질하듯 열리는 것이다. 사람들이 ‘하나, 둘, 셋!’을 세었다. 짠, 하고 전기가 들어왔다. 모두 박수를 치면서 환성을 내질렀다. 그러다 어느 순간, 그 곳이 초상집인 것을 깨닫고는 머쓱해서 입을 다물었다. 대신에 미망인인 할머니의 곡성이 높아졌다.

“아이고, 불쌍한 우리 영감, 우리 동네가 광명천지가 됐는디, 이 좋은 시상도 못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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