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정춘추] 라면입니까?

  • 입력 2016.05.27 11:08
  • 수정 2016.05.27 11:10
  • 기자명 정은정 <대한민국 치킨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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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은정 <대한민국 치킨전> 저자

생일날 아침(그것도 주민등록상 생일), 제일 먼저 축하 메시지를 보내는 곳은 카드회사다. 그리고 값싼 경품이나 서비스에 팔린 내 정보를 활용하는 상업회사들이다. 내 건강과 행복을 어찌나 정성스럽게 기원을 하는지. 그런 메시지를 받을 때마다 삭제와 동시에 스팸처리를 해버리곤 한다. 그래도 잘 간직해 두는 메시지는 농민들이나 영농조합이 운영하는 쇼핑몰 문자다. 그 메시지를 보고 있으면 대략 어떤 작물들이 한꺼번에 출하되고 가격이 폭락하는지도 알 수 있어서 지금의 농산물 가격 등락폭을 가늠해 볼 수 있어서다. 하지만 늘 ‘가격폭락, 소비촉진’을 외치는 메시지를 받으면 형편 안 펴는 친정 소식을 듣는 것 같아 마음이 쓰리다. 

얼마 전부터 종종 날아오는 문자는 ‘앉은뱅이밀 라면’ 에 대한 홍보다. 지난 2월 앉은뱅이밀 라면 출시 소식을 듣고 짧은 탄식을 내뱉었다. ‘결국 또 라면이구나.’ ‘올 것이 왔구나.’ 

진주앉은뱅이밀은 토종밀이라는 매력적인 스토리 요소를 갖고도 밀과 국수, 빵, 누룩 제품만으로는 그 소비의 한계가 드러난 것은 아닌가 싶어서 말이다. 결국 밀가루의 최대 소비방식은 라면이다. 기초 원재료에 여러 단계의 가공과정(첨가물 포함)을 거쳐 맛의 극상을 추구하는 식품 소비의 체계는 그 뿌리도 깊고 변화의 가능성도 지금으로서는 묘연하다. 그래서 어쩌란 말인가? 뾰족한 수가 없다. 

생협을 비롯한 먹거리운동 진영에서도 가공식품 소비로 굳어진 식품소비 체계를 어쩌지를 못 할 것이다. 그래서 우리밀을 주요원료로 쓰고 국내산 재료에 가급적 좀 더 순하게 만들어서 ‘대안 라면’을 내세우지만 라면은 라면일 뿐이다. 시중에 짬뽕 라면이 유행이면 급하게 뒤따라 개발하고 백색 라면이 유행이면 또 급하게 뒤를 좇는다. 하지만 라면으로 자극된 욕망 자체를 거스르진 못한다. 순하고 좋은 재료를 쓰고 대안소비재로 자리 잡으려던 수많은 친환경가공식품들이 결국 고만고만한 성장세를 차지하는 이유는 무엇이겠는가. 이는 ‘대안’을 만들어 온 것이 아니라 ‘대체’를 해왔기 때문이다. 우리밀 라면과 과자를 먹다가 어느 날 대기업의 라면을 먹으면 좀 더 입에 착 감긴다. 미각의 체계는 비가역적이어서 좀 더 강한 자극 쪽으로 흘러가기 마련이다. 짜고 맵고 달고 고소하고 바삭한 맛으로 내달리는 것이다. ‘생협 아이’로 키우던 딸아이만 보더라도 어느 순간 맛과 자극을 향해 혼자서 훌쩍 날아갔다. 집에서 해 주는 음식은 어쩔 수 없이 먹지만 점점 더 매식의 비율이 올라가는 나이가 되다 보니 기왕지사 먹을 때는 대기업의 ‘원조맛’을 찾아서 먹으면서 열광한다. 

‘라면은 역시 농심’ 이런 수준의 발언과 함께. 

그래도 ‘앉은뱅이밀 라면’을 진즉에 사서 먹어보았다. 일단 생라면 상태에서 씹어 먹어보았는데 맛을 정확히 평가할 능력은 없지만 생라면 자체가 확실히 신선하다. 가까운 생산지, 계절성이 담겨있고 금방 튀겨내었으니 그 맛 자체로 풍미가 돋는다. 미처 다 먹지 못한 라면을 오늘에서야 뜯어보니 기름 전내가 확 올라온다. 이는 달리 말하면 참 신선한 라면이란 뜻이다. 신선한 라면, ‘앉은뱅이 라면’이 지닌 최후의 매력이고 이 부분을 좀 더 살린다면 어떨까. 

우리밀이 경쟁력을 가지려면 가장 기본인 밀 육종연구가 뒷받침 되어야 한다는 식품전문가의 지적은 되새겨 보아야 한다. 제과와 제빵 영역이 각각 다르고 가공식품 생산과 가정소비 영역에서 선택할 수 있는 다양성이 받쳐줘야 한다는 조언을 놓치지 않았으면 한다. 기초재료가 다양해야 식품도 다양해지고 맛도 좋아진다. 대체가 아니라 대안의 기본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는 시집가서도 친정 걱정인 딸의 마음으로 올리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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