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농민으로 산다는 건] 여성농민과 먹을거리

  • 입력 2016.05.08 10:42
  • 기자명 심문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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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문희(전남 구례군 마산면)
나이 드신 여성농민들 주머니에 잡초가 불룩하다.

밭고랑 사이사이 잡초를 메고 있는 할머니는 주머니에 왜 자꾸 잡초를 쑤셔 넣는지?

왼쪽 주머니 것은 오늘 저녁 국거리고 오른쪽 주머니 것은 찬거리며 바지 주머니 것은 다 먹는 거여 하신다. 웬수같은 잡초, 어느 때는 귀한 호미자루 댕강 날려버리는 이 잡초들이 다 쓸모 있는 것이라 하신다. 물론 못 먹는 풀들도 그득하지만 그것도 그것 나름대로 쓸모가 있다 하시며 흙을 탈탈 털어 밭 한 귀퉁이에 모아두신다.

“아니 그걸 힘들게 한 곳에 모으고 그래요, 그냥 밭고랑에 내두시지?”

“요것들이 목숨 줄이 찔겨. 평생 살아나면 뽑아버리고 살아나면 뽑아버리니 목숨 줄이 찔길 수밖에 없지 않겠어”라며 그냥 거기 두면 다 살아난다 하신다. 힘들어도 밭 한 곳에 모아야 한다시며 아픈 다리 쩔뚝거리며 바구니에 가득차면 한 곳에 모으셨다.

“이것도 다 쓸모 있는 것이여. 썩으면 다 거름이 되는 것이여. 그 거름들이 다시 요것들을 이리 키워내는 것이지.”

밭일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엔 논두렁 밭두렁의 쑥이며 쑥부쟁이를 낫으로 싹싹 비신다. 쪼그려 앉아 캘 여가는 없으신 것이다. 농번기 한가운데 있으면서도 겨울나기 나물 장만을 해야 한다. 아들은 이걸 좋아하고 딸은 이걸 좋아한다 하시며 가지가지 먹을거리를 장만하신다. 또한 제사며 설날에 누군가의 생일상에 올라갈 쑥떡을 만들기 위해선 이즈음의 쑥을 뜯어말려야만 한다는 것을 알기에 해가 어름어름 넘어가는 것을 보면서도 일손을 놓지 못하신다. 아마 저녁 드시고 텔레비전 연속극 보시며 누군가에게 빙의된 채 티끌을 주어내고 질긴 부분은 뜯어내시고 연한 것으로만 밤 늦도록 이 나물들을 다듬으실 것이다. 누군가의 입으로 들어가는 것을 상상하고 계실까. 아마 평생을 이리 살아오셨겠지.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듯이 밭 속의 잡초도 다 그 쓰임새를 달리 하고 있다는 지혜를 하루하루 쌓으며 지금껏 밭고랑 고랑 사이 헤매며 살아오셨을 것이다. 할머니의 얼굴 주름마저도 미소주름이다.

맨 처음 농사를 시작한 농부들이 먹을 수 있는 씨앗과 그렇지 못한 씨를 구분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세월을 보내야 했을지 상상해보니 웃을 일만은 아닌 것 같다. 보릿고개 흉년 속에 자식들 굶는 모습을 보면서도 씨앗만은 어딘가에 꼭꼭 숨겨놓고 기어이 지금껏 우리에게 물려오셨을 것이다. 누군가를 먹여 살린다는 그런 자부심이 있었기에 힘들어도 웃으며 살아왔을 우리네 농부들, 그리고 그중에 가장 자랑스런 여성농민들이 아닐까?

언제부터 대물림 하고 싶지 않은 일이 되어버렸는지 모르겠지만 생명의 농사만큼 이 땅에 태어나 자랑스런 일이 있을까 싶다. 그런 일에 가장 앞장 서왔던 사람들이 지금 많이 아프다.

자본주의 한복판에서 농사를 짓고 살아가느라 아프다. 잡초 그득한 논밭에서도 웃을 수 있는 여유를 가졌던 농민들이 아프다. 어쩌다 농사짓는 것이 걱정 태산이 되어버렸을꼬, 언젠가부터 농사를 하기 위해선 다 돈 주고 사야 하는 세상이 되어버렸을꼬, 못난 것은 못난 것대로 잡초마저도 다 쓸모 있었던 농사였는데 지금은 때깔 좋은 것만이 살아남는 농사가 되어버렸으니 그냥 서럽다. 후대의 농부들을 위해서라도 이리 두면 안 되는 것을.

해도 뜨지 않았는데 눈이 떠진다. 해 뜨면 일을 시작해야 하기에 평생 해뜨기 전에 눈이 떠진다. 오늘은 못자리 하는 날이라 일이 많기에 더 일찍이 눈을 뜨고 하루를 시작한다.

이 모들이 자라서 나락이 되고 쌀밥이 되는 날은 지금보다 더 괜찮을 거야.

농사는 하루하루가 희망의 시작이다. 우리 조상들이 그러했듯이 지금의 우리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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