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농민으로 산다는 건] 두 여성농민의 농사남편

  • 입력 2016.03.19 23:50
  • 수정 2016.03.19 23:52
  • 기자명 황정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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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정미(경북 의성군 봉양면)
본격적인 마늘 유인작업이 시작된다. 한망에 3명씩 자리를 잡고 앉는다. 앉는다가 아니라 쪼그려 앉아서 마늘 하나하나를 일명 꼬끄래미라는 연장으로 비닐에 구멍을 내고 기술 좋게도 마늘싹을 끄집어 내어 비닐 위 세상으로 탈출시킨다. 그 하는 속도와 정확성은 가히 생활의 달인에 나와도 손색이 없을 정도이다. 이렇게 3명이서 다닥 붙어 일을 하다 보니 손은 잽싸게 움직이면서 입은 정다운 담소가 이어진다. 이렇게 마늘작업을 할 때마다 나는 할머니들의 한이 서린 일생을 듣게 된다.

신안아지매. 79세다. 스물아홉에 혼자되셨다. 신안아재는 문중 벌초를 다녀온 이후로 이상한 병이 들어 그 시대에 병원에도 못 가보고 돌아가셨다 한다. 딸 둘에 아들 하나, 오로지 그 자식만 보고 논 한마지기 농사 지으면서 자식들을 키우셨다. 온동네 들에서 품팔이를 했는데 정작 자기 논은 없다고, 친정도 못갔다 한다. 혹시나 바람난다 그럴까봐. 오로지 농사 짓는 것이 삶의 목적인양 농사를 남편삼아 살으셨다 한다.

옆에 일하시던 안정댁 아지매는

“아고~~ 청춘 늙키느라 애 먹었데이.”

“그럴 때는 온 몸에 열이나고 제정신이 아이지 뭐!”

작년에 큰 병이 들어 서울 큰 병원에서 수술을 받으려고 있는데 살아온 세월이 한탄스러우시더란다. 이태껏 온몸이 부셔져라 일했는데 막상 이제 보니 자기 수술비 하나 없더라고, 옆집에 살던 부호댁이 여자 치마밑에 기와집이 몇 채라더니. 오로지 한 길로만 사셨는 세월이 한스럽기도 하셨는 모양이다. 점심때 식사를 하시면서, 그래 밥은 이렇게 여럿이 먹어야 밥맛이 나는데, 혼자밥도 징그러울 정도로 먹었다 하신다. 튼 입술을 남편이 안티프라민을 발라주고 이쁘다 하니 그런 말 생전 첨 들어 보신다며 얼굴을 붉히신다.

남산아지매. 60대 초반이지만 보기에도 너무나 예쁘장하시고 천상 여자인 그런 분이시다. 생전에 시어머니께서 숙희어마이는 똥도 버릴게 없다고 하셨단다. 얼굴보고 시집왔더니 그 남편이 소장사를 하면서 밖으로만 나다녀 새색시 때부터 산에 나무해서 때고 농사와 집안을 다 건사하며 사셨단다, 50대 초반에 다방아가씨랑 바람이 나서 6개월을 집을 안 들어오더란다. 자식들을 지켜야 하니 처음에는 다방을 찾아가 별짓을 다하고 나중에는 남편을 달래고 얼러도 안 되길래 최후의 수단으로 이혼소송까지 하고 친정 오빠가 있는 구미로 방을 얻고 있으니 남편이 아들을 데리고 와 무릎을 꿇고 빌더란다. 그렇게 다시 집으로 돌아오셨지만 일년여를 으르렁거리며 살으셨다 한다.

그런데 남편이 작년부터 심부전으로 지병을 앓으셔서 걱정이시란다. 오늘 아침도 일하러 오면서 입맞춤해주고 오셨다 한다. 집안에 같이 있으면 내가 속이 답답해 죽어, 이태껏 정말 열심히 살아왔는데 이건가 싶어, 노래 있지 ‘저 강은 알고 있다’ 그 노래가 꼭 내 심정 같어 하신다. 점심때 남산아지매 남편이 감기로 병원에 가셨다 논에 잠깐 들르셨는데 내 보기엔 꼭 도적같이 생기셨다만 아지매들은 하나같이 잘생기셨다 한다.

놉을 하게 되면 거의 새벽에 일어난다. 그 전날엔 새김치를 담고, 밑반찬을 만들어 놓고 국까지 끓여놓고 오전 참까지 준비해 놓고 놉꾼들이랑 같이 자리를 잡고 일하다가 30분의 여유를 두고 뛰어와 참을 내가고 점심을 내가고 오후참을 내간다. 그러는 사이 남편은 유인된 마늘위에 흙을 뿌리다 오다가다 서는 차들 접대하고 맡붙어 이야기 나누고 여유도 많다.

뇌구조가 다른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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