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정춘추] 농산물 가격에는 농민이 없다

  • 입력 2016.05.20 09:34
  • 수정 2016.05.20 09:36
  • 기자명 이춘선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정책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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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춘선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정책위원장

내가 농촌에 들어온 지 20년이 지난 지금 언제부턴가 농촌에서는 농한기가 사라져 버렸다. 

20년 전만 해도 농민들은 비록 삶은 풍요롭지 못했지만 이웃들과 함께하는 시간적 여유가 있었다. 

겨울이면 이집 저집 다니면서 제삿밥을 나눠먹기도 하고 여름에는 인근 시원한 계곡에 모여서 단합대회도 하고 밤이면 인근 농민들끼리 한집에 모여서 맛있는 것도 먹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면서 함께 끈끈한 정을 나눌 수 있었다. 

하지만 요즘은 합천 온 들판에 심어져 있는 양파, 마늘 때문에 논에서 겨우내내 종종걸음 치는 농민들을 보면서 지난 20년 동안 합천의 농업환경도 정말 많이 변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해마다 물가는 올라가는데 농산물 가격은 바닥을 치니 아이 키우고 살림하려고 농사규모를 늘리다 보니 어느새 합천은 한겨울에도 쉴 수 없는 양파 주산지가 되어 있었다. 

우리도 느타리버섯 농사를 짓다가 남들 다하는 양파농사를 지은지 5년 정도 된다. 생활비와 소 사료값이라도 벌어보자는 생각으로 양파농사를 시작했는데 벌써 5년이 지나버렸다. 몇 년만 하고 그만둔다는 게 아직까지도 양파농사를 짓고 있는 것이다. 올해도 양파농사를 시작할 때 남편은 이제 올해가 끝이라고 했다. 하지만 과연 올해도 그만 지을 건지는 양파를 수확해 봐야 알 것 같다. 들어갈 때 마음 다르고 나올 때 마음 다르니 올해 양파를 수확해봐야 양파농사를 그만둘지는 판가름이 날 것 같다. 

작년에 우리는 남들보다 양파를 조금 늦게 심었다. 다른 농민들은 벌써 10월말에서 11월초에 양파를 다 심었는데도 우리는 논 준비를 미처 못해서 잦은 비로 양파 심느라 무척 고생을 했었다. 11월 14일 농민대회를 목전에 앞두고서야 겨우 양파를 심을 수 있었다. 

그렇게 고생해서 심고 중간중간 풀 뽑느라 겨우내내 논밭에서 살았지만 한창 푸르름을 유지해야 할 양파가 하루가 다르게 노랗게 변하고 있다. 들쭉날쭉한 기온변화와 잦은 비, 노랗게 변하는 노균병 때문에 더 이상 크지를 못하고 급기야는 양파논이 주저앉고 있다. 우리 양파도 그렇지만 주변에 있는 양파논들이 대부분 노균병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노균병은 약을 쳐도 소용이 없다. 잘 듣지를 않는다. 지금쯤은 비라도 좀 안오면 좋은데 어쩐 일인지 사흘이 멀다하고 비가 오니 양파가 견뎌내지를 못하고 주저앉고 있는 것이다. 농사는 잘 안되고 농약값에 비료값에 그야말로 밑빠진 독에 물붓기를 계속하고 있다.

여기에 정부와 언론은 올해 양파재배 면적이 늘어나서 양파가격이 폭락할 것이라는 뉴스로 직격탄까지 날렸다. 

실제로 얼마 전 하우스 양파와 올 초 높은 기온과 잦은 비로 조생종 양파가 일찍 나와서 겹치는 바람에 가격이 많이 폭락을 했다고 한다. 20kg 1망에 1만원까지 내렸다고 한다. 이렇기에 중만생종 양파가격 하락은 현실로 느낄 수 밖에 없다. 

양파 작황도 별로인데 수확기를 앞둔 지금 이 보도가 나가면서 농민들은 불안감과 동시에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2~3년 전이었던 걸로 기억이 난다. 노균병 때문에 양파 상태도 별로 안 좋고 양파생산 면적과 수확량이 급증하여 가격이 20kg 1망 당 6~7천원까지 폭락했던 적이 있었다. 농협에서도 크기가 좋은 것만 가져가고 나머지는 가져가지를 않아서 몇 개월 동안 길가에 야적한 상태로 있다 보니 품질도 안 좋아지고 대부분의 농민들이 저장도 하고 별짓을 다 해봤지만 결국에는 인건비도 못 건지고 헐값에 넘기거나 버렸다. 

농민들의 대책 아우성에 급기야 정부에서는 양파 수매를 한다고 하였지만 까다로운 선별과 뒤늦은 수매로 농민들과 양파 가격 형성에는 별 도움이 되지 못했다. 

이처럼 농민에게는 가격을 결정할 수 있는 권리가 없다. 

조금만 더 심어도 가격은 폭락하고 작황이 안 좋거나 생산면적이 줄어 농산물값이 오를 기미를 보이면 어느새 정부에서는 수입농산물을 풀어서 가격하락에 결정적 역할을 해버린다. 누구의 정부인지 의심이 갈 정도이다. 정부는 농산물 가격 안정을 위한 농산물 수급정책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수입농산물 때문에 애꿎은 농민들만 피해를 입는 것이다. 

언제부턴가 농업은 투기가 되어버렸다. 무슨 농사를 지어야 올해는 가격이 높을지 해마다 고민을 한다. 농민들도 농산물 가격폭등을 원하지 않는다. 다만 논밭에서 땀 흘린 만큼 농산물 가격이 책정되기를 바란다. 어떤 해는 폭등하고 어떤 해는 폭락하는 농산물 가격이 정당한 노동의 댓가가 포함되는 적정된 농산물 가격이 형성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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