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원의 농사일기 1] 아이고 왜 하필 농사를 지으려 하노

  • 입력 2016.05.08 21:31
  • 수정 2017.05.26 10:20
  • 기자명 윤석원 중앙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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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윤석원의 농사일기]

 

강원도 양양 물치항과 물치해변이 직선거리로 1.5킬로미터 떨어져 있어 멀리 바다가 보인다. 바람 많은 이곳 동해안이지만 뒤로는 나지막한 야산이 북서쪽을 병풍처럼 둘러쳐 있고 따사로운 햇살이 하루 종일 드는 양지 바른 곳, 100여 미터 아랫동네는 150여 가구가 200여년의 전통을 자랑하며 대부분 농민인 주민들이 옹기종기 모여 살아가고 있는 물치리와 강선리가 널찍하게 펼쳐져 있다. 그곳이 바로 농부로 살아 보려하는 나의 작은 일터이자 후반부 삶의 보금자리이다. 아직은 작은 창고와 햇빛가리개가 전부이지만…. 

지난해 작은 농지를 구입하고 친환경 유기농업을 목표로 토양개선을 위해 석회고토도 뿌려주고 호밀도 식재하여 땅심을 높이는 작업을 해왔다. 올해 2월 29일 그동안 혼신을 다해 가르치고 연구해 왔던 정든 교정을 떠나 3월부터 본격적으로 농사일에 들어갔다. 친환경재배가 그래도 비교적 수월하다는 미니사과(알프스 오토메)를 선정하고 작목반에 들어가 농사선배님들로부터 많이 배우며 땀 흘리고 있다. 농협조합원도 되었고 경영체 등록도 마쳤다. 친환경 인증 절차를 밟고 있다. 

며칠 전 아내와 밭일을 하고 있는데 앞 농지에서 들깨와 대파 농사를 위해 가끔 현장에 오시는 80대의 노부부께서 “아이고 왜 하필 농사를 지으려 하노, 농사일은 힘드니 딴 거 하지 뭣 때문에 서울서 내려와 과수원을 한다고 그래…” 하시면서 손사래를 치시며 못마땅해 하셨다. 

그 때 나는 정말 죄송하고 미안하다는 생각부터 들었다. 

평생 농사일만을 해 오신 두 분의 오랜 경험으로 볼 때 상당한 자금과 노력을 들이고 있는 우리 두 초보농부가 어찌 보면 당신들 과거의 모습이여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옛날 젊으셨을 때 이런 저런 이유로 농촌에 남아 농사일을 숙명처럼 할 수밖에 없었고 몸이 부서지도록 일하셨을 터이다. 60여년의 인생 전부를 이곳 농촌에서 농사 지으면서 자식들 공부시키고 다 출가시키셨다 했다. 이제 몸이 노쇠하여 할머니는 허리가 꼬부라지고 할아버지는 폐암으로 숨쉬기조차 힘들어 하시는 두 분의 삶의 궤적이 가슴 아프게 그려져 왔다. 

농사라는 그 삶의 여정이 얼마나 힘든 건데 젊은(?) 자네들이 서울에서 그냥 잘 있지 뭐 때문에 그 고생을 하고 있느냐는 안타까움에서 한마디 하셨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속으로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었다. 

“어르신, 이젠 그만 농사일 좀 놓으시지요. 건강도 안 좋고 자식 분들도 많이 만류할 텐데 말입니다….” 

그러나 다음날도 어김없이 두 분은 또 힘겨운 발걸음을 옮기며 밭으로 올라 오셨다.
 

※강단에서 내려와 농부로서의 삶을 시작하고 있는 윤석원 중앙대 명예교수의 귀농 일기가 격주마다 게재됩니다. 많은 성원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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