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억울함, 청문회로 풀어야 민주국가”

<인터뷰> 백남기 농민 딸 백민주화씨 ‘애끓는 호소’

  • 입력 2016.05.29 11:33
  • 수정 2016.05.29 11:44
  • 기자명 홍기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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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홍기원 기자]

평소 딸이 본 ‘아버지’ 백남기는 어땠을까. 지난달 21일 서울대병원 앞 농성장에서 만난 백민주화씨는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된 뒤에 아버지께서 ‘바뀐 게 없이 옛날로 돌아가는 것 같아 미안하다’고 얘기하시더라”고 떠올렸다. 백씨는 “아버지는 우릴 붙잡고선 농촌현실이 힘들다 얘기하신 적이 없다”고 덧붙였다. ‘(자녀들이)걱정할까봐 그러시지 않았겠나’ 묻자 백씨는 “후배들하고는 얘기했겠다”하더니 끝내 눈물을 훔쳤다.

“아버지와 함께 집회에 참석한 후배 한 분이 절 보고는 우시면서 아빠와 사고 직전 나눈 얘기를 전했다. 그 분이 ‘물대포를 맞으면 그 자리서 죽겠다’고 하니까 아버지가 ‘그러게 큰일나겠다. 조심하자’고 말했다더라. 그렇게 대화하고 몇 분도 안 지나서 사고가 났다면서 제게 미안하다고 하시더라.”

토요일 오후 서울 도심의 소음 속에서 간간히 들리던 떨림은 이내 주체할 수 없는 절규로 바뀌었다. “아버지가 덜 억울하게 해드리고 싶다. 특검과 청문회가 이뤄져서 아버지의 억울함을 풀었으면 좋겠다. 그래야 민주주의 국가라 생각한다.”

다음날 백씨는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돌려 아버지와 1만㎞나 떨어진 네덜란드로 돌아갔다.

▲ 네덜란드로 돌아가기 전 서울대병원 앞 농성장에서 마주 앉은 백민주화씨는 차분하게 말을 이어나갔다. 그러나 지난해 11월 14일을 떠올리며 아버지의 억울함을 호소할 땐 감정이 북받친 듯 참았던 눈물을 터뜨렸다. 한승호 기자

얼마 만에 아버님을 뵈었는가?

1월 초에 나갔으니 4개월 만이다. 겉으로는 변화가 없는데 속은 많이 나빠지셨다고 한다. 1월에만 해도 소화는 잘됐는데 여러 부위가 감염돼 항생제 치료를 계속했다. 이제는 항생제도 듣지 않고 소화도 안 돼 가스가 많이 찼다. 의사에게 두개골을 도려내 수술을 했는데 붓기가 안 빠져 못 덮고 있다고 들었다.

518 기념재단 초청으로 광주를 다녀왔는데?

12일 귀국한 뒤 광주에서 열린 5.18 기념행사에 참석했다. 우리 가족과 보성지역 농민들이 함께 행진했는데 많은 사람들이 응원해주셨다. 수많은 시민들과 야당 국회의원들 앞에서 발언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어제 기사를 보니 더불어민주당에서 청문회와 특검실시가 거론되는 것 같더라.

정부에선 연락이 있었는가?

아무 연락이 없다.

지난번 귀국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지난번엔 출국할 때 희망이 없었다. 함께 싸워주시는 분들이 많지만 정부에서 대답이 없었다. 그래서 가족이 무엇을 더 할 수 있을지 생각하다가 네덜란드에서 1인시위를 한거다. 그런데 4월 총선 결과가 희망이 있는 쪽으로 나왔다. 4개월 사이 변화가 준비 중인 점이 보여서 떠나는 마음이 지난번보단 덜 무겁다.

네덜란드 등 해외에선 어떤 반응 보였나?

네덜란드는 1인 시위가 자주 있는 일이 아니다. 1인 시위를 한 뒤 식량주권 관련 국제컨퍼런스가 열렸는데 비아캄페시나에 연락해 발언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회의장에서 발언하는 동안 비아캄페시나 활동가들이 제 손을 잡아 지탱해 주셨다. 어떤 분들은 우리나라 정부에 이메일도 보냈다고 들었다.

1인 시위를 하는 이유를 묻는 사람도 있었고 울면서 안아주는 사람도 있었다. 정부를 상대로 이길 수 있겠냐고 묻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네덜란드에선 네 아버지의 잘못도 있지 않냐고 묻는 사람은 없었다. 사람이 다쳤는데 죽어도 싸다는 식으로 생각하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이런 나라가 또 있을까.

다음달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리는 유엔 인권이사회에선 어떤 얘기를 할 계획인가?

참석은 확실한데 발언 시간이나 순서는 아직 모른다. 참여연대, 민변 등과 함께 준비 중이다.

‘백남기 청문회’에 바라는 점은?

아버지가 쓰러진 뒤 경찰에게서 어떤 해명도 직접 듣지 못했다. 책임자의 진정성 있는 사과와 처벌을 원한다. (국가폭력의)증거가 뚜렷하다. 공식적인 정부의 답변이 있어야 한다. 강신명 경찰청장 이하 책임을 져야할 경찰들이 정당한 처벌을 받았으면 좋겠다.

지난 6개월을 돌아본다면?

어머니께 들으니 아버지는 당시 집회에 참가하면서 ‘후배들이 고생하니까 머릿수라도 채우려 간다’면서 ‘밀도 심었고 바쁜일도 없으니 다녀오겠다’하고 집회에 가셨다고 한다.

아버지같이 사신 분에게 이런 일이 일어난 게 너무…(말을 못 이음) 아버지가 덜 억울하게 해드리고 싶다. 특검과 청문회가 이뤄져 아버지의 억울함을 풀었으면 좋겠다. 그래야 민주주의 국가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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