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우리는 - 대장간②] 증평 대장간에 가다

  • 입력 2016.03.19 23:53
  • 기자명 이상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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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락 소설가
충청북도 증평군 증평읍에는 1일과 6일에 서는 증평장이 있다. 장터 한 귀퉁이에 밑도 끝도 없이 ‘대장간’이라는 간판을 달고 있는 10평 남짓의 성냥간이 있었다. 내가 그 집 주인장을 취재하러 갔던 때가 서기 2000년 동짓달이었는데,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지금도 그 자리에 그대로 있다. 더욱 놀라운 것은 당시 35년의 경력을 뽐내던 최용진이라는 대장장이가 아직도 망치를 들고 그 좁은 대장간에서 연장을 벼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제 그의 대장장이 이력은 줄잡아 50년이 되었다.

공식 상호는 ‘증평대장간’이다. 농사짓는 방법이 기계화 영농으로 변한 데다, 그 나마의 농기구와 생활도구들도 대부분 공장제품으로 공급되어서 지금 대장간은 그 종적을 찾기가 어려운 실정이다. 따라서 간판 머리에다 ‘증평’ 따위의 고유한 말을 덧붙일 필요가 없어져버렸다. 그냥 ‘대장간’만으로 충분히 희귀하고 충분히 고유하다. 이제 최용진 씨를 부를 때에는 ‘성냥쟁이’ 따위의 비칭을 입에 올려서는 안 된다. 그는 어엿이 국가에서 인정한 ‘대장장이 기능보유자’(대장간 부문 제1호)가 된 것이다.

1960년대 중반, 최용진은 스무 살이 되도록 장차 무엇을 해서 먹고 살 것인지 갈피를 잡지 못 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충주시내에서 청천대장간을 운영하던 그의 매부가 최용진을 호출하였다. 대장장이 기술을 배워서 장차 대장간을 운영해보라는 것이었다.

“기술만 배워놓으면 세상에서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바로 이 사업이여. 풍구(풀무)하고 모룻돌 놓을 자리만 있으면 암 데서나 개업을 할 수 있다니께. 우리 대장간이 비록 세 평 밖에 안 되지만 사람들이 나를 뭐라고 부르는 줄 알어? 박 대장이라고 한다고, 박 대장. 이래봬도 내가 사성장군이란 말여.”

매부의 감언이설에 속아서(?) 그는 결국 장래에 ‘최 대장’의 길을 가기로 작정한다,

최용진은 기꺼이 박 대장의 조수가 되어서 대장장이가 되기 위한 학습에 돌입하였다. 가장 먼저 배운 것은 ‘대장’의 지시에 따라 불에 달군 연장을 해머로 내려치는 메질이었다. 그까짓 것, 해머로 마구 두들기면 되는 것 아니냐, 할지 모르지만 메질이야말로 대장과 조수의 호흡이 잘 맞아 돌아가야 하는 작업이었다. 대장이 불에 달군 연장을 집게로 잡고서 모룻돌 위에 올려놓은 다음, 작은 망치로 연장을 먼저 한 번 툭 치는데, 그것은 “여기를 쳐라”, 하는 지시이다. 지시한 대로 조수가 해머로 치면 그와 동시에 대장은 연장이 아닌 모룻돌 바닥을 두 번 친다. 그 두 번은 그냥 조수의 해머 질에 장단을 맞추기 위한 동작이다, 대장이 집게로 연장을 모로 세우기도 하고 뒤집기도 하면서 ‘지시’를 하고, 다시 모룻돌 바닥을 장단 맞춰 두 번 치고 하는 소리가 ‘쿵, 짝짝’ ‘쿵, 짝짝’ 하면서 리듬을 탄다. 최용진은 대장간 일을 참 즐겁게 배웠다는데, 메질을 할 때면 엉덩이도 신이 나서 절로 움직거려지더라고 했다.

박 대장과 최용진은 처남 매부지간으로서 찰떡호흡을 자랑하였지만, 그럼에도 메질을 배우는 중에 몇 차례 위험한 일을 겪었다. 대장이 지시한 곳을 제대로 맞추지 못 하고 엉뚱한 곳을 치는 바람에, 불에 달궈진 연장이 집게를 빠져나가 천장으로 튀고 말았던 것이다. 대장장이 중에 더러 애꾸눈을 한 이들이 있는데 바로 그 메질 중에 일어난 사고 때문이다.

우리의 전통 모룻돌은 나무 위에 고정하는 그저 두툼하고 평평한 철판이지만, 서양에서 건너온 ‘양모룻돌’은 한쪽 끝이 마치 쇠뿔처럼 뾰족한 모양을 하고 있었다. 철근 같은 가느다란 쇠붙이를 달궈서 빙 돌려 감으면 요술처럼 문고리 모양이 나왔다. 양모룻돌은 조선모룻돌보다 그 소리의 파장이 길고 은은하였다. 박 대장은 허풍을 섞어서 이렇게 말하곤 하였다.

“야, 여그가 증평이니께 망정이지 서산, 당진만 같았어도 큰일 날 뻔 했어. 한 밤 중에 이 양모룻돌을 내려쳤다 하면, 바다 건너 산동반도에서 집집마다 개들이 짖고 난리가 날 것 아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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