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한 건 없다

  • 입력 2016.05.22 22:05
  • 기자명 한승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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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한승호 기자]

우리밀은 성인 남성의 무릎 높이만큼이나 자라 있었다. 이삭도 야무지게 맺힌 듯 했다. 문외한이 보기에 밀이 저 스스로 잘 커주었구나, 싶어 대견했다. 그러나 주인이 없어 관리가 안 된 밀밭의 난자리를 농민들은 알아보았다. 군데군데 쓰러진 밀과 들쭉날쭉 자란 밀의 크기, 밀밭 주위의 무성한 잡초가 에둘러 백남기 농민의 오랜 부재를 상기시켰다.

지난 14일 생명과 평화의 밀밭걷기가 전남 보성군 웅치면 백남기 농민 자택 일대에서 열렸다. 밀밭을 거닐던 사람들은 병상에 누워있는 그의 영혼만큼은 밀밭에서 함께 하고 있을 것이라고 여겼다. 백남기 농민의 쾌유를 바라는 다양한 내용의 현수막과 노란 리본이 밀밭 주위에 내걸려 바람에 나부꼈다.

한 수녀님은 평소 백남기 농민이 밀밭을 내려다보며 땀을 식혔던 전망대 위에 앉아 짧은 글귀를 노란 리본에 적었다. ‘농부이신 하느님 백남기 형제로부터 찬미 받으소서.’ 바람이 부는 방향으로 쓸렸다 쓸려오곤 하는 우리밀을 한참 바라보며 돌아서는 길, 그 글귀가 내내 가슴에 맺혔다.

백남기 농민이 경찰의 물대포에 맞아 쓰러진 지 50여일이 지난 작년 연말, 보성 자택을 처음으로 방문했던 날 사진을 촬영하며 쓴 글이 있다. 그 글에서 단지 숫자만 바꿔 다시 올린다. “검사 세 명이 바뀔 동안 아무 조사도 진행되지 않았다”는 가족의 날선 외침에서 백남기 농민으로 상징되는 농업·농촌·농민의 현실이 그날 이후 여전히 변한 게 없음을 재차 확인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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꽹과리를 쥐고 부춘마을을 휘돌며 신명나게 두드릴 이가

드넓은 대지를 뚫고 올라오는 우리밀을 보며 흐뭇이 미소 지을 이가

푸석하게 쌓인 먼지 쓱 닦아내며 T350 소형 농기계에 앉아 ‘부르릉’ 시동 걸 이가

도라지, 두산, 민주화를 고이 키운 고택 대청마루에 앉아 기우는 해 보며 하루하루를 반추할 이, 단 한 사람이 지금 그 자리에 없다.

개사료값도 못한 쌀값, 더 이상 농사짓기 힘든 세상을 호소하러 2015년 11월 14일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제1차 민중총궐기에 참석한 백남기(70)씨는 경찰이 조준발사한 물대포에 맞아 쓰러진 뒤 180여 일째 사경을 헤매고 있다. 해를 넘겼건만 경찰의 공식적인 사과와 책임자 처벌은 여전히 이뤄지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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