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농민으로 산다는 건] 정치세력화가 도대체 뭣이여?

  • 입력 2016.04.16 21:11
  • 기자명 황정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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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정미(경북 의성군 봉양면)
드디어 총선이 끝났다. 2016년 총선도 그야말로 컬러풀하게 천연 자연색의 각 당으로 분열됐다. 여성농민으로 살면서 그야말로 정치세력화란 어려운 말을 이해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 어려운 말을 나이드신 여성농민에게 이해시켜 드리기는 더 어려웠다. 그래서 우리는 그네들 식으로 설명하기로 했다. 우리와 똑같이 농사를 짓는 한 아지매가 선거에 나온다고.

“왜요~ 서울대회 가면 얼굴은 검게 그을려도 속 시원하게 말 잘하던 그 아지매요.”

그러면 어른들은 하나 같이 맞장구를 치신다.

“그래 맞어, 그 새댁이 선거에 나온다고? 그럼 우리가 찍어 줘야지. 똑같은 농사짓는 사람인데….”

그래서 어른들은 일일이 당 가입 원서도 쓰고, 할인 혜택 받은 당비도 내고, 그래서 당당한 당원이 되었다. 남편이 새누리당 면책인 아지매도 “남편한데 말 안하면 되지 뭐” 하면서 당원이 되셨다. 그 어른들은 들어도 들어도 뭔지 모를 민주노동당이란 당의 당원이 되신 것이다.

컴퓨터는 아예 못 만지는 기계고 살기는 또 엄청 골짜기라 하는 수 없이 그 동네 컴퓨터 있는 젊은 새댁네 집에서 투표를 하게 되고, 그것이 문제가 되면서 이 어른들에게 급기야 검찰에서 조사를 받으러 오라는 출두명령서가 배달된다. 온 동네가 발칵 뒤집히고, 타지에 나가 있는 아들들에게 이 소식이 전해지면서 어른들을 가입시켰던 활동가들은 순간 빨갱이로 전락해 버렸다. 정말 힘든 시기였다. 차라리 우리 활동가들에게 출두명령서가 날아왔다면 당당히 조사받으면 된다. 그러나 어른들에게는 검찰의 전화 한 통도 손 떨리고 가슴 떨리는 큰 일인 것이다. 결국 토종농사 잘 지으시던 그 동네 어른들은 여농 회원조차도 그만 두시고 여성농민한마당도 참여 안하시게 되었다. 이제 몇 년이 흘렀으니 차차 희미해질 때도 되어 간다. 다시 한 번 찾아뵙고 인사드려야겠다.

우리 여성농민은 언제나 우선순위가 농사다. 서울농민대회도 일정이 잡히면 일주일 전부터 대비해 일을 당겨서 해 놓는다. 그래야 그 하루를 비울 수 있으니…. 그렇게 하루는 서울구경하고 농사일에 힘든 일신을 풀어놓고 차에서 신나는 음악에 맞춰 춤도 춘다. 농산물 값 제대로 받아야 한다는 여농 회장님의 말씀은 귀에 쏙쏙 들어온다. 그러나 그 외의 이야기는 좀 어려워 귀 밖에 돈다. 그래도 젊은 사람들이 이런 할매도 서울까지 데리고 와 주고 간식에 알뜰살뜰 챙겨주니 그 맘들이 대견해 늘상 따라 나선다.

그런 할머니들을 서울 가까이 오면 흰 상복을 꺼내 서울 나들이 온다고 알록달록 입은 옷 위에 입으라고 할 때는 맘이 무척이나 죄송스럽다. 우리가 입으라고 하니 어쩔 수 없이 입으시지만, 거추장스럽기는 하신 모양이다. 농업의 위기상황을 이런 상복으로 도시민에게 전하고자 하는 의도는 잘 알지만, 이런 형식들이 언론들에게 사진빨을 받기 위함이면 난 절대 반대다. 그래야만, 그렇게 혈서를 쓰거나 삭발을 해야만 농업의 위기를 전달할 수 있나?

나는 우리 여성농민에게 맞는 방식이 있다고 생각한다. 아름다운 정서를 가진 여성농민에게 어울리고, 도시민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그 무엇. 그것은 그네들이 항상 대회든 모든 일의 중심에 있을 때만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들이 주인공이고, 그 주인공으로 만들어 내기 위해서 그들의 생활양식에 맞는 방식으로 해야 한다. 인원 동원의 대상이 아니라, 여성농민에 대한 진정성의 마음을 가지고 말이다. 그런 맘이 있어 전여농은 의연하게 정도를 지키면서 농민운동의 길을 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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