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우리는 - 병아리 감별사③] 병아리, 태평양을 날다

  • 입력 2016.03.06 00:18
  • 수정 2016.03.06 00:19
  • 기자명 이상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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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락 소설가
부화장에 들어간 달걀은 21일 만에 생명을 내놓는다. 이 햇병아리들은 태어나자마자 감별사들에 의하여 암수가 판명되고, 유감스럽게도 수컷은 알을 깨고 나온 지 한 시간여 만에 폐기처분되어 생을 마감한다. 그렇다면 산란계(알 낳는 닭)가 아닌, 고기를 얻을 목적으로 기르는 육계의 경우 암수를 구별할 필요가 없지 않을까? 그렇지 않다. 암수를 섞어 기르면 먹이를 독점하다시피 한 수놈은 덩치가 비대해지고 상대적으로 암탉의 발육은 더디게 된다. 그래서 암놈 수놈을 분리사육해야 하는 것이다.

사실 국내에서 활동하려면 감별사 자격증 따위가 필요 없었다. 그럼에도 칠팔십년 대에 기를 쓰고 자격증을 따려고 했던 것은 모두들 외국진출 기회를 노렸기 때문이다. 1978년, 병아리 감별사 자격증을 딴 김동일이 난생 처음으로 비행기를 탔다. 미국행이었다.

김동일이 도착한 곳은 노스캐롤라이나 주와 버지니아 주의 접경지대에 있는 작은 농업도시였는데, 불과 6년 전에 건너가서 병아리 감별사로 활동했던 그의 외사촌 형의 집은 건평만 120평에 달하는 저택이었다. 미국 이민 길에 오른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초반에 고전을 면치 못 했으나 병아리감별사만은 형편이 훨씬 유리하였다.

“좋아. 나도!”

꿈이 있다는 건 좋은 것, 김동일은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고단한 감별사 활동이 시작되었다. 외사촌 형인 유금춘이 소속된 병아리 감별회사는 일본인 소유였다. 당시만 해도 미국의 거의 모든 병아리 감별회사는 일본인들이 장악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일본인이 병아리 감별회사를 차려놓고 미국의 각 부화장으로부터 일감을 주문받아서는 각 팀별로 배분하는 방식이었다. 유금춘이 책임 맡고 있는 팀에는 유금춘 부부와 그의 친동생들, 일본인 두 사람, 그리고 새로 들어온 김동일까지 합하여 9명이 된 것이다.

땅덩이가 큰 나라여서인지 병아리 부화장의 규모가 어마어마하였다. 각자 자리를 잡고 감별작업을 시작하였다. 일주일에 나흘 동안만 일한다고 하지만 나날의 노동 강도는 살인적이었다. 하루 20시간을 연속으로 일해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졸음을 쫓기 위해서 한국에서 가져간 가요 테이프를 돌렸다. 김동일 등의 애창곡인 배호의 ‘돌아가는 삼각지’는 몇날며칠이고 쉴 새 없이 돌고 도느라 지쳐 늘어졌고 김동일 일행도 녹초가 되었다. 일감이 매번 같은 부화장에만 있는 게 아니었기 때문에, 한곳에서 일을 마치고 서너 시간도 자지 못 한 채 다른 부화장으로 옮아가기도 했다.

아무리 그들이 감별 도사들이라지만 그것도 사람이 하는 일이라 판정을 잘 못 하는 경우가 있었다. 98%, 그러니까 100마리 중 두 마리의 오차는 양계장에서도 문제 삼지 않았으나, 그 이상은 감별사가 책임을 져야 했다. 가령 3개월 뒤에 수탉이 섞여 있는 비율이 5%로 나타났다 하면 98%를 기준으로 하여 3%의 병아리 값은 감별사가 해당 양계장에 배상을 해야 했다. 어쨌든 일이야 힘들었지만 주어진 보상은 만족스러웠다. 70년대 말 혹은 80년대 초에 주4일 근무하고 1천8백 달러의 월급을 손에 쥐었다. 한화로 90여만 원이나 되었으니 가히 파격적인 소득이었다.

98년도에 일시 귀국한 김동일은 이쁜 각시를 ‘얻어서’ 다시 미국으로 갔다. 아내도 병아리 감별을 배우고 싶어 했으나 작업장에 데리고 가서 가르치는 것을 일본인 사장이 용납하지 않았다. 그래서 김동일은 한국인이 사장으로 있는 감별회사를 찾아 플로리다로 일터를 옮겼다. 일과가 끝나면 아내에게 감별법을 가르치기 위해 매일 작업장에서 병아리 한 상자를 가지고 퇴근하였다. 장소가 마땅치 않아서 부부가 한밤중에 화장실에 들어가 연습을 하다가 수상히 여긴 이웃으로부터 신고를 당해 경찰이 다녀가기도 했다.

내가 그를 취재했던 2004년에, 김동일은 그 동안 모은 돈으로 아칸소 주에 ‘놀이동산’ 하나를 조성했다는데 당시 가격으로 30억 원에 이르는 재산이라 했다. 경제적으로만 따지자면, 경기도 광주 촌놈인 김동일의 아메리칸 드림은 보기 좋게 성취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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