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우리는] 대통령 선거·윤보선-박정희·아, 우윳가루

  • 입력 2016.04.10 09:54
  • 수정 2016.04.10 09:56
  • 기자명 이상락 소설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이상락 소설가
1963년의 어느 가을날 아침, 여느 때처럼 책보를 허리에 두르고 집을 나섰다. 근래 며칠 동안 동네가 좀 시끄러웠다. 아니 좀 들떠 있었다. ‘네꾸따이’ 맨 사람들이 부쩍 자주 발길을 했다. 그들이 왔다 하면 마을의 남자 어른들은 꾸역꾸역 동각(洞閣)으로 모여들었고, 그날 저녁엔 예외 없이 동네술판이 벌어지곤 했다. 대통령을 뽑는다 했다. 사람들은 공공연히 “나는 막걸리래도 한 잔 사주는 놈을 찍어줄라네” 따위의 말을 하고 다녔고, 빨래터의 어멈네들은 비누나 수건 등 살림에 보탤 물건을 주지 않고 남정네들로 하여금 만날 술타령을 하게 만든다고 불평이었다.

도중에 종석이를 만났다. 우리는 동각의 벽면에 붙은 선거벽보 아래 쪼그려 앉았다. 벽보에 헛짓거리를 하면 큰일 난다 했다. 윗마을 누구는 벽보 귀퉁이를 찢었다가 지서에 잡혀가서 흠씬 두들겨 맞았다는 소문도 돌았다. 하지만 우리는 어른들의 눈을 피해가며 숯검정으로 콧수염을 그리거나 입에다 고구마껍질을 짓이겨 붙여놓곤 했다. 종석이가 말했다.

“우리 아부지는 작대기 시 개, 3번을 찍는다고 했어. 왜냐고? 박정희가 막걸리를 사줬그등.”

“빙신, 박정희는 한 사람인디 어치케 동네마다 돌아댕긴시롬 술을 사주냐! 우리 아부지는 5번 윤보선이를 찍어야 된다고 했어.”

나도 그렇게 대꾸를 했으나 우리 같은 열 살짜리 꼬맹이들에겐 말짱 공염불이었다.

대개 우윳가루는 먹을 것이 궁한 봄철에 나눠주었다. 그것도 학교에서만 배급을 했다. 그 날이 되면 우리는 바가지나 보자기나 양철그릇을 가지고 등교해서 배급을 받았다. 선생님들은 집에 가져가서 반드시 끓여먹어야 한다고 했으나, 우리는 귀갓길 내내 그 우윳가루를 퍼먹었다. 잇몸에 들러붙은 놈은 새끼손가락을 빙 돌려 꺼내 먹었다. 아무리 나중에 설사를 한다 한들, 고소한 그 맛을 참을 수는 없었다.

그런데 참말 이상한 일이었다. 우리가 학교를 파하고 마을 들머리에 이르렀을 때, 이장이 동네 소사의 지게에 우윳가루 포대를 지우고는 집집마다 돌아다니면서 배급을 하고 있던 것이다. 보릿고개도 아닌 가을 추수기에, 그것도 학교가 아닌 동네에서 그것을 나눠주다니!

이장은 가가호호 우윳가루를 나눠주면서 집주인에게 나직하게 한 마디씩을 했다. ‘박정희’라는 말이 간헐적으로 들렸고, 혹은 손가락 셋을 펴 보이기도 했다. 그러거나 저러거나 우리는 우윳가루만 받아먹으면 만고 땡이었다. 우리는 공책의 표지나 회 포대 종이를 찢어서 우윳가루를 떠먹을 만반의 채비를 하면서 소사의 지게 꽁무니를 졸졸 따랐다. 드디어 마을 끝머리 쪽에 있는 우리 집 사립에 이르렀다. 그런데, 이장과 소사가 그냥 지나치는 것이 아닌가!

“어, 우리 집 우윳가리…”

나는 소사의 지겟다리를 붙잡았다. 그러나 이장으로부터 건너온 대답은 실망천만이었다.

“느그 집은 없어. 왜냐고? 느그 아부지는…줘봤자 소용도 없고, 또… 사상이 불량하그등.”

눈물이 났다. 이웃집 영길이는 보란 듯이 우윳가루를 그릇에 담아 돌담에 올려놓고 먹으면서 득의양양하였다. 조금만 달라고 해봤으나 녀석은 혀를 날름거리며 약을 올렸다. 알고 보니 우리 집만 우윳가루 배급을 못 받았다. 이상하게도 동네에서 <동아일보>를(그때만 해도 <동아일보>가 썩 괜찮았다) 구독하는 사람은 우리 아부지가 유일했는데, 그것이 아부지의 ‘사상’과 무슨 관계가 있는 듯 여겨지기도 했다.

나는 방구석에다 책보를 팽개치고서 아부지한테 따졌다. 왜 우리 집만 우윳가루를 안 주느냐고. 그러고는 또 바보같이 울었다. 아부지가 곤혹스런 표정을 짓더니 한참 만에 말했다.

“머시마 새끼가 고까짓것 갖고 울기는. 으음…너가 시무 살이 되면 알게 될 것이여.”

나는 당장 우윳가루만 먹을 수 있다면 그까짓 스무 살, 안 돼도 상관없었다. 그땐 그랬다.

물론, 내 아부지가 꽤 괜찮은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에 스무 살까지 기다릴 필요는 없었다. 지금 내가 이 나이에, 이만큼의 비판의식이라도 가지고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된 것은, 순전히 그 때 못 얻어먹은 고놈의 ‘우윳가루’ 덕분이다.

저작권자 © 한국농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