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수 전염병 ‘화상병’ 피해 임차농, 보상금도 제대로 못 받아

지주가 보상금 안 줘도 법적으로 문제없어
정부, 화상병 후속 작물 구체적 고민 있어야

  • 입력 2016.06.17 10:09
  • 수정 2016.06.17 10:51
  • 기자명 안혜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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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안혜연 기자]

▲ 경기 안성시 서운면의 화상병 발생 배 과수원 매몰 지역. 법에 따라 앞으로 5년간 발굴이 금지된다는 경고 표지판이 세워져 있다.

최근 경기 안성과 충남 천안 경계지역에서 발생한 과수 화상병으로 인해 피해 농민들이 큰 시름에 빠졌다. 또 보상금 수령 과정에서 지주가 임차농에게 보상금을 합당하게 분배하지 않아 갈등이 빚어지고 있다. 

지난 14일 찾아간 경기 안성시 서운면의 화상병 발생 현장은 원래 과수원이 있었던 자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할 정도로 텅 비어있었다. 매몰된 밭 위에는 방제를 위해 뿌려둔 석회가루만이 눈에 띄었다. 

화상병 피해 농민 A씨는 지난달 15일 본인 과수원 배나무에서 화상병 의심 증세를 발견하고 인근 농업기술센터에 신고했다. 농촌진흥청 조사 결과 화상병으로 드러났고 바로 과수원 5,025㎡(1,520평)를 매몰해야 했다. 

A씨는 “30년 가까이 기른 나무를 하루아침에 쓸어버린다는데 복장이 터지죠. 얼마나 환장하겠어요. 매몰하는 직원이 자르고 묻는 거 보면 속 아파서 못 쳐다보니까 오시지 말라고 하더라구요”라며 “지금도 밀어놓은 밭은 잘 안 가요. 구제역 터졌을 때도 그 심정을 몰랐는데 내가 묻어보니까 한숨만 나오고 울화통이 치밀어요 막”이라고 말했다. 

A씨는 농업기술센터가 발병 예방 차원에서 보급한 약을 받아 3차까지 예방을 했지만 화상병을 피할 수 없었다. 이에 A씨 과수원뿐만 아니라 반경 100m에 해당하는 농가의 과수원도 규정에 따라 기주식물을 매몰해야하는 날벼락을 맞았다. “주위 눈총도 너무 심해서 힘들죠”라며 A씨가 한숨을 쉬었다. 

A씨는 앞으로가 문제라고 말한다. 화상병에 걸린 과수원은 앞으로 5년간 해당 작물은 물론이고 기주식물인 사과·자두·살구·복숭아·매실 등 거의 웬만한 과수는 심지 못한다. 또 5년 후에 과수를 심는다고 해도 정상적인 수확 궤도에 오르려면 3~5년을 더 기다려야 한다. 

“그나마 할 수 있는 게 포도인데 시설 투자도 해야 하고 또 요즘 포도밭 폐원하느라 난린데 심어서 3~4년 후 수익이 난다는 보장이 없잖아요. 농산물 가격이 다 하락돼서 심을 작물이 없어요. 배 농사만 짓다가 다른 작물 기르기도 힘들고…. 정부에서 폐원 보상을 해주긴 했지만 앞으로 수년간의 손실을 막기에는 택도 없어요. 정부 차원에서 폐원 후 어떤 작물을 심어야 할지 구체적인 대책을 세워 줘야 해요.” 

보상금도 제대로 못 받는 임차농
임차농 보호법 절실 

더 큰 문제는 임차농들이다. 땅을 빌려서 과수 농사를 짓던 임차농들은 폐원 보상금조차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농촌진흥청은 폐원 보상금을 과수원 땅의 주인에게 지급하는 것으로 임무가 끝나고, 그 이후 보상금을 나누는 것은 지주와 임차농 개인 간의 문제로 넘어간다. 임차농은 지주가 보상금을 합당하게 분할하지 않아도 임차농 보호법이 전무해 법적으로 자기 권리를 주장할 수 없다. 

임차농 B씨는 지난해 이웃 농가 과수원에서 화상병이 발병하는 바람에 기르던 배나무를 모두 매몰해야 했다. 하지만 땅 주인은 보상금 중 약 10% 정도만 떼어주고 연락도 잘 안 되는 상태다. 

B씨는 “보상금이 거의 평당 5만원인데 한 5,000원 받았어요. 여기 화상병 때문에 피해본 임차농들 땅 주인들한테 2,000~5,000원 받았을까 그래요. 말도 안 되는 거죠”라며 “1,000평에 500만원이면 올해 예상한 수익금은 커녕 전지 값도 안 되고 농약 값도 안 나와요. 피해 농민이 15명 정돈데 한 사람은 연체 다 걸리고 저도 연체 걸리고…”라고 말했다. 

B씨는 억울함에 시 책임자, 농진청, 국회의원, 법원, 청와대 신문고 등 안 찾아가 본 곳이 없지만 소용이 없었다. 

B씨는 “개인 간의 거래라 정부는 손 댈 수 없다고 얘기하더라고요. 노점상, 소상공인 권리도 보장해 주는 나라에서 농민 임대차 보호법이 없는 게 말이 되나요. 임차인은 죽으란 얘기 아니에요. 이것 때문에 신용불량자 된 사람들 많아요”라며 “그러면 절실히 필요한 애들 학자금이나 지원해 주던가, 농협에서 자재 빌린 값 일 년 유예를 시켜주던가, 화상병이 구제역처럼 최고 등급 병이라는데 재난 지역으로 선포를 해 주던가. 니들끼리 알아서 끝내라는 식이잖아요”라고 울분을 토했다. 

땅 임대는 1년 단위로 이뤄지는데, B씨는 과수원을 매몰하면서 남은 기간에 해당하는 임대료도 주인에게 돌려받지 못했다.

B씨는 “주인이 나무를 심은 건 인정해요. 많이 달라는 거 아니에요. 올해 들어간 실 농비를 달라는 거죠. 최소한 우리가 배 봉지 싸기 직전까지 들어간 비용은 책임을 져달라는 겁니다”라고 호소했다. 

이에 대해 농진청 재해대응과 관계자는 “땅 소유주도 과수를 10~20년 키우다가 힘드니까 임차를 준 농민이 대부분이다. 소유주가 나무 주인이기 때문에 과수원 폐원 보상금은 직접적인 피해자인 소유주에게 나가게 된다”며 “개인 대 개인으로 계약을 한 것이라서 우리가 임차농에게 얼마를 줘라 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없다. 다만 피해 발생 지역에 가서 설명회 등을 통해 소유주에게 보상금 분배 관련해 협의나 설명을 드리고 있다”고 답변했다. 

과수의 구제역 ‘화상병’

화상병은 배와 사과에 생기는 세균성 병해의 일종으로 과수의 구제역이라고도 불린다. 배·사과 등에 발생하며 1년 안에 나무를 고사시킨다. 처음엔 잎의 가장자리에서 잎맥을 따라 흑색으로 말라 죽는 증상이 나타난다.

법정전염병 중 ‘금지급’에 해당하는 화상병은 아직 특별한 치료 방법이 없어 증상 발견 즉시 과수원과 근방 100m의 기주식물을 모두 매몰해야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지난해 5월 처음 발병이 확인됐다. 정확한 국내 유입 경로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농림축산검역본부는 북미 지역에서 병이 유입된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올해는 지난 6일 기준 안성, 천안의 8농가 6.51ha에서 화상병이 발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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