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우리는 - 정미소③] 산골마을에 정미소가 생겼다

  • 입력 2016.05.08 10:43
  • 수정 2016.05.08 10:44
  • 기자명 이상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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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락 소설가
떠돌이 이동 정미소에서 방아를 찧다보면 그 애로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방아를 찧으러 온 곡식 주인뿐 아니라 아이들부터 노인들까지 구경꾼이 워낙 많다 보니 언제든 안전사고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다. 무엇보다 돌아가는 원동기 바퀴에다 피대(벨트)를 거는 일이 가장 위험했다. 한 번은 동네 청년이 장갑을 낀 채로 피대를 걸려고 하다가 피대와 바퀴 사이에 손이 끼여 들어가 큰 부상을 입기도 하였고, 정미기 옆에서 곡식을 받던 여인네의 옷자락이 벨트에 감기는 바람에 넘어져 다치는 일도 있었다. 그러나 그런 경우 벨트가 곧 벗겨져버리기 때문에 심각한 부상으로 연결되지는 않았다.

또 다른 애로사항은 기계고장이었다. 원동기의 시동이 걸리지 않거나 혹은 중간에 기계가 꺼져버리는 원인 가운데 가장 흔한 것은 전기 점화장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경우였다. 4행정 내연기관의 경우 연료를 흡입하여 압축된 상태에서, 점화장치의 불꽃에 의해서 폭발한 다음, 연기를 배출하는 배기 과정을 거치게 되는데 그 점화 플러그에 기름이 너무 많이 묻거나 해서 전기불꽃이 일어나 주지 않아서 발동을 할 수 없게 되는 고장이 잦았다. 옛 시절 방아 찧는 모습을 구경한 사람이라면, 기계 주인이 플러그를 뽑아서 헝겊으로 기름을 닦고 나서, 기계 바퀴를 천천히 돌리면서 불꽃이 일어나는지를 시험하는 모습을 보았을 텐데, 바로 점화장치의 고장 때문이다.

“아무래도 금방 고치기 힘들겠어요. 기계 부품을 뜯어가지고 읍내 수리점에 다녀와야겠네요.”

이렇게 되면 어쩔 수 없이 방아 찧으러 온 사람은 곡식을 멍석으로 덮어놓고 하염없이 기다려야 했다. 설상가상으로 비라도 쏟아지면 찧다 만 곡식을 집으로 되가지고 가야 했다.

방아를 다 찧었으면 수수료를 받아야 한다. 물론 현물로 받았다. 도정을 해주고 받는 수수료는 어딜 가나 전체 알곡의 5%로 고정이 돼 있었다. 쌀 한 가마를 찧었으면 반 말을 받는 셈이다. 수수료를 정산할 때면 곡식주인과 기계주인 사이에 알곡의 분량을 놓고 가벼운 승강이가 벌어지기도 하지만 대개는 기계주인이 좀 낮추 잡아서 계산하는 쪽으로 타결하였다.

그렇다면 발동기를 이 집 저 집, 혹은 이 마을 저 고을로 떠돌이처럼 옮겨 다니면서 방아를 찧었던 우리의 지흥옥 청년은 돈을 좀 벌었을까?

“1년에 쌀만 스무 가마에다 보리, 좁쌀 등 잡곡도 스무 가마를 벌었어요. 물론 기름(석유) 값이나 기계 수리비용 등을 제외한다 쳐도 상상도 못 하던 벌이였지요.”

첫 해 방아 찧어서 번 돈으로 소 일곱 마리를 사서 마을 사람들에게 도짓소로 주었다. 배냇소라고도 일컫는데 송아지를 분양받아서 어미 소로 키운 다음 처음 낳은 새끼를 차지하고 어미 소를 주인에게 돌려주는 사육방식이다.

얼마 뒤에는 그 소들을 팔아서 논을 샀다. 얼마나 기뻤던지 지흥옥은 그 때 구입한 논의 면적이 1천5백17 평이었다고 단 단위의 숫자까지 기억하고 있다.

“이제 너도 발동기 바퀴 굴려가면서 이 마당 저 마당으로 돌아다니지만 말고, 아예 정미소를 하나 차리거라.”

고모부가 그에게 용기를 주었다. 1970년대의 정미소들은 대부분 벽이나 지붕을 함석으로 둘러친 모습이었으나 60년대만 해도 지붕을 볏짚으로 이어놓은 정미소들이 많았다. 정미소를 차리기에는 밑천이 빈궁했던 지흥옥은 산에 가서 직접 나무를 베어다가, 고향집 옆 텃밭에다 기둥을 세우도 초막으로 된 정미소를 손수 지었다. 원동기 역시 4.5 마력짜리 ‘얌마’ 발동기를 퇴역시키고 12마력짜리 국산 ‘평화발동기’를 구해 앉혔다. 발동을 걸었다. 기계 소리부터가, 경망스럽고 까불거리는 소리를 내던 옛 꼬마 발동기와는 비교가 안 될 만큼 장엄하였다. 추수 때가 아직 멀었는데도 지흥옥은 새로 산 발동기가 너무나 예뻐서 날마다 닦고 조이고 기름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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