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농민으로 산다는 건] 다시 봄이다

  • 입력 2016.03.06 00:17
  • 기자명 황정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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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정미(경북 의성군 봉양면)
그 매섭던 며칠간의 추위가 끝나고 날이 훈훈하니 풀린다.

올해는 늦은 설연휴가 끝나니 맘이 급해진다. 아직 자두나무 가지치기도 덜 끝났고, 화목보일러에 넣을 나무도 좀 넉넉히 해 두어야 한다. 그래도 제일 큰 일은 이 봄기운에 올라오는 마늘을 비닐 위로 뽑아 올리는 일이다. 작년 가을부터 마늘씨를 장만해서 11월에야 다 심을 수 있었다. 마늘을 다 심어 놓고 그 때부터 비가 줄기차게 내리기 시작했다. 마늘을 일찍 심은 사람들은 비 온다는 기상정보에 재빠르게 비닐을 덮기 시작했다. 오지랖 넓은 남편은 아직 마늘 못 심은 후배가 있다며 비 많이 온다니 둘이서라도 비닐 좀 덮자는 나의 원망 어린 눈을 무시하고 마늘 심는 기계를 싣고 가 버린다. 남편을 원망하면서도 아직 마늘을 못 심은 심정은 오죽 할까 싶기도 했다. 그래도 우린 다 심었으니.

그렇게 여유의 하루는 지나갔고 그 이후로 비는 쉴 새 없이 내리기 시작했다. 비닐까지 덮어야 한해의 농사일이 마무리 되는 것인데 이것은 볼일 보고 뒤 안 닦은 것처럼 계속 찜찜하다. 그래도 맑은 날은 오리라 맘을 달래며 전전긍긍하는데 마늘논이 좀 말랐다 싶어 비닐을 덮어야지 하면 어김없이 비가 와서 논을 적신다. 그렇게 11월을 다 보내고 나니 이젠 더 이상 미루면 마늘이 냉해를 입을 지경이어서 모내기 할 때처럼 질퍽질퍽한 논에 못자리 할 때 흙 떠 붓는 것처럼 그렇게 비닐을 덮었다. 모래처럼 마른 논에 비닐 덮는 일도 벅찬데 하물며 진논에 비닐을 덮는다는 것은 온 논에 심어진 마늘씨에 대한 자식같은 사랑이 아니고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다. 더더구나 그 자식이 얼어 죽을 판인데 더 이상 뭘 따지겠는가!

그렇게 비닐을 덮어놓고도 걱정은 끝나지 않는다. 그 질퍽함에 마늘은 도저히 뿌리를 못 내리고 썩어 버리면 어쩌나깔끔하니 끝내고 드디어 찾아온 2달간의 농한기를 여유롭게 즐기고 싶었는데 맘이 불편하다. 그것이 병이 된다. 열달 넘게 들로 쫓아다닌 몸이 집안에 있자니 소화도 안되고 의욕도 없어진다. 뭘 먹어도 맛이 없다.

시장이 반찬이라던가, 들에서 시장한 배를 부여안고 돌아와 떠 넣는 식은밥 한덩이도 꿀맛이었는데. 꼭 하이디가 알프스의 푸른산을 뛰어다니다 도시의 집에 갇혀 있는 것처럼.

일년여를 밀쳐 두었던 구석구석 집안 정리라도 하면 좋을덴데 일철이나 마찬가지로 집안은 어지럽다. 그것도 맘이 불편하다. 들일이 바쁠 때는 들일이 바쁜데 집안 정리는 무슨 하면서 이유라도 있지만, 지금은 나의 게으름으로 돌아오니 더 불편할 수 밖에. 또 아이들에게는 따라 다니며 잔소리다. 이미 들에 있는 엄마에게 길들여진 우리 아이들은 집안의 엄마가 따라다니며 잔소리를 하니 자꾸 나갈 건수만 만든다.

그렇게 송아지 몇 마리 받아내고 젓멕이고 추위에 설사하는 놈 돌보고 이제 제법 겅중겅중 뛰어다니니 날이 훈훈하다. 반갑게 마늘논으로 뛰어나가니 벌써 마늘이 제법 싹을 내민다. 신기하게도 그 질퍽했던 논은 쌀가루처럼 흙이 보드랍고 보드랍다. 더더구나 썩어버리지 않았나 했던 마늘은 예쁘게 예쁘게 싹을 내밀고 있지 않는가! 그래서 생명은 위대한 것이다. 어떠한 악조건에도 생명을 키위내지 않는가.

그 여린 생명을 보는 순간 나의 몸은 달아 오른다. 저 악조건에서 올라온 어린 생명을 이젠 나의 손으로 키워내야 한다는 강한 모성애 그 첫 번째 작업이 비닐위로 유인하는 일인 것이다. 소머리를 곤다. 일하시러 오시는 어르신들 뜨듯하게 드실 것이다.

자, 다시 봄이다.

들을 휘 한바퀴 돌고 오니 밥맛도 좋고 아이들도 편안하다. 역시 난 들체질 인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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