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원의 농사일기 2] 왜 일까?

  • 입력 2016.05.20 09:49
  • 수정 2017.05.26 10:24
  • 기자명 윤석원 중앙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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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윤석원의 농사일기]

꿈에도 그리던 고향땅 양양에서 농부로서 농사일을 막 시작하던 3월 초순의 일이다. 하루는 Y사의 영동지방 담당 기자인데 한번 찾아뵙겠다는 전화를 받았다. 늘상 그랬던 것처럼 우리의 쌀 문제이던가 FTA 문제, 아니면 이슈가 되는 농업문제에 대해 기자들로부터 전화 인터뷰도 많이 했던 터라 그런 것 때문에 전화했는지 알았다. 그래서 왜, 뭔 일이냐고 했더니 농사짓는 현장도 보고 말씀 좀 여쭤보기도 하겠다고 했다. 굳이 올 것 없이 전화로 하면 된다고 했더니 꼭 찾아뵙겠다는 말만 했다. 처음에는 한창 나무 심고 퇴비 주고 바쁠 때이니 나중에 보자고 했다. 그런데도 사흘이 멀다 하고 전화를 하길래 그럼 시간될 때 밭으로 한번 오시라고 했다. 자꾸 거절하기가 미안하기도 했고 스스로 자기가 좋아 정식 농민이 되었고 농사짓는 사람에게 뭔 일로 오겠다고 하는 건지 궁금하기도 했다. 

사실 퇴임식도 알리지 않고 조용히 귀농하려 했으나 제자들의 성화에 밀려 제자들과 가족들만 참석하는 정말 조촐한 자리가 마련되었다. 평소 친분이 있는 우리 농업계 전문지 기자님들 몇 분께서 소문을 듣고 왕림하셨고 과분하게 보도도 해주어 고맙게 생각하고 있을 뿐, 일반 언론에서도 나의 귀농·귀촌에 관심을 갖는 것에 대해 전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며칠 지나 한창 나무심고 있는데 정말로 Y사 기자님이 밭으로 오셨다. 어디 앉을 곳도 마땅치 않았고, 한창 일하던 중이라 차도 한잔 대접할 겨를이 없어 나는 일하고 기자님은 따라 다니면서 인터뷰를 했다. 이런 인터뷰를 한 것은 내 경험으로는 없는 일이였다. ‘태어난 곳은 양양 어디냐’, ‘학교는 어디서 다녔느냐’ 에서부터 시작하여 ‘왜 귀농했느냐’, ‘왜 양양으로 왔느냐’, ‘왜 미니사과를 선택했느냐’는 등 시시콜콜한 얘기들을 묻고 나는 일하며 답했다. 

이삼일 후 Y사가 나의 얘기를 보도하자 몇 개 일간지에서도 꽤 크게 다루었다. 중앙대 교수가 농부 되었다는 것이다. 왜 일까? 내가 유명해서일까? 아니다. 난 유명인도 아니고 이효리처럼 세상에 알려진 사람도 아니다. 그럼에도 언론에서 관심을 갖는 것은 아마도 편안한 삶이 보장되어 있는데도 힘들고 돈도 별로 안 되는 농사일을 하겠다는 지식인이 우리 시대에도 있다는 게 신기하기 때문일 것이라고 혼자 생각해 보았다. 그러나 난 안다. 그나마 조금만 지나면 잊혀질 가십거리였을뿐, 좀 다른 길을 가는 노 교수는 이 시대의 거센 파도에 밀려 잊혀질 것이라는 것을…. 그럼에도 나는 어떤 일이 있더라도 그 길을 사랑하며, 소중히 여기며, 인생 후반부를 살아갈 것이다. 건강이 허락하는 한….


※강단에서 내려와 농부로서의 삶을 시작하고 있는 윤석원 중앙대 명예교수의 귀농 일기가 격주마다 게재 됩니다. 많은 성원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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