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우리는 - 대장간③] 대장장이가 되는 길

  • 입력 2016.03.27 01:29
  • 수정 2016.03.27 01:30
  • 기자명 이상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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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락 소설가
밥벌이로 삼을 만한 기능을 몸에 익힌다는 것이 어느 분야든 쉽겠는가만, 대장(대장장이)이 되는 길은 역시 만만치 않았다. 청천대장간의 박 대장은 조수로 들어간 최용진에게 두 달이 지나고 석 달이 지나도록 해머로 모룻돌 위의 연장을 내려치는 메질만을 시켰을 뿐, 대장공의 진짜배기 기술인 담금질은 가르쳐 줄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 곳엔 처남인 최용진 말고도 또 한 사람의 조수인 김 씨가 있었는데, 그는 10년이 다 돼가도록 아직 ‘집게’를 잡아보지 못했다고 했다. 보채는 최용진에게 박 대장은 콧방귀부터 뀌었다.

“이눔아, 담금질이야말로 대장공의 생명이자 가장 중한 밑천이여. 그것 할 줄 알면 그때부터 대장이라고 불러도 된다니께. 니가 보기엔 불에 달군 연장을 그저 물속에다 푹 처박았다 꺼내기만 하면 되는 것 같지? 택도 없는 소리 말어. 대장 계급장은 뭐 화투 쳐서 딴 줄 알어?”

박 대장은 그저 대장이 하는 양을 묵묵히 지켜보는 공부부터 하라고 했다. 쇠붙이의 되고 무른 정도, 즉 강도는 담금질에서 결정 난다. 노련한 대장공은 먼저 연장을 척 보기만 해도 쇠의 종류를 감별할 수 있어야 하고, 화덕 속에서 달궈진 연장의 색깔만 보고도 온도를 간파할 수 있어야 한다. 대개 화덕 속의 연장 전체가 완전히 샛노랗게 되었을 때의 온도가 1,000도라고 보면 된다.

불에 달군 연장을 집게로 꺼내 모룻돌 위에 올려놓고 망치나 해머로 한바탕 벼린 다음, 모양이 갖춰졌다 생각되면 대장은 그 연장을 땅바닥에 내던져서 식힌다. 낫, 식칼, 도끼, 작두 등 날이 있는 연장의 경우 바로 이 연철상태에서 숫돌에 갈아서 날을 세운 다음에, 다시 한 번 불에 달궈서 담금질을 해야 열처리 과정이 완성된다. 숫돌에 연장을 가는 일은 대장간의 조수가 할 몫이지만, 손이 모자라면 연장을 가지고 나온 주인이 직접 하기도 하였다.

담금질을 할 때에는 연장의 부분, 부분을 잠깐씩 ‘푸식, 푸시식’ 하는 식으로 담갔다 꺼내는데 이렇게 하는 것은, 날 전체를 한꺼번에 푹 담가버렸을 경우 연장이 강도를 이기지 못 해 반 토막으로 부러지는 수가 있기 때문이다.

자고로 대장장이들은 엉덩이가 무거워서는 안 되었다. 지방의 소도시나 읍 단위의 고을만 해도 대장간이 사방에 널렸기 때문에, 한 자리에 눌러 앉아 손님이 연장을 챙겨서 찾아오기만 기다렸다간 손가락을 빨 각오를 해야 했다. 그래서 대장간이 없는 마을로 가서 간이 대장간을 운영하기도 하였는데 그 대가는 가을 추수기에 곡식으로 받았다.

대장간 식구들이 풍구와 화덕을 짊어지고 가장 자주 찾아가는 곳은 5일 장터였다.

장터 한 귀퉁이에 간이 대장간이 차려졌다. 이 마을 저 고을에서 무딘 연장을 챙겨들고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하지만 대장간의 일이라는 것이 바쁘다고 정해진 공정을 생략하거나 시간을 단축하여 대충 해치울 수 있는 일이 아니었으므로, 연장의 주인들끼리 순서를 두고 다투는 일이 잦았다. 어느 장날, 꼬장꼬장한 한 노인이 장터의 간이대장간에 나타나서는 도끼 한 자루를 바닥에 팽개치더니 다짜고짜 따지고 들었다.

“이봐! 그래도 단골이라고 몇 년 동안 연장 갖고 와서 맡겼더니, 이렇게 엉터리로 일을 하는 벱이 어딨어! 지난 장날 여그서 손봐준 도끼가, 장작 몇 개비 패지도 못하고 요 모양 요 꼴이 돼버렸어. 눈이 있으면 보드라고!”

도끼를 살펴봤더니 날이 심히 우그러져 있었다. 대장장이의 잘못이 아니었다. 모룻돌에서 연장을 벼린 다음 바닥에 던져놨는데 그 노인은 아직 담금질을 안 한, 연철상태의 그 도끼를 그냥 가져갔던 것이다. 그뿐 아니었다. 어떤 남자는, 바닥에 던져놓은 도끼를 숫돌에 갈겠다고 덥석 집어 들었다가 비명을 지르며 나동그라지기도 했다. 아직 식지 않은 상태에서 생각 없이 손을 댔다가 화상을 입은 것이었다. 박 대장이 판자 하나를 가지고 와서 최용진에게 말했다.

“자, 여그다가 이렇게 써라. ‘검은 쇠는 함부로 만지지 마셔유!’라고.”

“그것이 뭔 소리래유? 그라믄 불에 달군 뻘건 쇠는 만져도 된다는 얘긴감유?”

“멍충한 놈. 뻘건 쇠는 만지라고 고사를 지내봐라 누가 만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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