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우리는 - 대장간④] 세월을 담금질하는 대장장이

  • 입력 2016.04.01 14:08
  • 기자명 이상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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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락 소설가
‘메가폰을 잡았다’ 하면 영화감독이 되었다는 얘기고, ‘키를 잡았다’ 하면 선장이 되었다는 얘기다. 청천대장간에서 조수로 일하던 최용진이 드디어 ‘집게를 잡았다!’ 대장장이가 되었다는 얘기다. 주인이자 매형인 박 대장은, 최용진이 서툴게나마 담금질을 흉내 낼 수 있는 정도가 되자 대장간 일은 나 몰라라 하고는 밖으로 나돌았다. 그는 연장을 벼리는 일에 진력이 났는지, 일거리를 온통 처남에게 맡기고는 한낮부터 술집을 순회하면서 니나노 장단에 심취하였다.

박 대장의 무책임한 일탈이 최용진에게는 대장공으로서의 기능을 속성으로 연마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물론 쉽지 않았다. 서툰 담금질로 쇠붙이의 강도를 맞추지 못해 연장이 부러지거나 우그러지기 다반사였고, 메질하는 중에 파편이 눈으로 튀어서 실명 위기를 겪기도 했다. 그러면서 그는 시나브로 어엿한 대장장이가 되어갔다. 조수로 일하던 김 씨도 그를 ‘최 대장’이라고 불러 주었다.

어느 날 그는 장난기가 발동하여, 손가락만한 쇠붙이를 불에 달군 다음 고놈을 세 가닥으로 갈라 구부려서 장난감 쇠스랑을 만들어보았다. 음식 먹는 포크를 구부려놓은 것과 비슷한 크기의, 요즘 식으로 말하면 ‘미니어처 연장’이었다. 그런데 한 여자고등학생이 지나가다 그것을 보고는 신기하다며 좋아라, 팔짝 뛰었다.

“좋으면 너 가져라!”

그랬는데, 다음 날에는 친구들을 몰고 와서는 도끼나 호미나 낫도 장난감으로 만들어달라고 보챘다. 그래서 몇 번 만들어봤는데…부질없단 생각이 들었다. 밭을 일구지 못하는 호미와 두엄을 파내지 못 하는 쇠스랑을 일삼아 만드는 것은, 실사구시를 근본으로 삼는 ‘대장장이 정신’(?)을 거스르는 것이라 여겼다. 하지만 뒷날 대장장이의 쓸모가 시들해지는 세상이 도래하면서, 오히려 그러한 소품 연장들이 관광용품으로 절찬리에 팔려나가리라고는 까맣게 몰랐다.

장난감 쇠스랑을 선물로 받아갔던 명순이라는 그 여학생은 최용진에게 썩 귀한 선물을 답례로 가져왔다. 어느 날 자신의 언니를 대장간으로 데리고 와서 말했다.

“좋으면 아저씨 가지세요!”

그래서 까짓것, 결혼을 해버렸다.

1974년에 독립선언을 하였다. 자신이 나가야 매형인 박 대장이 술타령을 멈추고 대장간 일에 열중하리라 여겨지기도 하였고, 무엇보다 자신의 대장간을 갖고 싶기도 하였다. 그때 시작한 증평대장간의 역사가 지금껏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1970년대 들어서면서 대장간 풍경 중에 달라진 것이 있었다. 연장을 가는 숫돌이 사라지고 그 대신 전기의 힘으로 돌아가는 연마기가 한 자리를 차지한 것이다. 처음엔 보안경을 쓰지 않고 연마기를 돌렸다가 쇳가루가 눈으로 달려들어 큰 영금을 보기도 하였다.

처음 증평으로 와서 대장간을 열었을 때, 장날 대장간에 들른 여인들이 벽에 걸어놓은 호미를 보더니 참으로 요상하게 생겼다며 웃고 야단이었다. 알고 보니 전에 일하던 충주 쪽은 땅에 자갈이 많아서 호미를 뾰죽하게 벼리지만, 증평은 자갈이 없는 토양이라 호미들이 넓적한 모양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토질에 따라 연장도 달라진다는 것을 배운 것이다.

1970년대 후반 들어 기계화영농바람이 거세게 불면서 대장간의 중추품목이던 괭이, 곡괭이, 호미 등은 급속하게 그 수요가 감소되었다. 연탄, 석유 등의 연료가 시골까지 보급되면서 도끼나 낫으로 나무를 할 일도 없어졌다, 심지어는 죽은 이의 유택도 삽이 아닌 포클레인으로 파서 만드는 세상이 되었다. 철물점 진열대에 있는 그나마의 연장들도 주물공장에서 생산되는 제품들이다. 그래서 최용진은 틈나는 대로 장식용 소품연장들을 만들어서 민속촌 등지에서 팔기도 한다. 엿장수 가위도 만들어 판다. 그 가위를 옛날에는 엿을 파는 사람이 쳤는데 요즘은 엿을 사먹는 사람들이 구입하여 장난삼아 치고 논다. 세상이 그렇게 변했다.

대장장이 최용진은 오늘도 비좁은 증평대장간에서 달구고, 담그고, 두드린다. 일거리가 없으면 지나온 세월이라도 모룻돌에 올려놓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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