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농민으로 산다는 건] 옆집 할머니 용두댁

  • 입력 2016.04.10 09:50
  • 수정 2016.04.10 09:53
  • 기자명 심문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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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문희(전남 구례군 마산면)
옆집 할머니 용두댁. 나이 열여섯에 밥숟가락 하나 줄여볼 요량으로 시집왔었던 이야기며 지금껏 살아온 삶을 언제부턴가 자신의 입을 통해 이야기하기 시작하셨다. 여성농민회가 자기를 처음으로 인정해 주어서 고맙고 또한 세상 돌아가는 눈을 갖게 해주어 고맙다 하셨다.

큰딸로 태어나 줄줄이 아래로 동생 여덟을 두었으니 학교 문턱을 한 번도 넘어보지 못한 분이셨다. 하지만 농사에 대한 지식만큼은 기가 막힐 정도로 수준급이셨다. 나는 언제나 그녀를 박사님 하고 불러드렸다.

바람방향 만으로도, 넘어가는 태양의 색으로도 척하니 내일의 날씨를 예상하셨고 그녀의 예상은 언제나 딱 들어맞았다. 텃밭은 밥알 주워 먹을 정도로 정갈함의 극치이며 철마다 이것저것 수없이 많은 먹을거리가 넘치게 심어져 있었다. 워낙에 부지런하니 손에서 호미가 떨어질 날이 없었고 연말이면 서울 농민대회 버스 한 켠에 늘 함께 하셨다.

2004년 처음으로 농민회에서 진보정당을 통한 농민정치세력화 결정이후 맞이했던 총선에는 부산에 사는 아들, 서울에 사는 딸들에게 하루 한 번씩 이번에 민주노동당 안 찍으면 이제 쌀을 보내지 않겠다며 협박 아닌 협박을 하는 애교쟁이 할머니였다. 이어진 지방선거, 대선 등등 농사박사님은 아스팔트농사의 달인 선거농사의 표 조직가이기까지 했으니 이제는 고인이 되어버린 옆집 할머니 용두댁이 새삼스럽게 떠오른다.

가난을 물림 하지 않기 위해, 딸이라는 이유로 글 한 줄 제대로 익히지 못한 자신에 대해, 농사박사님임에도 맘껏 누리고 살아보지 못한 자신의 삶을 바꾸기 위해 역사의 전면으로 기꺼이 나섰던 그녀의 길을 다시 또 다른 여성농민이 이어간다.

2016년 봄. 또 한번 역사의 격동기를 맞이했다. 천만의 농민이 반토막에 반토막이 되어버린 지금의 상황에서 누구도 농민의 목소리를 대변해 주지 않는다. 선거기간 한복판에서 퍼주기 논란 쌀 직불금 전면재검토 관련 논평이 나올 지경이니 정도가 넘어도 한참을 넘은 것 같다.

작년 11월 14일은 우리지역에서도 버스 8대가 서울을 향했다. 정부와 정치권의 농민무시 농업무시가 눈에 보일 정도이니 수많은 농민들을 자연스럽게 버스에 오르게 한 것이다.

제발 우리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달라는 정치권과 국민들을 향한 몸부림이었다. 하지만 되돌아온 것은 사람을 향해 쏟아대는 물대포였으니 기가 막힐 지경이다. 한사람의 농부가 여전히 누워있다.

미국의 원조로 길을 잃어버린 밀을 다시 살려낸 장본인이었다. 밀밭을 밟아야 할 그의 부인은 지금도 병실을 지키며 청와대 앞에서 피켓 한 장을 들고 서있다. 귀가 있으면 들어라. 눈이 있으면 보아라. 입이 있다면 말해야 하는 것 아니냐.

그의 이름 석자도 모르는 이들이 농촌 지역 선거에 출마해 농민을 대변하겠다며 온갖 감언이설을 총동원하고 있다. 이놈 저놈 똑같다시며 평생을 비슷비슷한 놈들을 번갈아가며 찍어온 세월이 부메랑처럼 농촌 해체를 부추기고 있으니 이제는 제대로 한번 바꿔보자.

농민이 농민을 찍고 노동자가 노동자를 찍는 것만으로 선거 승리뿐만 아니라 집권도 가능한 것이 아닌가?

어서 일어나 함께 밀밭으로 가요. 백남기 농민은 여전히 서울대병원에 누워있다. 평생 농민세상 만들기 위해 살아오신 분 벌떡 일어나 농사지을 수 있게 지금 현재 우리가 온힘을 다하는 것이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씨앗 뿌리고 가꿔온 농민들의 최소한의 의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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