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한우농민 600여명, 대기업 축산 진출 빌미 막아내다

지난달 22일 무진장축협 규탄집회 … 3년 이어온 위탁사육 협상 마무리

  • 입력 2016.04.29 09:44
  • 수정 2016.04.29 09:48
  • 기자명 배정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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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달 22일 전북 진안군 무진장축협 앞에서 열린 ‘대기업 농업 진출 저지 및 농·축협 위탁사육 반대를 위한 규탄집회’에서 한우협회 전북도지회 소속 농민들이 대기업 농업진출저지, 위탁사육 반대를 촉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한승호 기자

▲ 박일진(왼쪽) 한우협회 전북도지회 사무국장이 무진장축협과의 합의사항이 담긴 서명지를 들고 농민들의 요구사항이 관철됐음을 알리는 동안 직접 협상에 나선 정윤섭 한우협회 전북도지회장이 박수를 치며 웃고 있다. 한승호 기자

[한국농정신문 배정은 기자]

한우 위탁사육 문제로 3년째 줄다리기를 하고 있는 전국한우협회 전북도지회와 무진장축협의 협상이 좀처럼 마무리될 기미를 보이지 않자 기다림에 지친 농민들이 직접 나섰다. 극적인 협상 타결로 한우농가를 지키기 위한 노력이 결실을 맺은 지난달 22일, 무진장축협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

전국한우협회 전북도지회(지회장 정윤섭)는 지난달 22일 전북 진안 무진장축협 앞에서 ‘대기업 농업 진출 저지 및 농·축협 위탁사육 반대를 위한 규탄집회’를 열었다. 규탄집회에는 전북지역 13개 시군에서 600여명에 달하는 한우 농민들과 전국농민회총연맹 전북도연맹(의장 조상규), 전북농업인단체연합회(회장 김석준, 전북농단연) 등이 참석했다. 농민과의 약속을 저버리고 재협상에도 묵묵부답인 무진장축협을 규탄하기 위해서였다.

무진장축협(조합장 송제근)은 지난해 2월 위탁사육 중단 및 감축을 약속한 이후 1년 동안 오히려 위탁두수를 1,400두 더 늘렸다. 이에 지난 3월부터 전북도청 축산과가 위탁사육 감축을 제안하고 한우협회 전북도지회도 지속적으로 재협상을 요청해왔다. 한우협회는 지난 4~9일 무진장축협에서 항의 농성을 하고 전북농단연도 18~20일 농업중앙회 전북본부에서 반대 농성을 진행했다. 지난달 20일에는 농협중앙회 전북본부(본부장 강태호)가 전북농단연과 대기업 농업 진출 저지와 위탁사육 반대에 합의하면서 농림축산식품부(장관 이동필)와 농협중앙회(회장 김병원)가 중재에 나섰으나 무진장축협은 끝내 합의에 응하지 않았다.

박일진 한우협회 전북도지회 사무국장은 “무진장축협은 한우협회와 위탁사육 감축을 여러 차례 합의하고도 약속을 이행하지 않고 있다. 특히 송제근 조합장은 후보 시절에 위탁사육을 감축하겠다는 각서까지 써서 제출해놓고도 약속을 어겼다”며 “농민과의 약속을 저버리고 농민을 홀대하는 조직이 과연 협동조합이 맞나”라고 무진장축협의 행태를 비판했다. 김홍길 한우협회장은 무진장축협이 대기업의 축산진출에 빌미를 제공할 것을 우려하면서 “오리, 닭은 이미 90% 이상, 돼지는 40% 가량이 대기업에 수직계열화됐다. 이제는 농가가 대기업 말을 듣지 않으면 자돈, 병아리를 주지 않거나 위탁사육에서 제외시키기도 한다”며 “대기업에 축산 진출을 하지 말라고 얘기하니 대기업에서 ‘농민들이 출자한 농·축협에서도 사업을 하는데 왜 대기업 진출만 반대하느냐’고 해 반대할 명분이 생기지 않더라”라고 말했다.

또한 한우협회는 위탁사육을 처음 시작할 때 사육수수료가 3만5,000원이었으나 소 값이 오른 현재에는 오히려 사육수수료가 2만1,000원으로 하락한 것을 예로 들면서 위탁사업이 본격적으로 자리를 잡게 되면 위탁을 하는 농가들이 최저임금도 받지 못할 것이 자명하다고 우려했다. 아울러 현재 위탁사육을 하는 농가들이 한우 100두를 키우면 210만원을 버는데, 깔짚비, 전기세 등을 제외하면 순이익이 150~160만원에 불과하다며 위탁사업은 농민의 이익을 우선으로 해야 하는 농·축협의 정신에 반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윤섭 한우협회 전북도지회장 외 4명의 임원들은 전북지역 한우농민을 대표해 무진장축협과 협상을 진행했다. 협상이 진행되는 동안 집회에 참석한 농민들은 무진장축협이 대기업의 축산진출에 교두보가 되는 것을 막겠다는 뜻을 모으며 농성을 계속했다.

고창에서 한우 50두를 사육하고 있는 김미옥(56) 농민은 “농민들은 이렇게 어렵게 소를 키우는데 조합장은 월급을 1,000만원씩 받아가고 위탁사업으로 난 수익을 축협직원들에게 성과급으로 나눠주는 것은 부당하다”며 “농민을 위한다면서 농민이 모아준 돈으로 자기들 배만 불리고 있으니 얼마나 허망한지 몰라”라고 토로했다. 익산에서 한우 80두를 사육하는 박광해(57) 농민도 “위탁사육은 우리처럼 100두 미만을 사육하는 소농들이 먹고 살 것을 위탁농가 몇 개가 독점하는 것이다. 무진장축협이 지난해 위탁사육으로 21억원의 흑자를 냈다는데 수익이 계속 나면 대기업도 진출하려고 할 것”이라며 “양계는 주변 농가들을 보면 하림을 통하지 않으면 사육·판매를 아예 할 수 없다. 한우도 그렇게 되기 전에 무진장축협의 위탁사업 확대를 막으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익명을 요구한 한 농민은 “위탁사육 농가 선정 과정도 투명하지 않은 것으로 안다. 임직원 친분관계, 말 잘 듣는 사람을 우선적으로 선발한다더라”며 “위탁사육을 하려고 줄을 서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결국 사육수수료를 적게 줘도 될 것이고 그러면 농가들은 먹고살기가 더욱 힘들어 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무진장축협의 적극적이지 않은 태도로 협상이 지연되고 있다는 소식이 전달되자 기다림에 지쳐 화가 난 농민들이 무진장축협으로 항의 방문을 시도하기도 했다. 협상 과정 중간보고를 나온 박일진 사무국장은 “두 가지 사안에서 세부사항을 조율하고 있다. 올해 무진장축협이 감축해야하는 1,200두 가운데 700두는 위탁사육 농가의 동의가 있어야한다고 주장하고 있어 위탁사육 농가의 동의 조건을 빼려고 한다”며 “또 2017년 이후에 축협이 자율적으로 위탁사육 두수를 줄이겠다는 주장에도 농민대표들이 3년 전 약속한 13.5% 감축을 지키라고 협상하는 중”이라고 설명했다.

3시간의 긴 기다림 끝에 무진장축협이 대기업의 축산 진출을 반대하고 한우 위탁사육을 감축하는 내용에 합의했다. 합의 내용은 △무진장축협의 대기업 농축산업 진출 근본적 반대 △2016년 출하예정 두수 1,500두의 20%인 300두 감축 또는 예탁 전환 △2016년 입식예정 995두의 20%인 200두 감축 또는 예탁 전환 △2015년 8월 이후 입식되고 있는 위탁우 1,764두 중 20% 이상 예탁 전환 △무주, 진안, 장수지역 한우협회 임원들에게 위탁사육 정보 상시 열람 조치 △2017년부터 위탁사육 두수 13.5%씩 감축 또는 예탁 전환 등 6가지다.

정윤섭 한우협회 전북도지회장은 “3년간 이어온 투쟁이 농민과 한우산업을 지키는 일이라고 확신한다. 무진장축협도 약속을 잘 지켜줄 것이라고 믿는다”고 말하며 “오늘 합의의 최종안은 위탁사육만 아니면 사육두수는 상관 않겠다는 것이고 이제 생축장에서도 비육우 대신 번식우를 키우는 방향으로 전환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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