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피해자는 있는데 가해자는 없다

  • 입력 2016.03.25 11:45
  • 기자명 안혜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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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1일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앞에서 백남기 농민의 쾌유와 국가폭력 규탄 범국민대책위원회가 기자회견을 열었다. 지난해 11월 14일 경찰의 물대포에 쓰러진 백남기 농민 사태와 관련해 경찰과 정부에 살인폭력진압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촉구하기 위해서였다. 

약 20분간의 기자회견 후 대책위 대표 3명은 항의서한을 전달하기 위해 경찰청 안으로 들어가려 했으나, 미리 방패를 들고 대기하고 있던 경찰들에게 저지당했다. 양측 간 실랑이가 벌어지고 대책위 측이 거칠게 항의했지만 경찰 측은 미동 없이 “여러분은 집시법을 위반하고 있습니다”는 말만 반복하며 행동을 중단할 것을 요구했다. 

도로를 점거한 것도, 폭력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경찰청에 미리 신고한 기자회견을 마치고 약 20여명의 대책위 중 대표 3명이 항의서한을 전달하려고 한 것이었다. 

당시 경찰 관계자에게 이를 묻자 “항의서한을 전달하려고 한 것이 집시법을 위반한 것은 아니고, 집회를 한다고 해서 무조건 항의서한을 전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항의서한을 전달하려면 민원실을 통해 전달하라고 안내했다”고 말했다. 

기자회견 당시엔 집시법 위반이라더니 이제는 집시법 위반은 아니라고 하는 것은 또 무언가. 

백남기 농민이 물대포에 맞아 의식 불명이 된 지 130일이 넘어가고 있지만 경찰 측은 아직 공식적인 사과 표명이 없다. 경찰 위치에서 찍힌 영상에서 백남기 농민이 물대포에 맞아 쓰러지고, 쓰러진 후에도 백남기 농민을 향해 물대포를 쏘는 것이 확연히 보이는데도 말이다. 농식품부 장관도 유감 한 마디 없는 것이 유감이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명백한 상황에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넘어가는 이 상황이 너무나 비정상적이다. 피해자는 고통 속에 머무르고 가해자는 없어지는(혹은 더 잘 나가는) 이런 상황, 낯설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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