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백남기 어르신 뜻 이어가기 위해 보성 내려와”

한명철 (36, 전남 보성군 조성면)

  • 입력 2016.05.27 11:06
  • 수정 2016.05.27 11:13
  • 기자명 안혜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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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읍에서 농사짓던 젊은 농부 한명철씨는 지난 3월 보성으로 터전을 옮겼다. 지난 2월 11일부터 27일까지 이어진 국가폭력 책임자 처벌과 민주주의 회복, 백남기 농민의 쾌유를 기원하는 도보순례에 참여한 후 백남기씨의 뜻을 이어가야 겠다는 결심이 들어서다. 지난달 23일 한씨를 만나 구체적인 계기와 소감을 물었다. 

▲ 한명철씨는 "보성에서 의미 있는 일을 찾아보고자 내려왔다"고 말했다. 사진은 참다래꽃 수정 작업을 하고 있는 모습. 한승호 기자

어떻게 보성으로 올 결심을 하게 됐나 

도보순례를 마치고 서울 농성장에서 오랜시간 같이 걸어온 사람들과 헤어졌는데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뒷풀이 자리에서 도보순례는 끝났는데 이후 뭘 해야 할지 답답하다는 얘기가 오갔다. 흔히 ‘할 수 있는 것을 하면 된다’는 얘기를 하지 않나. 난 농민이니까 보성서 농사를 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 주에 결정을 하고 마침 알고 지내던 형이 사람을 필요로 해서 3월 5일에 내려왔다. 의미 있게 살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지내다 보니 도보순례에서 보성까지 인연이 이어져 온 것 같다. 

도보순례가 큰 계기가 된 것 같다

2005년 처음으로 참여한 농민대회에서 국가폭력을 경험하고 11년 후 또 국가폭력이 일어났다. 퇴보도 이런 퇴보가 없다. 사람이 죽어나가도 끄떡도 안 한다. 개탄스럽고 화가 나는데 무기력한 상황에 더 힘들었다. 그러다가 도보순례를 하고 많은 분들과 함께 걸으니 큰 위로가 됐다. 안 그러면 계속 큰 부채감에 살았을 것이다. 

백남기씨의 뜻을 이어가겠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크게 두 개를 생각했다. 우리밀을 살리기 위해 노력하신 것과 정의롭고 가치있는 삶을 살아오신 것이다. 농민운동 하는 후배로서 존경할만한 분이라고 생각했고, 여기서 의미 있는 일을 찾아 살아보자는 뜻에서 내려왔다. 최근 조사료가 보리나 밀보다 더 큰 사업이 돼버렸는데, 그러니까 더 우리밀을 살려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보성은 밀과 보리를 많이 재배하는 지역이기 때문에 밀농사를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백남기 어르신의 아들이자 대학 후배인 두산이가 심리적으로 많이 힘든 상태다. 학교를 직접적으로 같이 다닌 건 아니지만 위로도 하고 밀 농사를 함께 짓자고 얘기하고 싶다. 

보성에 와서 느낀 점과 앞으로의 계획은 

매주 목요일마다 보성역 앞에서 열리는 촛불집회에 나가고 있다. 많은 분들이 나오진 않지만 갈 때 마다 뵙는 분들이 있어 반갑고 고맙다. 그 분들도 활력을 잃어가는 시점에서 제가 오니까 반갑게 맞아 주셨다. 한 명이라는 사람이 얼마나 소중한가 느낀다. 보성 지역 내에서도 관심이나 동력이 약해지고 있어 안타깝지만 구체적인 계획이 생기면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당연히 도울 것이다. 매달 농촌·농민에 대한 글도 쓰고 있다. 제가 만날 수 있는 사람은 한정돼 있긴 하나 글이 여러 사람에게 읽히면 작은 밀알 정도는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글을 쓴다. 또 농사를 이어가는 것이 갖는 가치와 의미를 포기하지 않는 것이 저에게는 중요하다. 뙤약볕 아래서 일하면 힘들지만 하루 일이 끝났을 때의 즐거움 그리고 작물이 커 있을 때 신비함이 주는 즐거움 때문에 농사를 포기할 수 없다. 아내가 이를 공감하고 이해해 줘서 큰 지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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