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정춘추] 농산물 가공 권리를 농민들에게

  • 입력 2016.03.12 18:37
  • 수정 2016.03.12 18:43
  • 기자명 이춘선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정책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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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춘선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정책위원장

날이 따뜻해지고 지난해 심었던 양파 논에 풀이 많이 자라 있는 걸 보면서 밭은 매야 하는데, 마음만 바쁘고 도무지 논에 들어가서 풀 뽑을 일이 아득하기만 하다. 

2년 전 양파값이 폭락했을 때는 양파라면 쳐다보기도 싫었는데 그래도 올해는 지난해 가격이 좋아서인지 하루하루 자라는 양파들이 참 예뻐 보이는 건 농민들의 다 같은 마음일 것이다. 

이렇듯 양파값이 좋으면 계약된 양파를 가져가는 농협에서도 물량을 확보하려고 수확하는 즉시 가져가지만, 양파값이 좋지 않으면 농가들은 난리다. 양파를 빨리 가져가지 않아 밖에 야적한 채로 몇 달간 농협과 실랑이를 한다. 선별이 좋지 않다는 등 별별 핑계를 대면서 좋은 것만 가져가고 중과 소는 남아버리는 현상이 나타난다. 거기에 다시 선별을 요구하면서 인건비는 더 많이 들고 결국 양파농사는 적자였다. 

그러다보니 인근 즙 짜는 곳은 너도나도 남은 양파로 양파즙 가공을 하느라 인산인해를 이뤘다. 양파즙도 쏟아져 나오고 가격하락을 면치 못했다. 만일 농민들이 각 가정에서 농산물을 손쉽게 가공할 수 있었다면 양파즙만 고집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양파과자, 양파반찬, 양파라면 등 양파를 이용한 다양한 양파가공품이 가능했을 것이다. 이 난리가 불과 2년 전에 있었던 일이다. 이 때문에 많은 양파를 매입한 합천유통은 적자를 면치 못했고 거의 모든 농협들이 양파 때문에 골머리를 앓아야 했다. 

올해도 그 현상이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대부분 농가에서는 가격이 좋지 않으면 양파처럼 즙을 짤 수 있는 것은 즙을 짜기도 하고 추출물을 만들기도 하고 고춧가루, 고추장, 막장 등 다양한 가공품 등을 만들어서 도시에 있는 친척이나 자식들을 통해 소비자들에게 팔고 있다. 

소규모 농가나 집안 경제를 책임지는 여성농민들은 남는 농산물 중 가공할 수 있는 건 가공을 해서라도 도시 친인척들에게 팔아 손해를 조금이라도 줄이려 한다. 그래서 농촌에서 가공을 하는 사람들은 여성농민들과 귀농인들이 많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은 현재 식품위생법으로는 모두 불법이다. 소규모 농가공 식품 조례에 따라 농민들이 가공을 할 수 있다고 치더라도 식품의약안전처가 허용한 시설기준에 맞지 않기에 거의 모든 농가들이 불법을 저지르고 있는 것이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불과 2년 전만 해도 보상을 바라는 ‘식파라치’ 등에 의해 신고돼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거나 벌금을 무는 농민들이 참 많았다. 또한 이 식품위생법은 오히려 농민들의 다양한 가공 창의력을 없애고 있다. 

2013년부터 우리 합천지역도 농민회, 여성농민회가 주축이 돼 합천로컬푸드 가공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원래는 가공에 어려움이 있는 지역 농민들을 위한 농민가공센터로 운영하고자 했지만 여러 가지 까다로운 절차와 법 등 어려움으로 포기했다.

또한 지역에서 생산하고 있는 농산물을 다양하게 가공하려다 보니 가공품목도 많고 관리할 것도 많고 행정서류, 위생검사에 시설조건까지 하면 할수록 농민들이 운영하기엔 많은 품이 들어 요즘은 조금씩 가공품목의 종류를 줄이고 있다. 불시에 나오는 위생검사와 원료수불부대장, 생산일지, 판매일지, 자가품질검사, 작업자 위생검사, 위생교육 등 할 게 너무나 많은 것이다. 하나의 물품을 생산하기도 힘든데 거기에 기울이는 행정 서류가 너무 많아서 다양한 농산물들을 가공하면 할수록 공장화 될 수밖에 없고 그러면 식품위생법 기준에 따라야 한다. 

이 때문에 농식품부는 식품위생법에서 허용하고 있는 농식품분야 제조·가공 시설기준 특례 적용을 확산코자 2014년 9월 식품의약품안전처, 농촌진흥청 등 관계기관과 전문가 협의를 거쳐 지자체들이 보다 쉽게 적용할 수 있는 표준조례·규칙을 마련했다. 

하지만 여전히 여기에는 함정이 있다. 기존의 축소된 시설기준 완화일 뿐 기존의 식품위생법은 바뀌지도 않았다. 여전히 농산물 가공 권리는 생산한 농민들에게 있지 않고, 해썹 기준 등을 더욱 강화하면서 더 많은 비용을 발생시키고 있으며 농민들의 가공 창의력을 오히려 억제하고 있다. 

인근 일본은 각 가정에서 농사짓는 것에는 근린생활가공시설을 짓지 않아도 적정기준만 되면 간단한 절차를 거쳐 허가를 내주고 위생교육을 중시한다. 어느 농가에서도 마음만 먹는다면 마음대로 가공을 해 판매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매일 먹는 엄마표, 할머니표 식품에서 그동안 문제가 없었듯이 우리 여성농민들에게도 생산한 농산물을 가공할 수 있는 권리. 올해는 식품위생법이 개정돼 생산한 농산물에 대한 가공 권리가 기업이 아닌 농민들에게 주어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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