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고동락하는 여성농민회 언니들과 앞으로도 쭉~”

김나경 음성군여성농민회 사무국장

  • 입력 2016.04.22 13:50
  • 수정 2016.04.22 14:06
  • 기자명 박경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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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박경철 기자]

WTO, FTA 등 개방농정으로 인해 암울한 먹구름이 드리워진 농업·농촌의 현실 속에서 대안 경제와 패러다임의 전환, 새로운 철학 등의 해법이 절실하다. ‘희망’을 만들기 위해 애쓰는 농민을 찾아 농업·농촌이 행복해지기 위한 대안을 모색하려 한다. 매달 1회씩 게재한다. 편집자 주

▲ 김나경 음성군여성농민회 사무국장이 지난 20일 충북 음성군 생극면에 위치한 농장에서 다육식물을 일일이 살펴보고 있다. 한승호 기자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란 날들. 고령화된 농촌에서 구슬땀을 흘리며 지역사회를 챙겨야 하는 중년이 된 농민운동가의 일상이다. 농사일에, 동네일에 치이다보면 “이젠 좀 쉬고 싶다”는 넋두리가 나올 법도 한데 “늘 할 일이 많아 행복하다”는 농민이 있다. 바로 김나경(46) 음성군여성농민회 사무국장이다. “늘 바쁘고 종종거리며 살아도, 할 일도 찾는 이도 많아 살아있음을 실감할 수 있다”는 김 사무국장. “혹시 워커홀릭(일 중독자)은 아니냐”는 질문엔 “가끔은 집에서 뒹굴뒹굴 하는 것도 좋아한다”며 호쾌한 웃음을 지었다. ‘선수’의 냄새가 물씬 나는 그를 지난 20일 충북 음성군 대소면에 위치한 다육식물 농장에서 만났다.

“얼마 전 예전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드라마가 인기를 끌었잖아요. 그 시절을 생각해보면 어떤 사람이랑 결혼해서 어떻게 살고 있을지에 대한 소녀적 환상이 있었는데 인생 중반에 와서 돌아보니 그게 다 있더라고요. 남편도, 아이도, 늘 해야 하는 일도, 함께하는 이웃과 동지도 있잖아요.” 사람에 대한 애정과 삶에 대한 낙관이 행복의 비결이었을까. 쉽지 않은 길을 웃으며 감내해 온 만큼 김 사무국장이 꺼내놓는 얘기엔 진득한 ‘정’이 한 움큼 묻어 나왔다.

김 사무국장은 지난 2000년 당시 음성군농민회 간사를 맡고 있던 윤희준 음성군농민회 사무국장과 결혼하며 충북 음성군 대소면에서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김 사무국장은 남편이 농민운동을 하는 사람이어서 농사를 짓게 된 건 아니라고 했다. 대학 시절 농활을 다니며 농업농촌의 현실에 대한 고민을 했고 졸업 이후 우리 농촌을 지키고 싶다는 생각에 자연스럽게 한 선택이라는 게 김 사무국장의 설명이다.

그렇게 시작한 농촌생활에서 처음엔 고추와 쌀농사를 지었지만 어려움을 겪었고, 우여곡절 끝에 접목선인장 농사를 짓게 됐다. 자연스럽게 다육식물로 작목전환도 했다. 김 사무국장 부부에겐 어쩌면 최적화된 작목이 다육식물일지 모를 일이다. 여러가지 일을 맡다보니 신경을 못 쓸 때도 있었지만 질긴 생명력으로 버텨줬으니 말이다. 게다가 고등학생과 초등학생이 된 두 아이를 키워오는 데도 큰 도움이 됐다.

김 사무국장은 무엇보다 다육식물 농사를 지어오면서 규모가 줄어도 나락농사를 포기하진 않았다고 했다. “우리나라에서 쌀이 갖고 있는 의미가 있잖아요. 식량주권. 대대손손 먹어왔던 우리 주식이니까요. 작은 규모라도 끝까지 나락농사를 포기하지 않고 지어나가는 것이 우리농업 사수를 위해 농민으로서 실천하는 한 부분이겠다 싶었죠. 먹고사는 문제와 관련된 내적갈등도 많았지만 제일 중요한 건 나락농사라고 생각했고 그게 우리 마음을 지탱하는 원동력이 됐어요.”

농민운동을 가슴에 품고 농촌에 뛰어든 김 사무국장은 16년 동안 음성군여성농민회 실무를 맡아왔고, 이젠 ‘지도’의 역할도 맡고 있다. 이와 함께 지역 사회에선 좋은 먹거리 전도사로서 로컬푸드 운동의 붐을 일으키는 불쏘시개가 됐다. 10년 전 시작해 뿌리를 내린 음성지역순환사회추진본부 먹거리분과 위원, 지난해부터 시작한 대안장터 놀장의 먹거리팀장, 음성식생활교육네트워크 이사도 맡고 있다. “능력이 출중하신 것 같다”라는 말에 “개인이 아닌 여성농민회라는 단체로 참여한 것이고, 한사람의 능력이 뛰어나서가 아니라 지역의 상황이 그만큼 어렵다는 걸 반증하는 것”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김 사무국장은 농민들이 행복해지기 위해선 일단 판로에 대한 걱정이 없어야 한다는 지론을 펼쳤다. “농사를 짓는 건 인도의 수도승이 고행하는 것과 똑같잖아요. 호미를 들고 쭈그리고 앉아서 몇 개나 되는 고랑을 똑같은 자세로 해 나가죠. 수박 순을 치는 것도 복숭아 꽃잎을 따는 것도 마찬가지에요. 요가가 다 필요 없죠. 보통사람이면 기가 막힐 일이에요. 그런 고생을 해서 나온 수확물이 팔릴지 걱정하는 건 아이러니잖아요.” 정성들여 키운 농산물에 대한 제값도 중요하지만 아예 판로자체가 없는 것이 더 큰 문제라는 것이다.

김 사무국장은 한 걸음 더 나아가 농촌에서도 문화, 의료, 교육에 대한 고민이 없어져야 농민들도 행복하고 청년들이 살고 싶은 농촌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도시의 불안정한 일자리, 전세난 등 주택문제, 시달리는 학교 아이들. 한적한 농촌으로 안 올 이유가 없어요. 웰빙 등의 바람을 타고 이미 포화상태인 도시를 떠나 많은 이들이 귀농과 귀촌을 선택하고 있어요. 기본적인 생활기반시설만 충족이 된다면 젊은 사람 유입이 안 될 수 없죠.”

“예전이나 지금이나 우리 농업의 앞날이 잘 보이지 않는 현실 속에서 비켜서서 제3자로 있는 것과 현실에서 같이 부딪히는 건 다르다”며 “인생에 있어 후회없는 선택을 해왔다”는 김 사무국장. “동고동락하는 여성농민회 언니들과 농민운동을 일궈온 농민들과 앞으로도 쭉 함께할 것”이라고 다짐하는 그의 눈빛에서 흔들림없이 한길을 걸어가는 사람에게서 느낄 수 있는 ‘당찬’ 기운이 전해졌다. 삶에 대한 ‘소신’을 지키며 살아내기가 각박해져만 가는 현실 속에서 그의 바람들이 이뤄지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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