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담회]‘농민의 길’ 사무총장단이 말하는 4.13 총선
농민을 살리는 정치, 기댈 곳은 농민 뿐이다

  • 입력 2016.04.01 15:55
  • 수정 2016.04.01 16:19
  • 기자명 원재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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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원재정 기자]

4.13 총선을 앞두고 각 정당과 후보자들이 연일 바쁜 행보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이번 총선은 역대 어느 총선보다 ‘그들만의 선거전’으로 치러지고 있다는 평가다. 국민과 농민의 대리인을 뽑는 총선이 국회 입성의 잔치로 끝나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는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정책 대신 정쟁으로 얼룩지고 비례대표에서 조차 사회적 약자 배려에 인색한 탓이다.
농업과 농촌, 농민을 살리는 ‘정치’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20대 국회가 해결해야 할 농업현안은 무엇인지 지난달 29일 제2축산회관에서 좌담회를 열고 ‘농민의길’ 소속 농민단체 사무총장들에게 방향을 물었다.

[사회] 심증식 한국농정신문 편집국장

[좌담 참석] 김정렬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사무총장
                   박종서 전국친환경농업인연합회 사무총장
                   손영준 가톨릭농민회 사무총장
                   조병옥 전국농민회총연맹 사무총장 (가나다 순)

[기록·정리] 원재정 기자
[사진] 한승호 기자

심증식 한국농정신문 편집국장 : 4.13 총선 각 당의 농정공약을 살펴보고, 농민들의 요구와 얼마나 상관성을 갖는지 알아보는 특집호를 기획했다. 먼저 19대 국회와 박근혜정부 농정에 대한 평가부터 부탁한다.

19대 국회 평가

▲ 김정렬 전국여성농업인연합회 사무총장
김정렬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사무총장 : 19대 국회, 아울러 박근혜정부에 ‘평가’라는 단어조차 붙이기 어려울 정도다. 지난해 초 전여농 사무총장을 맡으면서 농림축산식품부 농촌여성복지과가 주축이 돼 여성농민단체들과 소통을 늘리자는 자리를 만든 적 있다. 서너 번이나 참석했을까, 여성농업정책도 없거니와 과장이 자신의 업무를 일방적으로 설명하는 그런 자리였다. 한국농정에 여성농민을 생산주체로 인정하고 육성하겠다는 개념 자체를 찾기도 희박한 중앙부처의 인식수준을 보니 여성농정의 단면을 재확인하는 것에 불과했다. 지난해 국회 농해수위원회가 밥쌀수입 안하는 결의문도 채택하고 하지 않았나. 일정정도 기대했지만 전혀 실현된 것이 없다. 실망스럽다.

조병옥 전국농민회총연맹 사무총장 : 농민들 현실이 다 말해주듯 박근혜농정은 할 말도 잃게 하고 그저 참혹할 뿐이다. 지난해 중국·뉴질랜드·베트남 3개의 자유무역협정(FTA)이 물밀 듯 진행됐고,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까지 몰아붙이면 그야말로 개방농정의 완결판이 된다. 농민들은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뒤로 쑥 밀린 느낌이다. 게다가 6차산업화, ICT융복합, 수출농업 등으로 집약되는 슬로건을 보면, 270만 농민들과 과연 얼마나 연관성이 있나 묻지 않을 수 없다. 결국 소수 2~3% 농민들만 농정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 박종서 전국친환경농업인연합회 사무총장
박종서 전국친환경농업인연합회 사무총장 : 갈수록 신자유주의 개방농정이 완성되고 있고 TPP만 남은 상황에 농업농촌 현실은 벼랑 끝에 내몰리고 있다. 문제는 대다수 국민들의 처지도 별반 다를 게 없다는 점이다. 중산층의 몰락, 비정규직의 증가 등은 소비패턴에도 극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당장의 현실이 팍팍한데 친환경농업의 가치까지 얹어서 구매할 여유가 없지 않겠나. 이와 맞물려 친환경농가들도 정부만 믿고 기다릴 수 없어 자구책 마련에 고심했다. 친환경자조금이 그것인데 친환경농가가 대폭 감소한 현실 속에 소비자들에게 공익적 기능을 알려내고, 친환경의 순기능을 적극 홍보하는 일이 시급하다.

손영준 가톨릭농민회 사무총장 : 백남기 회장의 국가폭력 사태를 아프게 겪고 있다. 농업 현실이 백남기 회장의 현실과 꼭 같은 시대를 살고 있다. 박근혜농정을 뒤돌아 보면서 새삼 놀라게 됐다. 쌀 전면개방, 밥쌀 수입, FTA, TPP, 쌀 생산면적 축소까지. 한국농업을 살려서 식량주권을 지키자는 농민운동의 흐름과는 정반대로 달려왔다. 특히 통일농업의 폐기와 쌀의 사료화는 그 정점이다. 쌀을 사료로 만들지언정 남북 평화의 가장 유연한 대책인 식량소통은 없다는 방식은 폭력적이기까지 하다. 한마디로 ‘한국농업의 해체정책’이라고 정리하고 싶다.

4.13 총선 농업의제는 왜 사라졌나

심증식 : 19대 국회가 농업위기, 신자유주의 개방에 전혀 제동을 걸지 못했다는 평가가 주를 이룬다. 그렇다면 4.13 총선은 어떤가. 농업문제가 선거에서 사라지는 이유, 농민표가 적어서 그런 걸까.

▲ 조병옥 전국농민회총연맹 사무총장
조병옥 : 천박한 자본주의식 사고에서 비롯됐다고 본다. 황금만능주의 경쟁지상주의가 대한민국을 휩쓸어 사회 전반의 공공의 선, 상식의 선이 무너졌다. 농업이 갖는 소중한 가치는 퇴색하고 환금성에만 집착한 결과 농업이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것이 하나의 이데올로기로 굳어버렸다. 이번 선거에서도 그대로 투영되고 있다.

박종서 : 소비자 인식도 급속히 변하고 있다. 이 또한 신자유주의와 무관하지 않은데, 최근 한 조사 결과를 보면 수입농산물에 대한 거부감도 많이 사라졌고, 유전자변형농산물(GMO)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정치경제사회 전반이 후퇴하고 국민들 삶이 팍팍해지다보니 생계문제 안에 갇히게 된다. 농업의 다원적 가치를 얘기할 만한 품이 없어지는 사회로 변모하고 있다.

손영준 : 이번 총선을 보면 농업농민의 소외 뿐 아니라 국민들이 빠져있다. 누가 공천을 받았느냐만 관심이 쏠리고 있다. 국민이 빠져있는 선거에 농업과 농민 설자리가 있을 리 없다. 생명으로의 농업, 공동체의 가치 등에 대해 사회 전반적으로 ‘진부한 논리’ 취급을 받는 시대다. 농민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 농민 생계가 워낙 어렵다보니 돈 되는 품목은 뭔지, 올해 농사로 얼마나 버나, 에만 관심이 쏠리게 된다. 농민단체도 생각해 볼 문제다. 농업정책 비판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지만 생명의 가치를 놓치면 안된다.

김정렬 : 농민운동 내부에서도 성찰이 필요하다는 말에 공감한다. 하지만 농업·농민이 존중받는 것은 단언컨대 이 사회에서는 불가능하다. 흔히 농정 패러다임 전환을 얘기하는데, 우리 사회 전반의 성찰이 있어야 하고 농업농민의 가치가 존중받는 사회란 어떤 사회인지 근본적으로 토론하지 않으면 희망이 없다. 19대 국회는 물론 20대, 21대에도 기대할 수 없게 된다. 한편으로 허리가 굽도록 열심히 일하는 농민들이 가족생계 꾸려나가는 것도 벅찬데 반성과 성찰을 논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문제이다.

심증식 : 이번 선거 속에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 분위기조차 실종되고 있다. 비례대표 공천만 봐도 더불어민주당과 민중연합당에서만 농민 비례후보를 당선권에 공천했다. 진보정당을 자처하는 정의당도 농민 대표성을 비례후보에 담지 못했다. 정치가 약자를 대변하지 않는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박종서 : 사회적 약자 계급을 지지하는 기반은 약해지고, 사회를 구분하는 잣대가 종북·좌파 문제로 대립되고 있는 것 같다. 정치가 이를 활용하고 있고. 계급에 기반한 정당 조차 실종되다보니 국민들은 자기 좌표를 잃어버렸다. 이는 사회의 인식수준이 하향조정되고 있다는 증거다.

▲ 손영준 가톨릭농민회 사무총장
손영준 : 이번 선거를 앞두고 ‘선거연합정당’ 만들어 보자고 했던 것이 기댈 데가 없다는 결론 때문이었다. 우리 힘을 모아서 우리 문제를 해결하자고 한 것 아니었나. 진보정당, 민중연합당 등 각자의 목소리를 낸다는 것이 안타깝다. 총선 이후, 어려운 상황을 헤쳐나갈 수 있는 힘을 결집하는 게 중요하다.

박종서 : 동의한다. 정권이든 국회든 어디서 농업농촌농민 문제에 발벗고 나설까 회의감이 든다. 우리 문제의 해결사는 우리 뿐이라는 자각이 필요하다. 전국에서 만난 농민들의 요구가 다양하게 분출되고 있는데 미처 묶어낼 만한 시간을 확보하지 못해 아쉬움이 남는다. 4.13 총선 이후라도 폭넓게 모아내는 역할이 필요하다. 굉장히 소중한 흐름이다. 반드시 살려서 싹을 틔워야 한다.

김정렬 : 농민들의 요구는 절박함 그 자체다. 현 정치권에서 희망하기 어렵다는 것 알기 때문에 답은, 우리가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농민들이 원하는 정치가 어떤 것인지 현장에는 다 여론이 형성돼 있다. 전국 각지의 요구들을 모아서 묶어내는 일이 ‘농민의 길’의 역할이라고 본다. 절망이라고 생각했는데 오늘 논의를 하다 보니 힘이 솟는다. 농민문제 농민들이 나서지 않으면 누가 하겠나.

조병옥 : 이명박·박근혜정권은 진짜 낙제수준이다. 농민운동이 이 과정에 여러 부침이 있었다. 가농의 경우 농업이 생명산업이라는 슬로건으로 운동을 해 오다 백남기 회장 사건을 겪으면서 근본적인 것을 건들이지 않으면 한계가 있다는 점을 다시금 깨달았을 것이다. 농민운동이 부분 운동만으로는 완성될 수 없다. 백남기 회장 사건은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구조에서 상징적인 사건이다. 권력구조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변죽만 울리고 만다. 권력의 핵심으로 우리가 어떻게 설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상당히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재정비하자. 농민이 들녘의 주인이고, 일하는 사람이 권력의 주체로 서기 위해 힘을 다시 모으자.

20대 국회가 풀어야 할 농업과제

▲ 심증식 한국농정신문 편집국장
심증식 : 20대 국회가 풀어야 할 농정과제에 대해 듣고 싶다. 올해가 지나면 대선국면에 접어들기 때문에 농업문제를 더욱 확산시켜야 한다고 본다.

조병옥 : 전농의 농업의제를 비롯해 각 단체별 핵심의제들이 있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실현시킬 것인가의 문제다. 농민단체가 할 수 있는 일이 그리 많지 않다. 농식품부, 농협 등이 제 역할을 하는 게 중요하다. 여기에 어떻게 적극 개입할 것인가를 풀어나가야 한다. 19대 국회가 매듭짓지 못한 기초농산물국가수매제 입법화도 20대 국회에 또 계류되다 끝낼 수만은 없다. 농식품부가 반대하고 있는 이 제도를 함께 논의하고 안전장치 만들고 소통해서 길 찾는 노력을 해야 한다. 품목조직에 대한 필요성도 대두되고 있는데, 종합적으로 정책 화두만 던질 것이 아니라 세부안에 대해 성안시키는 일이 필요하다.

김정렬 : 여성농업인 육성법 개정은 20대 국회 때 반드시 실현시킬 계획이다. 내용이 대체로 ‘~할 수 있다’ 식으로 돼 있어서 한계가 많다. 의무화 될 수 있도록 개정해야 한다. 또 GMO 관련 완전표시제도 빼놓을 수 없다. 토종씨앗문제도 남북농업 교류 확장 차원에서 중요한 문제다.

손영준 : 20대 국회 농정과제는 두 가지가 있다. 공권력 피해를 막자는 일명 ‘백남기법’ 제정과 GMO 상용화 방지법이다. 백남기법은 농민 피해 뿐 아니라 한국사회의 인권문제이기 때문에 이 법이 제정되느냐 마느냐에 따라 한국 민주주의의 척도가 될 수 있다고 본다. GMO 상용화는 국민 건강상도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한국농업을 말살시킬 수도 있는 GMO 문제를 법으로 강제토록 해야 한다.

박종서 : 농민의 길 차원에서 함께 논의했던 문제라 고민의 바탕은 같다. 친농연은 농가소득보장 체계 문제와 아울러 유기농업직불제 지속성 확보를 첫 번째 과제로 꼽았다. 두 번째는 직불제 개편과 맞물려 있는데 친환경 육성 예산 대부분이 농자재 지원 중심이다. 이를 직접지불방식으로 개편토록 할 계획이다. 세 번째는 친환경급식법 개정으로 중앙정부 지원을 확대토록 하겠다.

심증식 : 끝으로 한 말씀씩 부탁드린다.

김정렬 : 농민들이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더 이상 국회나 정부가 농민을 살려주겠거니 기대하지 말자. 우선 농민의 길 차원에서 길을 내고 또 다른 농민단체와 뜻과 힘을 모아 끌고 나가자. 국민과 함께 하는 농업, 이라는 기치도 놓치지 말아야 한다.

조병옥 : 농업문제 해법은 정치권력 기반을 농민, 노동자 같이 ‘일하는 국민’들 위해 복무하는 지형으로 어떻게 변화시키느냐가 관건이다. 그런 의미에서 언론의 역할도 중요하다. 힘들고 험난하겠지만 손잡고 달려야 한다.

손영준 : 가농이 ‘나를 바꾸고 가족을 바꾸고 지역과 마을을 바꿔 세상을 바꾸자’고 선언했었다. 그리고 반생명적 요소와 치열하게 싸우자고 했다. 농업을 통해 세상을 변화시키는 데 공을 들이는 동안 반생명적 요소 투쟁 부분에는 상대적으로 소홀하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 우리 농민 운동진영이 한 단계 발전하기 위해 가치문제에 대해 중심을 두고, 반생명적 요소와 싸워나가야 할 때다.

박종서 : 농식품부와의 관계 설정도 중요하다. 실제 정책이라는 결과물이 나오는 곳이기 때문이다. 한편으로 우리 문제를 풀기위한 실천에 더 집중하겠다.
중앙정권 바꾸는 것도 중요하지만 기반을 세우고 확산시켜 활동범위를 넓히는 실천, 더 늦출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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