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FTA 저지 투쟁에 참가하고 쓰는 편지

  • 입력 2007.02.01 00:00
  • 기자명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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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 안녕하셨어요.

오랜만이지요. 깊어 가는 가을날에 뜬금없이 보고 싶어져서 언니를 불렀답니다. 며칠 전에 제주도에 갔다 왔어요. 눈치 빠른 언니는 알아채셨겠지요. 한미 FTA 4차 협상 저지를 위한 투쟁하러 여성농민회 회원 자격으로 갔어요. 신혼여행 때도 못 간 제주도를 투쟁하러 가다니요. 씁쓸하더군요.

김 해경
그리운 제주도에 도착해보니 정말 좋았어요. 아주 어릴 때 서귀포와 남원에서 4년을 살았거든요. 집회가 열리고 있는 컨벤션 센터로 가는 길은 평화롭고 아름다웠어요. 때 아니게 호사스러운 관광을 하는 기분이 들더군요. 그런데 조금 더 가니까 도로변은 노란 물결이었어요.

 “한미 FTA 저지”라는 노란색 깃발들이 양옆으로 늘어서 있었거든요. 달려도 달려도 계속 휘날리고 있는 깃발들을 보니 가슴이 먹먹해져왔어요.

저녁때 여성농민회 모임 때 알게 된 건데 그 깃발들은 제주 여성농민회가 사흘 동안 500개의 깃발을 꽂았다고 하더군요. 500개의 노란 손수건, 지금 생각해도 감동적이예요.

컨벤션 센터 앞에 도착해보니 바다에선 해상시위가 벌어지고 있었어요. 제주어민들이 어선을 타고 해상시위를 하고 있었지요. 놀라운 열정이지요. 먼저 온 여성농민회 회원들은 열심히 격려를 하고 있었구요.

조금 후 비바람이 불어와서 버스 안으로 피해 들어가 점심 도시락을 먹은 후 중문 삼거리로 향했어요. 거기선 벌써 집회가 진행중이더군요.

나중에 농민들이 귤나무를 태울 땐 콧등이 찡했어요. 우리가 왜 이렇게 쌀을 태우고 귤나무를 태워야 하는지 정말 답답했지요.

중문 삼거리에서 다시 컨벤션센터 앞으로 가서 결의대회를 갖고 우리는 모두 방파제로 갔어요. 몇몇 분들이 물을 건너서 협상장으로 가려구요. 방파제에 도착하니 벌써 물에 들어가서 건너는 분들이 있더군요. 힘내시라고 열심히 북을 쳤지요.

그런데 저 멀리서 새까만 개미떼처럼 전경들이 몰려오기 시작했어요. 벽을 타고 올라와서 물을 건너간 사람들을 막는 거예요. 방패로 찍고 미는 거예요. 우리는 소리를 지르고 그러지 말라고 하는데 전경 서너명이 가만히 서 있는 어떤 분 뒤로 가서 다리를 세게 내리치고 말았어요.

하늘에선 취재 나온 헬기가 윙윙거리며 떠 있고…얼마나 서럽고 마음이 아프던지 엉엉 울고 말았지요.

바닷가를 통해 협상장으로 가려던 사람들도 모두 연행되었다가 나중에 풀려 나왔어요. 여자분도 있었어요. 얼마나 추웠을까요. 방파제에서 횃불을 올리고 또 촛불집회도 가졌어요. 민중가요 ‘불나비’를 부르며 북을 칠 때는 가슴이 뜨거워졌지요.

다시 컨벤션센터 앞에서 풀려 나온 분들께 박수를 쳐 드리고 일단 그날의 집회는 해산했지요. 하루 전날 와 있던 남편과도 바이 바이.

한 시간 동안 버스를 타고 달려서 숙소에 도착하니 모두가 파김치가 되어서 각 지역별 장기자랑은 엄두도 안 날 지경이 되었어요. 우리 방에 있는 회원들은 모두가 모임을 안했으면 좋겠다고 하고..그 말을 들은 우리 지역 회원은 “그건 전여농을 몰라서 하는 소리”라고 하더군요.

모두 뻗어 있다가 모이라는 말에 식당으로 갔더니 눈이 휘둥그레지고 입이 해벌쭉해졌어요. 탁자 위에 가득 놓여 있는 안주와 술… 너무 반가워서 모두 자리에 앉아서 열심히 먹다가 여러분들의 인사말들을 듣고… 저는 전여농 모임에 처음 참석 해본지라 누가 누군지 몰라요.

드디어 장기 자랑 시간이 돌아 왔어요. 우리 충북도팀은 두 번째로 하게 됐는 데 스케치북으로 만든 카드섹션이었어요. FTA 반대 내용이 들어가는 그림들이었는데 모두 일곱사람이 음악에 맞춰 번호를 넘기는 거였어요. 서로 그림이 안 맞아서 어쩌다가 맞으면 관객들이 그렇게 좋아할 수가 없었어요.

다른 팀들도 어찌나 끼와 재능이 많던지… 너무나 재밌었어요. 그냥 잤으면 후회할 뻔 했지요. 방으로 돌아와서도 우리네 아줌마들의 끝없는 수다에 제주도의 가을밤은 그렇게 푸르게 깊어져 갔지요.

날이 새고 맛있는 아침식사 후에 좋은 시간이 마련되었지요. 오종렬님이 북핵문제와 FTA에 대한 강의를 하셨는데 이해하기 쉽고 재미나게 해 주셨어요. 그리고 제주도 4.3항쟁에 관한 얘기를 하실 때는 너무 가슴이 아파서 꾸역꾸역 나오려는 눈물을 삼키느라 일부러 딴 생각까지 했다니까요. 주거니 받거니 좋은 시간이었어요.

또 다시 1시간을 달려서 농협 하나로마트 앞으로 가서 집회를 가졌어요. 기억은 안나는데 많은 분들의 힘찬 결의를 듣고 일단 집회는 끝이 났고 우리는 제주 공항으로 갔지요. 다음에는 정말 여행으로 와야겠다며 제주 하늘을 날아 올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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