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우리는 - 우물②] 눈물을 흘려야 두레박이다

  • 입력 2016.05.29 08:32
  • 수정 2016.05.30 09:21
  • 기자명 이상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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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락 소설가
해방을 전후하여 우리나라에 온 외국인들이 찍은 한국농촌의 풍속사진들을 일별하다 보면 꼭 빠지지 않는 풍경이 있다. 시골 아낙이 물동이를 이고 가면서 이마 쪽으로 흘러내리는 물을 한 쪽 손으로 연신 훔쳐내는 모습이다.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까지만 해도 여인들이 샘에서 물을 떠서 이고 나르는 용기는 옹기점에서 구운 항아리였다. 그 항아리는 매우 무거워서 물동이를 이고 내리고 하기가 여간 힘들지 않았다. 우리 동네의 아랫샘은 우물 둘레로 정방형의 콘크리트 구조물이 1미터 가량의 높이로 설치돼 있어서 그 위에 얹힌 물동이를 머리에 이기가 한결 수월하였다.

물동이를 이기 전에 볏짚으로 만든 똬리를 미리 머리에 얹었다. 그 똬리에는 이십 센티미터 남짓의 끈이 달려 있었다. 물동이를 들어 올릴 때 상체를 뒤로 젖히게 되는데 이때 똬리가 떨어지지 않도록 끈을 입으로 물고 동이를 인다.

욕심을 부려서 물을 너무 많이 담은 경우 동이 속의 물이 출렁거려서 넘쳐흐르기 십상이다. 여인들은 지혜를 발휘하여 동이 안에 바가지를 엎어서 출렁거림을 막았다. 물론 노련한 아낙은 아예 두 손을 내리고 걸어도 동이가 머리에 착 달라붙어서 물이 넘치는 일이 드물지만 살림에 서툰 처녀나 새색시의 경우 두 손으로 항아리의 손잡이를 붙잡고 걸어도 꿀렁꿀렁, 불안하였다. 가끔은 돌부리에 걸려 물동이가 박살나는 경우도 있었다. 물동이 중엔 어린 여자아이에게 맞춤한 ‘반동이’가 있었다. 용량이 일반 물동이의 반(半)이라 하여 그렇게 불렀다.

엄니는 샘에 다녀 올 때마다 사립에서부터 물동이를 받으라고 소리쳤고 나는 부리나케 부엌으로 나가 동이 내리는 일을 거들었다. 부엌 한 쪽에는 ‘물항’이라 부르는(‘물 항아리’의 줄임말이 아닐까?) 커다란 독이 있었는데 그 물항을 가득 채우자면 엄니가 대여섯 번 씩이나 샘에 다녀와야 했다. 물항은 매우 크고 깊었다. 어떤 날은 놀이터에서 뛰놀다 집에 돌아와서 허겁지겁 물항 뚜껑을 열었으나 바가지가 허공만 갈랐다. 물이 바닥에 조금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러다 아예 물항 속에 거꾸로 처박힐 뻔한 일도 있었다.

옹기점에서 구운 물동이가 퇴장하고 가벼운 양철물동이가 등장하면서 이고 내리기가 한결 수월해졌다. 하지만 오래 사용하다 보면 양철동이의 밑바닥 이음매 쪽에 틈이 생겨서 그 사이로 물이 새나오기 일쑤였다. 그런 사정을 재빨리 간파한 땜장이들이 마을을 돌아다니면서 양철 동이를 땜질해주고 돈을 받거나 곡식을 받아갔다.

처녀나 새색시가 양철 물동이를 이고 가면서 흘러내리는 물을 훔쳐내려고 한쪽 손을 들어 올릴 때면, 짧은 적삼 깃이 따라 올라가서 하얀 가슴살이 설핏 드러나기도 했는데, 마을 공터에 앉아 있다 그 모습을 훔쳐본 남정네들은 괜히 헛기침을 하면서 돌아앉았다(꼬맹이 시절 나의 관찰력은 이처럼 대단한 바 있었다).

우리 집은 마당이며 남새밭 쪽을 아무리 파도 물이 나오지 않았으므로 엄니의 고생길은 끝이 없어 보였다. 내 동무였던 군희네 집에는 마당에 우물이 있었는데 매우 깊었다. 대개 두레박은 양철 가장자리에 나무를 돌려대어서 만들었다. 두레박이 잘 엎어지도록 밑바닥은 좁고 아가리 쪽이 넓게 만들었다.

하지만 깊은 우물에서 물을 긷는 일은 쉽지 않았다. 두레박이 물에 닿았을 때 순간적으로 힘을 주어서 두레박줄을 옆으로 잡아채야 엎어진다. 하지만 우리 같은 꼬마는 아무리 줄을 잡고 이리저리 흔들면서 통사정을 해봐야 좀처럼 엎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어떤 집에서는 두레박 한 쪽에다 돌멩이를 매달기도 하였다. 무게를 불균형으로 만들어야 잘 엎어지기 때문이다. 그 무렵 우리끼리 주고받는 수수께끼 놀음에 이런 게 있었다.

“너, 내려갈 때는 좋다고 막 춤을 추고, 올라올 때는 서럽다고 눈물을 줄줄 흘리는 것이 뭣인지 알어?”

“비잉신, 그것도 모를 줄 알고?”

정답은 두레박이었다. 하지만 군희네 집 우물은 달랐다. 우리 같은 꼬마 아이들이 두레박을 우물에 드리울 때면, 고 녀석은 내려갈 때나 올라올 때나 꼴 보기 싫게 늘 좋다고 춤만 추었다. 목은 말라 죽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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