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농민으로 산다는 건] 종합병원

  • 입력 2016.06.12 09:43
  • 기자명 심문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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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문희(전남 구례군 마산면)
온몸 구석구석 안 아픈 곳이 없다. 종합병원이다. 참다 참다 맨 마지막이 되면 해준다는 무릎 인공관절 수술을 2주일 전 받았다. 관절 수술 전문병원이라 그렇겠지만 온통 무릎 아픈 농촌의 할머니들 천지다. 그나마 농한기라 조금은 한가한 편이라지만 하루에 무릎 수술 동기가 50~60명은 된다. 그들 대부분은 나이 드신 여성 농민들이다.

우리 엄마가 그렇다. 시집 간 셋째 딸 둘째 아이 몸조리 차 내려오신 길. 삼칠일 넘기면 가신다 했건만 눈에 보이는 일들. 그 속에 치여 사는 딸 걱정에 이번엔, 이번엔 하시다 그 아이가 대학교 2학년이 되었다. 엄마는 시집온 후 두 해 째부터 화장품 날품팔이를 하셨다. 농사일 만으로는 도저히 식구들 배를 채울 수도, 학교 보낼 생각조차 할 수 없어 시작하신 일이란다. 자전거에 무거운 짐을 싣고 물로 배를 채워가며, 그러면서도 농사일은 다 하셨으니 요즘 말로 ‘투잡’이다.

인공관절 수술 동기인 여섯 명의 그녀들이 한 병실에서 서로들 살아온 이야기를 하시며 눈물 콧물을 빼신다. 내 눈치를 보시는지 엄마는 별 이야기를 하지 않으시고 듣기만 하신다. 나 없을 때 이야기를 다 하셨을까? “나 아픈 거 다 너 때문이야”, “너 잘 되라고 힘든 줄 모르고 살았는데….

농민들의 삶이, 씨앗 뿌리며 함께 심은 희망이 절망으로 되풀이된다. 그 모습을 함께 하며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보았으니 “끝은 보이냐” 물어보신다. 차마 대답하지 못 하고 씨익 웃기만 한다. 나아지는가 싶으면 어느 때는 벼랑 끝이고 수렁이니 한치 앞을 내다보지 못한 농업 농민의 삶이 되어버렸다. 가까운 병원으로 옮기기 위해 퇴원하고 집에 잠깐 들른 길. 된장 갈라야 한단다. “지금이라도 안 가르면 된장 간장 베레부러야” 큰 대야부터 챙겨야 할 것들을 불러대신다.

이것저것 나에게 시키신다. 이건 이렇고 저건 저렇게 하는 거란다. 하우스 한편에 심어진 마늘, 양파, 감자. 비 오기 전에 캐야 한다. 고추는 끈을 한 번 더 묶어 주고 밑순을 제거해 줘야 하는디, 참깨도 솎을 때가 되었을 텐데, 나 살아있을 때 얼릉얼릉 배워라, 쉼 없이 이야기하신다. 끝에 이 한 마디를 덧붙인다. “쪼그려 앉아 호미로 풀 뽑다 생긴 병이 관절염이라는디. 농사짓고 살지 말라고 공부시켜놨더니 엉덩이 방석 꼭 하고 일해라.”

무릎 관절 보호막이 고작 엉덩이방석이다. 하루 종일 쪼그려 앉아 일하는 농사, 그나마 일하는 보람이라도 있다면 재미지기라도 하겠건만 자식 같은 농작물들이 헐값이 되기 일쑤니 농사지을 맛이 안 나는 게 당연한 거 아닌가? 자식들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은 일 1순위가 아닌가? 물려주지도 않았지만 스스로 농사짓겠다는 딸을 보며 어떤 생각을 하셨을꼬?

칠십다섯 말띠 엄마가 평생 해 오셨던 일. 단 2주일 비웠을 뿐인데 그 빈자리가 너무 크다. 어딘가 고장이 나야만 잠시 쉴 수 있는 기계 같은 여성농민의 삶. 농사의 노예가 아닌 가꾸는 즐거움을 느끼는 농민이고 싶은 맘 가득하지만 어쩌다 오늘도 축 늘어진 다리를 끌고 호미 들고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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