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농민으로 산다는 건] 큰딸 운전연습 하던 날

  • 입력 2016.04.24 00:18
  • 수정 2016.04.24 00:19
  • 기자명 심문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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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문희(전남 구례군 마산면)
운전을 가르쳐 준다는게 목숨을 거는 것인가? 100여미터 정도 함께 동승했다 내가 던질 말은 몇 마디 되지 않았습니다.

“야 차 폭을 봐야지 울타리에 부딪치잖아”

“저기 앞에 경운기가 보이니 일단 속도 줄여”

“야 꼬랑에 빠지것다 하이고”

“야 그냥 걸어가자”

내가 뱉어낸 말의 전부입니다. 차를 주차하며 던진 딸의 한 마디.

“엄마는 평생 사람 태우고만 다녀라.”

물론 큰딸은 별 생각 없이 던진 한 마디였을지 모르지만 뒤통수를 얻어맞은 기분이었습니다.

운전을 처음 배워본 사람들은 아마 모두가 공감할 이야기일 것입니다. 저 또한 이 세상 모든 여성들이 다 운전해도 나는 못할 것이라는 생각을 했었으니까요. 그런 제가 언제부터 이렇게 운전에 오만해진 것인지, 누군가 운전하는 차에 타면 불안한 마음이 듭니다.

생각해 보니 운전 뿐이 아닌 것 같네요. 일상에서도 어느 순간 나 아니면 안될 것 같은 착각에, 내가 아닌 그 누군가가 한다면 왠지 시원찮고 그럴 바에야 차라리 내가 하지 생각합니다. 세상 이치 모두 처음이 있었던 것을, 그 시작은 언제나 작고 하찮은 것이었음을 잊고 지내는가 봅니다.

20대 국회의원들이 다 뽑혔습니다. 농민 목소리 내고 싶었지만 아직은 힘이 부족하기만 하네요. 울엄마는 농민 데모병에 선거병까지 겹쳐 중병을 앓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며 언제쯤 네가 생각하는 그런 세상이 온다냐, 이번에는 어떤거냐 하시네요. 물론 언제나처럼 훌훌 털고 다시 웃는 모습으로 생활하겠지만 고단한 것만큼은 사실입니다.

‘암살’ 이라는 영화가 떠오릅니다. 세상엔 세 부류의 인간들이 있습니다. 저항하는 자와 방관하는 자, 그리고 순응하는 자. 만약 내가 일제식민치하에 태어났다면 어떻게 살았을까 싶네요. 전지현만큼은 멋지지 못하지만 치마에 돌멩이 정도는 나르고 있지 않았을까 싶어 피식 웃음이 납니다.

“알려줘야지. 우리가 계속 싸우고 있다고” 명대사 한번 따라 해봅니다. 덕분에 힘이 나네요.

선거시기임에도 퍼주기라고 쌀 직불금을 뜯어고치겠다는 정치권을 향해 다시 한 번 명대사 한번 날려봅니다.

초고령 사회에 접어든 우리 농촌에 소득보전 차원으로 몇 푼 던져준들, 국토 균형발전을 위해 제아무리 도로를 놓고 경로당을 지어준들, 그 어떤 예산을 쏟아 복지 농촌을 부르짖은들 기본을 망각한 우리 정치권에 더 이상 뭘 기대해야 하는 것인지, 하얗게 질려버린 농민들 얼굴에 시시 각각의 분칠로 속이려 하고 있는 정치권을 향해, 농업이 국가의 근본이고 쌀은 주권이라고 외쳐봅니다. 300만 농민이 다 살아 있을 때, 타들어가는 농민들 심장이 더 이상 내려앉지 않게, 더 이상 세상을 등진 농민들 우리 가슴에 묻어두지 말고 세상을 바꿔내는 투쟁에….

처음 운전대를 잡았던 그 때처럼, 처음 호미 쥐고 밭에 섰던 그 때처럼, 아스팔트 뙤약볕에 주먹 쥐고 외쳐대던 그 힘을, 2004년 농민국회의원이 국회에 첫 발을 딛던 그 때처럼 설레임 가득 호기심 가득한 처음을 기억하려 합니다.

큰딸 덕에 목숨 걸고 운전 조수석에 앉아 세상사 한 번 돌아봅니다. 비가 하염없이 내립니다. 맘이 바빠지네요. 씨앗 기다리고 있을 촉촉한 대지의 미소가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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