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가 뛰어든 농활] 인삼농사 6년을 시작합니다

  • 입력 2016.03.27 01:19
  • 수정 2016.03.27 01:24
  • 기자명 권순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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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권순창 기자·사진 한승호 기자]

기자들이 농촌 현장에 뛰어들어 체험한 내용을 수기로 올립니다. 많은 성원 부탁드립니다.

▲ 본지 권순창(가운데 오른쪽) 기자가 지난 22일 충북 괴산군 불정면의 한 인삼밭에서 김학문씨와 함께 파종기로 인삼 씨앗을 심고 있다.

인삼밭은 나에겐 접근 금지의 대상이었다. 외갓집 근처엔 인삼밭이 많았지만 “인삼을 훔치는 건 서리가 아니라 절도”라는 외삼촌의 으름장을 듣고선, 어린 마음에 가까이 갔다가는 절도범으로 몰릴까, 혹여나 고귀한 이파리라도 상하게 할까 지레 겁을 먹고 삼밭이 있는 길은 옆길로 빙 둘러 다니곤 했다.

그런 나에게 인삼밭의 실체(?)를 파헤칠 기회가 찾아왔다. 농활을 섭외했던 감자 농가가 예정보다 빨리 감자를 심어버리는 바람에 인근의 인삼 농가로 종목을 급선회했다. 이제 나는 그 시커먼 천막 안쪽에 무엇이 어떤 모양으로 들어가게 되는지 그 근원부터 낱낱이 목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때까지만 해도 아무 것도 없는 흙땅 위에서 하루종일 먼지바람만 뒤집어 쓰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건만….

괴산 불정면 김학문씨의 인삼밭에는 아침부터 김씨와 그의 형 김학조씨, 형수 김수헌씨 등 여덟 사람의 일꾼이 나와 있었다. 오늘 작업은 인삼 씨를 파종하고 그 위에 짚을 덮는 일. 남자들이 파종기를 착착 찍고 지나가면 여자들이 흙을 덮고 그 위에 짚을 덮는다.

▲ 씨앗 파종을 하기 전 두둑을 평탄하게 만드는 작업도 중요하다. 권순창 기자가 베트남에서 온 노동자들과 함께 두둑 작업을 하고 있다.

파종기라는 것이 참 신통한 물건이다. 맨 위쪽 씨틀에 씨를 담고 파종기를 땅에 내린 뒤 레버를 당기면 수십 개의 씨앗이 관을 타고 흩어져 내려 땅에 박힌다. 어젯밤부터 했던 이미지 트레이닝에서 내 오른손엔 씨앗 한 줌이, 왼손엔 꼬챙이 하나가 쥐어져 있었는데, 이제와선 아주 민망한 트레이닝이 돼버렸다.

쉽다. 너무나 쉽다. 이 쉬운 걸 왜 남자들이 하고 여자들은 궂은 일을 시키나 야속하단 생각도 들었는데, 한번 파종기를 들어 보니 ‘아하’ 싶다. 이거, 무겁다. 그나마 신형 기구라 가벼운 편이라 한다. 구형 기구는 더 무거운데다 씨를 내리는 면적이 좁아 훨씬 여러번 이동을 해야 한다.

그렇다고 구형보다 좋기만 한건 아니다. 구형의 경우 한 호스에 대개 한 개의 씨앗만이 내려가는데 이놈의 신형은 한 호스에 서너 개씩이 와르르 내려간다. 신형을 처음 빌려 써보는 탓에 김씨도 씨 소모가 이렇게 많을 것을 예상치 못한 모양이다. 작업 중에 연신 남은 씨와 남은 면적을 비교해 보더니 급기야 주변 농가에 남는 씨가 없는지 전화를 돌리기 시작한다. 그러나 다들 신형 기구를 쓰는 탓인지 씨앗이 넉넉지 않다. “에이, 없으면 그냥 묘삼으로 심어버리지 뭐.” 결국 김씨의 삼밭 중 어딘가에는 묘삼이 들어차게 될 모양이다. 듣기로는 묘삼 옮겨심는 게 파종하는 것보다 훨씬 힘들다고.

▲ 씨앗이 잘 심겼나. 파종기를 처음 써본 탓에 함께 작업에 나선 이들이 모두 인삼 씨앗이 잘 파종됐는지 두둑을 확인하고 있다.

유독 김씨와 내가 잡은 파종기가 자꾸 말썽을 부리는 탓에 중간중간 고치면서 농사 얘기도 곁들이는데, 땅에서 나는 것 중 값 나오는 게 없단 말이 인삼에도 예외는 아닌 모양이다. “계속 하던 일이 아니면 할 이유가 없죠. 750g 한 채에 못해도 3만원은 나와야 하는데 지금은 2만5,000원뿐이 안해요. 몇몇 농가는 당장 돈 된다고 중국에 씨를 밀반출하기도 하는데, 그게 다시 고스란히 국내로 들어오니 농가 스스로 자기 목을 죄는 거죠.”

“근데… 여기 씨를 내렸던가?” 대화를 할 적마다 파종기 레버를 당겼는지 안당겼는지 헷갈리는 것이 참 문제다. 혹여 한 구멍에 씨가 두 번 들어갔다거나, 통째로 씨가 나지 않는 구역이 있다거나 한다면 내 책임이 없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 권순창 기자가 두둑을 덮을 짚더미를 어깨에 메고 나르고 있다.
작물을 심기 전의 밭은 그저 흙바닥 뿐이라는 사실을 왜 미처 생각하지 못했을까. 작업을 하는 인삼밭은 정말로 흙밭이었다. 검은 천막 그늘 아래 섬세한 작업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초봄 땡볕과 흙먼지바람은 밭을 덮을 짚단을 나르던 시점에 최고조를 맞았다. 사진 찍혀 신문에 실린다고 이쁘게 매만지고 온 머리는 지푸라기와 함께 헝클어진지 오래고 그 위에는 뿌옇게 흙먼지가 앉았다. 그 와중에 더미 아래쪽에 쌓여있던 짚단은 축축히 젖어 내 두부같은 어깨를 짓눌렀다.

농가 취재 중에 가장 많이 듣는 말이 “인건비도 못 건진다”는 말이다. 농사일이 막노동과 진배없이 힘들다는 것을 막상 경험해 보니(같이 일한 분들은 수월한 작업이라 하셨지만) 그 말이 얼마나 뼛속 깊이 한이 맺인 말인지를 이제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1년을 이렇게 일하고서 손에 쥐어지는 게 없다면 이거야말로 말도 안되는 사회적 노동 착취이고 인권 유린이다.

하물며 6년이다. 오늘 파종한 인삼은 6년 동안 애지중지 가꾼 뒤에야 출하를 하게 된다. 병충해 없이 잘 자라 좋은 가격에 팔리길 간절히 바라는 마음을 함께 묻고서 오후 3시경 짧은 농활을 마쳤다.

새벽같이 일어난데다 오랜만에 노동을 한 터라 집에 돌아와 풀썩 쓰러져 있으려니 어머니가 걱정스레 다가온다. 인삼을 심고 왔단 말에 영주 출신인 어머니가 깜짝 놀란다.

“히익, 그 힘든 걸 했어? 땅 파고 묘삼 심는거?”

“…아니, 씨 심었어.”

“아아. 에구, 그래도 쪼그려 앉아 하나하나 심으려면 고생했겠다.”

“….”

난 차마 파종기로 씨를 심고 와서 이렇게 퍼져 있단 말은 끝내 할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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