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에 맥 끊겼던 전통주, 이제는 수입 맥주·와인에 밀려

일제 주세령 된서리 … 자가 양조, 60년 동안 불법 족쇄
한때 막걸리 붐 일었으나 생산량·수출량 급감

  • 입력 2016.03.06 06:37
  • 기자명 홍기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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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홍기원 기자]

일제 강점기에 맥이 끊기다시피 한 전통주는 최근엔 수입 맥주와 와인의 공세에 쫓기고 있다. 관련 제도를 정비해 준비된 전통주를 만드는 대안이 필요한 시점이다.

우리나라 전통주는 고려시대 후기에 증류주 문화가 유입되며 발효주에서 증류주로 전환했다. 삼국시대 술은 삼국지 위지 <동이전>에 ‘고구려 사람은 발효식품을 잘 만든다’는 기록 등을 볼 때 양조기술이 발달했음을 추측할 수 있다. 또, 일본 <고사기>는 응신천황(오진천황, 재위 270~312) 때, ‘백제 인번이라는 사람이 와서 누룩을 사용해 술 빚는 새로운 법을 가르쳤다’고 전하고 있다. 신라 역시 이수광이 1614년 편찬한 <지봉유설>에 “한 잔 신라주의 기운이 새벽 바람에 사라질까 두렵구나고 기록될 정도로 명성을 떨쳤다.

고려시대엔 송·원대의 양조법이 도입돼 전래의 곡류 양조법이 발전하고 주품도 다양해졌다. 이 시대엔 사찰이 술을 많이 빚어 판매했다. 이어 몽고의 침입과 함께 증류주가 다량으로 유입됐으며 소주 고리의 이용 방법도 이 시기 전파됐다.

조선시대에 이르러선 술의 제조 원료가 멥쌀에 찹쌀로 바뀌고 일반 가정의 술 제조가 활발해 자유로운 발전이 전개됐다. 조선 후기엔 지방마다 특색있는 술들이 전성기를 맞았으며 특히 약주의 산패 방지를 목적으로 발효주와 증류주를 혼합한 과하주가 개발됐다. 이 술은 덥고 습한 여름에도 즐길 수 있으며 그 중 김천 과하주가 유명했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에 접어들며 전통주는 점차 자취를 감췄다. 일제는 통치자금을 확보할 목적으로 술에 주세를 붙이고 가정에서 제조하는 가양주를 탄압했다.

1907년 주세령 공포

1906년 들어선 조선통감부는 이듬해 7월 주세령을 공포했다. 1910년 한일병탄 이후 들어선 조선총독부는 1916년 주류 단속을 강화하고 주세령을 개정해 시행했다. 모든 주류가 약주, 탁주, 소주로 획일화됐으며 1917년부터 자가 양조가 금지됐다.

1934년 가양주 면허 제도까지 폐지하며 일반 가정의 술 제조는 결국 금지됐다. 자가 양조는 1994년까지 60년 동안 불법의 족쇄를 차게 된다. 이에 반해 주세는 전체 조세의 29.5%를 차지할 정도로 늘어났다.

1945년 해방 뒤에도 미군정이 양곡 관리를 이유로 양조 금지령을 포고해 전통주의 부활은 뒤로 미뤄진다. 1965년 양곡관리법을 시행하면서 쌀로 술을 빚는 게 금지돼 쌀막걸리와 증류식 소주도 자취를 감춘다. 쌀막걸리는 1977년 한때 제조가 허가됐으나 2년 만에 다시 금지됐다.

때늦은 전통주의 부활

1986년 아시안게임과 1988년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세계에 우리 술을 알려야 하는 필요성이 대두되며 전통주가 부활하는 계기가 만들어졌다. 80년대 민속주와 관광토속주 개발이 시작됐고 1990년에야 막걸리 원료로 쌀 사용이 허용됐다. 그리고 1995년에야 주세법이 개정되며 판매를 목적으로 하지 않으면 가정에서 술을 빚을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주류 시장에선 맥주와 소주의 강세에 전통주는 자리를 잡기 힘든 상태였다. 2008년 무렵 막걸리가 일본에서 인기를 끌며 생산량이 늘기도 했지만 오래 지속되진 못했다. 통계청 광업제조업동향조사를 보면 탁주 생산량은 2010년 38만7,724㎘, 2011년 44만3,151㎘까지 늘었으나 이후 감소해 2014년엔 37만6,696㎘, 2015년엔 35만4,236㎘에 그쳤다. 2011년 3만5,530㎘로 최대로 늘었던 탁주 수출량도 2015년 9,750㎘로 급감했다.

외려 같은 기간 맥주와 와인 수입이 늘어나 전통주의 입지는 더 흔들리게 됐다. 통계청 수출입무역통계에 따르면 맥주 수입중량은 2011년 5만8,993톤에서 2015년 17만919톤까지 3배 이상 늘었다. 와인 수입중량도 같은 기간 2만6,004톤에서 3만6,815톤까지 증가했다.

전통주산업법 공포

2010년 전통주 등의 산업진흥에 관한 법률(전통주산업법)이 공포되며 전통주 품질향상과 산업진흥에 관한 제도정비가 닻을 올렸다. 류인수 한국가양주연구소 소장은 “어떤 주종의 술이 붐을 일으킬지 아무도 모른다. 전통주 붐이 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깊게 고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류 소장은 “종가세를 종량세로 바꾸고, 주세를 지방세로 전환해 소규모 전통주 제조장이 법적으로 마련돼야 한다”며 “어떤 원료를 사용했고 첨가물들의 유무와 제조 방법에 따라 등급을 만들어 소비자들이 다양한 술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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