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 아들이 변했어요

  • 입력 2008.03.09 20:03
  • 기자명 관리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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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애경 전북 순창군 한길목장
나는 순창에서 낙농을 하고있는 젖소엄마다. 대학교때 농촌활동을 왔다가, 등짝을 가르는 뙤약볕 아래서 피땀흘리시며 일하시는 농민들의 삶이 가슴아프게 와닿아서 우여곡절 끝에 친정부모님 가슴에 못을 박고 농민이 되었다.

그리고 지금의 서방님. 대학교 다니던 남학생들보다 훨씬 더 진실한 흙냄새 오롯이 나는 그당시 총각이장님이였던 그이를 선택한것도 내가 농부가 되었던 이유중에 하나였다.

그런 연유로 촌에 내려온 15년동안 아들 둘을 낳아 키우면서도 젖소와 청보리사랑 노래단 및 농민운동에 정신없이 충실했지 아이들을 위한 고민은 별로 해 본적이 없었다.

그런데, 어느덧 나에게도 사춘기를 보내는 아들과의 보이지 않는 전쟁은 시작되었다. 그런데 우리 큰아들이 15세의 사춘기를 맞이하더니, 말도 없어지고 ‘내마음 나도몰라’가 되어버려 나와의 관계에 비상등이 켜졌다. 어떤 날은 하루종일 우울해하고 베게를 안고 울기도 하고 어떤 날은 아주 수다스런 종달새가 되기도 하고 그야말로 질풍노도의 시기 같았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난 우리 아들에게 왜 열심히 살아야하는지 왜 공부를 해야하는 것인지 알려준 적이 있는가? 보여준 적이 있는가? 난 그냥 내가 열심히 살면 애들도 당연히 그렇게 살겠지 라고 생각했었다. 아마 2% 부족했던 것 같다. 그래서 깜짝 테마여행을 기획했다. 테마의 주제는 열심히 살아가는 다른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는것.

노는 토요일, 아들 친구와 함께 셋이서 새벽 2시 광주발 서울행 심야차에 몸을 실었다.

처음 도착한 곳은 새벽 5시 평화시장. 살아있는 심장소리가 들리는 서민들의 삶터 새벽시장의 활기, 나도 무척 오랜만이다. 할머니들의 국밥마는 소리가 분주하다.

이곳저곳을 둘러본 후 따순 아침을 해결하고 다음으로 간 곳은 신설동 학원가. 일요일인데도 같은 또래아이들의 초롱한 눈빛이 인상적이다. 학원선생님으로부터 진로 상담도 받는다.

다음코스는 내가 다녔던 대학 캠퍼스. 나도 잠시 20대의 그때로 돌아간다. 다음으로 간 곳은 학교 옆에 있는 의료원...

거기 근무하는 선배도움으로 중환자실에 잠시 까운을 입고 들어간다. 죽음과 삶을 넘나드는 환자들을 오래 보기엔 너무 죄송하다. 쾌유를 진심으로 빌면서 중환자실을 나온다.

마지막 코스로 잡았던 서울대로 향한다. 서울대가 좋아서 간 것이 아니다. 내가 보여주고 싶은 곳은 딱 한 곳이었다.

도서관... 200석 300석 되는 각 열람실을 빽빽이 채우고 있는 분위기를 보여주고 싶었다. 왜 저 사람들은 저리도 열심히 공부를 할까 라는 의문을 가지길 바라면서... 조금 놀라는 기색이다. 촌에서는 결코 볼 수 없는 광경이기에.

그리곤 정신 없이 뛰어 타고 돌아온 순창 오는 막차, 그 안에서 셋은 정신 없이 잔다.

하루에도 몇 번씩 넘나드는 사춘기 아들과의 무박1일 여행은 이렇게 마감되었다.

그리고 이틀 후 우리 셋은 또 모여 느낌회의를 했다. 어떤걸 느꼈나 서로 나누어 보자고 했더니, 오호∼ 진정한 자존심이 무언지 고민하게 되었단다. 목표를 세우고 전진하는것, 그것이 진정한 자존심이란 걸 알았단다.

그 결과인지 그 여행 후 1년이 지난 지금까지 정말 열심히 공부를 한다. 몇 등이 중요하지 않다. 자기에게 주어진 그 무엇을 열심히 하는 자세가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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